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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AI 밥그릇 05화

비효율의 시대에 대한 봉화가 올랐다.

by 맨디

고요한 새벽, 멀리 보이는 어슴푸레한 산 꼭대기를 응시하고 있었다. 시선이 닿는 끝에, 작은 점 같은 불꽃이 올랐다.

'저게 뭐지?" 싶어, 눈을 가늘게 떠 그곳을 응시했다.


이내 옆의 산 꼭대기로 불꽃이 옮겨 갔다. 그러자 불꽃의 의미를 무섭게 깨닫게 된다.

봉화다. 봉화가 올랐다.


아직 새벽의 공기가 무겁고 고요했다. 그래서 마치 모든 게 멈춘 듯하다.

하지만 평온한 이곳도 수 일 내로 전쟁의 급물살에 휩싸이게 될 것이 확실하다.


당장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는 긴장감이 들었다.


내겐 AI가 그랬다.

AGI가 먼발치에 봉화처럼 솟아올랐다. 지금 뭘 해야 하지?


1.

돈을 좀 모아보자는데 동의했다. 더 정확히는 절약을 통해서 여러 가지 형태의 자산을 만들어 두기로 했다. 이건 마치 전쟁통에 살아남기 위해 돈을 아껴 음식을 사두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이곳저곳에 그 음식들을 잘 나눠 보관해 둘 생각이다. 부자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덜 휩쓸리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


우리 둘 뿐이었다면 조금 더 극적인 긴축정책을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이가 있다. 그리고 쑥쑥 커가는 녀석에게는 그 나이에만 느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우리는 하나하나 밑줄을 그어가며,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경험과 우리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을 구분했다. 그리고 후자는 몇 년만 미뤄보기로 했다. 아쉽게도 내년 초에 탑승할 예정이던 크루즈는 가장 먼저 취소됐다. 2년 전에 예약해 둔 일정이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취소버튼을 눌렀다.


아. 아깝다. 정말 싸게 잘 예약했는데.


2.

"요즘 월드코인 엄청 화제잖아. 그들이 표방하는 게 '인간임을 증명하기만 하면 기본적으로 필요한 자원이나 돈을 제공하겠다'는 거잖아. 이상하지? 학교에서, 또 회사 다니면서 평생 효율에 대해서 이야기해 왔는데, 반대로 가는 느낌이야. 효율적인 모든 것들은 AI에게 넘겨주고, 사람은 비효율에 정착하는 느낌이랄까?"


"그렇지. 그렇게 되겠지."


"진짜 비효율이 일상이 되면 어떤 모습이 될까?"


"우린 아주 조금은 비슷한 상황을 겪어 봤잖아."


"언제?"

눈을 떼구루루 굴렸다. 우리가 그런 적이 있었던가?

나는 늘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사는 법만 연구했던 것 같은데. 쫓다 못해 쫓기는 기분이 들 만큼.


남편이 내 표정을 보고 씩 웃었다. 그리곤 살짝 뜸을 들이더니 입을 뗐다.

"코로나."


"아, 맞네! 그럴 수도 있겠네. 집 밖에서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을 다 못하게 되고, 집 안에서만 있어야 했지. 비효율 적이었다. 시간은 많은데, 모든 걸 집 안 식구들 (혹은 혼자)끼리만 집 안에서만 해야 한다는 엄청 특이한 조건이 붙은 바람에."


"맞아. 바야흐로 대 비효율의 시대였지."


"대 비효율의 시대. 맞네. 다들 집에 앉아서 달고나 젓기나 하고 그랬지."


"응. 식집사가 유행이라 식물값도 오르고, 강아지 키우고 싶다고 강아지 가격도 오르고. 게임기, 그래픽 좋은 컴퓨터, 레고 같은 것들이 엄청 흥했지."


"진짜 웃긴 유행들 많았어. 그렇지?"


아마 그때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세상이 올 것이다.

코로나 시절의 비효율은 생존 전략이었다면, AI 시대의 비효율은 정체성 전략이 될 테니까.


정말 월드코인의 콘셉트처럼 '인간'이기만 하면, 기본적인 제화가 모두 해결된다면?

아마 기계가 모든 효율을 가져가면, 나만의 취향, 나만의 낭비, 나만의 집착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그리고 비효율은 곧 인간다움의 상징이 되겠지.

그러면, 세상에 존재하는 자본과 시간은 이 비효율로 흐르게 되지 않을까.

덕질. 덕질이 더 이상 취향이나 취미가 아닌 기본값이 돼버리지 않을까.


대화가 이쯤까지 미치자, 상상만 하고 미뤄왔던 나만의 낭비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나는 늘 희귀 식물들로 채워진 햇볕 가득한 요가원을 운영하고 싶었다. 곧바로 거금을 투자해 희귀 식물들을 샀다.


나는 좋아하고,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던 덕질의 세계로 큰 걸음을 뗐다.

"그러니까, 여기 이 작은 패턴 하나 더 있다고 가격이 열 배라는 거잖아? 정말 그들만의 세상이다."


늘 투덜대던 남편이었지만, '그들만의 세상'이 대 비효율의 시대에 내가 가질 수 있는 경쟁력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작은 투자를 시작하는 걸 허락했다.

올망졸망한 희귀 식물들이 (본격적으로 그린하우스까지 동원해) 방 한편에 자리 잡았다.


3.

오히려 우리가 합의점을 찾지 못한 부분은 커리어였다. 앞선 비유처럼 우리가 본 커리어는 '드라마'였다. 이미 1화 첫 장면이 시작될 때, 주인공이 죽는 걸 보여주고 시작하는 특이점이 있는 드라마.

우리의 의견이 갈린 건, 이 극을 이어 가는 디테일이었다. 주인공이 죽을 때 죽더라도, 8화든 16화든 이 주인공과 우리는 울고 웃고 떠들면서 극을 이끌어 가야 한다.


우린 이 접근 방식이 확연하게 달랐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아온 방식을 그대로 닮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편의 생각이 옳았다.



샘 알트만의 '월드코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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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를 만든 '오픈 AI'의 수장, 샘 알트만이 만든 또 다른 프로젝트가 바로 '월드코인'입니다. 알트만은 AI가 너무 발전해서 인간의 일자리가 사라질 미래에 대비해,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기본 소득을 나눠줄 시스템을 꿈꿨죠.

월드코인의 핵심은 바로 저 번쩍이는 은색 공, '오브(Orb)'입니다. 이 오브는 실제로 존재하는 기계 장치로, 사람의 홍채를 스캔하여 '당신이 진짜 사람임'을 증명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가상공간의 데이터가 아니라, 실제로 눈을 마주해야 하는 기계인 거죠!

왜 하필 홍채 스캔일까요? 개발팀은 "온라인에서 누가 봇(Bot)이고 누가 진짜 사람인지 구분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쌍둥이조차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홍채 패턴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디지털 신분증'이 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월드코인이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홍채 스캔 이벤트를 열었을 때, 많은 이들이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오브 앞에 섰습니다. 마치 미래 사회의 시민으로 등록하는 듯한 신기한 경험 때문에 한때 등록자가 폭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오브'를 통한 홍채 정보 수집은 큰 논란을 낳기도 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생체 정보는 너무나 민감한 개인 정보인데, 이걸 함부로 수집하면 안 된다"며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를 제기했고, 이 논쟁은 여전히 뜨겁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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