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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AI 밥그릇 10화

AI 시대의 두 번째 키워드: 회복

by 맨디

회사에서의 엑셀은 강력하다. MS 오피스 중 그 입지 가장 굳건한 툴이 아닐까 싶다. 가끔 '엑셀로 표현할 수 없는 건 없다'라고 진심을 담아 농담을 던지곤 했었다.


엑셀을 유난히 돋보이게 하는 건 뭘까? 우선, 엑셀은 셀 단위로 정보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셀은 놓인 행과 열에 따라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이 정보들을 바탕으로 피벗테이블로 데이터를 요약하거나, 그래프도 그릴 수 있다. 다른 시트로 확장도 가능하다. 공통된 정보가 있기만 하다면 SUMIF나 XLOOKUP(혹은 VLOOKUP), INDEX와 MATCH을 사용해 연결해 낼 수도 있다. 단순히 자료를 집계하고 수치를 구하는 계산적인 측면을 넘어선다. 데이터를 검증하거나, 트렌드를 읽어내는 도구도로 응용할 수 있는 구석이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언제나 엑셀을 켜는 일이었고, 이건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가끔 공들여 만들어 놓은 엑셀파일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회사 생활의 역사가 엿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 매니저는 아직도 엑셀 수식 앞에 꼭 +를 붙인다. 이건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 Lotus 1-2-3이란 프로그램을 쓰던 습관이라고 한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수식을 시작할 때 +를 붙이고 쓰던 걸, 엑셀이 초기 버전에서 호환되도록 허용했었다고. 아직도 난 파일을 열어 =+A2+A3 하는 식으로 작성된 파일을 보면 우리 매니저가 작성한 파일임을 단박에 알아본다. 그리고 그녀의 엑셀 파일을 보면, 그녀가 데이터를 검증하는 방식, 정보를 확장시켜 나가는 성향 등 업무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아마도 30년도 넘었을 그녀의 커리어가 그 안에 묵직하게 쌓여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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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한 시대를 넘어왔다. 그 사이에 주판이 사라졌고, 컴퓨터가 책상마다 놓였다. 비행기를 타고 건너가 미팅을 하던 걸, 이제는 회사 옆자리에 앉아서도 화상으로 대신한다. 세상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고 관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잘 갈고닦은 엑셀 기술처럼 말이다. 엑셀이란 공간 안에 발전시켜 둔 나만의 성향이나 방식이 20년 혹은 30년 동안 써먹은 좋은 무기가 되는 시절을 우리는 쭉 지나왔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세상은 이런 시대를 관통하는 무기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매 순간 패러다임이 바뀌는 걸, 경험하게 될 것이다.


10년 전쯤 등장한 파워비아이는 데이터 처리에 혁신을 불러왔다. 셀 단위로 움직이던 것을 테이블 단위로 정리하면서 그 사이에 관계를 설정하는 게 파워비아이에 핵심이었다. 엑셀처럼 다른 테이블에 있는 정보를 수식으로 불러내는 형태를 지원하고는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각각의 테이블을 독립된 개체로 둔 채로, 두 테이블 사이에 연결점을 설정해 관계를 맺어준다. 이를 기준으로 데이터를 정리하는 게 핵심이다.


도구가 발전했다. 파워비아이는 엑셀의 수많은 한계를 해결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엑셀에서 익힌 기술들은 유용했다. 기본적으로 데이터를 쌓아두는 방식이 같은 선상에 있다. 이 두 툴 모두 행과 열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두고, 이를 의미 있는 정보로 바꿔가는 과정이 여전히 엑셀이 채용한 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온톨로지의 접근방식은 달랐다.

엑셀이 데이터를 ‘정리’하고, 파워비아이가 데이터를 ‘모델링’했다면, 온톨로지는 데이터를 ‘추론’한다.

엑셀은 어디에 놓였는가(셀의 위치)가 중요했고, 파워비아이는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가(관계)가 의미 있었다. 하지만 온톨로지는 그 데이터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중심이 되었다. 데이터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계산에서 해석으로 옮겨간 것이다.

더 이상 형태나 수식이 필요하지 않다. 데이터에 객체와 속성을 설정해 주면, 관계 속에서 스스로 맥락을 만들어 낸다.


단계별로 발전해 가는 것이 아니다. 아예 접근 자체가 새롭다. 이런 기반을 흔드는 변화 속에서, 어제의 ‘절대무기’는 내일의 ‘낡은 습관’이 되기 쉽다. 초기 엑셀이 +를 붙이는 걸 허용해 줬던 것 같은, 너그러운 호환 버전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난 것에 대한 미련이 아니다. 회복(Resilience)이다.

뒤집힌 판을 인정하고, 빠르게 새 틀을 익히고, 다시 성과를 내는 탄력이 필요하다.


덤덤하게 우리가 잘해오던 것들이 하나씩 사장되는 과정을 지켜보자.

나는 그 옛날 전화 안내양을 떠올린다. 전화기가 다이얼 펄스 신호를 인식할 수 있게 되자, '어디로 전화를 연결할지' 묻는 안내양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졌다. 사람들은 직접 번호를 눌러 스스로 목적지에 다다랐다. 그 변화 앞에,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아무리 손이 빨라 많은 통화를 연결할 수 있었던 안내양도 소용없었다. 그저 수동으로 전화를 연결하던 역할 자체가 사라졌다.

우리가 지금껏 잘해왔던 특기들도 그런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이제 변화는 더 빠르고, 더 자주, 더 광범위하게 올 것이다.


한때의 영광 같던, 우리가 잘하던 것들로부터 무사히 작별하기를.

그리고 그 상처로부터 빠르게 회복하기를.

그래서 새 패러다임을 누구보다 가볍게 받아들이기를 바라본다.


그게 우리의 새로운 무기가 될 것이다.


일단 나부터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며 마음을 다 잡아 본다.


패러다임이 바뀐다.

기계를 학습시키는 과정을 머신러닝(ML, Machine Learning)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과정을 오래 연구하면서 사람들은 뜻밖의 벽을 마주쳤다.


AI는 인간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나 쉽게 하는 일들은 기계의 상식은 아니었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의 몸을 움직이는 법을 배운다. 어느 날 손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내 몇 달 내로 손뼉 치고, 죔죔 하는 간단한 동작들을 익힌다. 그리고 돌 무렵부터는 꽤 정확하게 원하는 것들을 집어 옮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기계는 달랐다. 기계에게는 이런 일들이 상상 이상으로 복잡한 연산의 대상이었다.

체스나 바둑을 익히면서 수백 가지 경우의 수를 검토하고, 미리 앞선 수를 예측하는 시뮬레이션을 돌릴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손동작처럼 체스말을 집어 옮기는 동작 하나는 처리하지 못했다. AI에게 어려운 건 논리가 아니라, 감각과 맥락이었다.


X-ray 판독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환자의 상태나 병력등을 기초로 이미지를 해석한다. 하지만 초기 AI에게 이 X-ray는 그저 픽셀의 배열 그 자체였다고 한다. 의사는 한눈에 구분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AI는 엉뚱한 판단을 내리곤 했다.


문제는, AI의 오류를 사람이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기계의 사고방식은 인간의 사고와 완전히 다르다. AI가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어떤 경로로 도출했는지를 인간의 논리로는 추적할 수가 없었다.


물론 앞으로 우리가 만나는 AI들은 이런 한계들을 크게 개선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사고방식이 인간과 같아진 것은 아니다. 그들의 방법이 단지 더 정교해진 것뿐이지, AI는 여전히 우리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푼다. 전혀 다른 방법으로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이제는 우리보다 더 잘 찾아낼 뿐이다.


AI의 발전은 우리가 잘하던 방식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기계가 인간을 닮는 게 아니라, 인간이 새로운 지능을 이해해 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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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ficial Intelligence (AI)
AI는 인간의 인지 기능- 문제 해결, 학습, 의사결정, 언어 이해와 같은 능력 등-을 모방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가장 포괄적 개념으로, 머신러닝과 딥러닝을 모두 포함한다.

Machine Learning (ML)
머신러닝은 원래 사람이 기계를 학습시키는 과정이었지만, 이제는 데이터 속 패턴을 기계가 스스로 찾아내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명시적 프로그래밍 없이도 경험을 통해 성능을 개선하는 자율적 학습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Deep Learning (DL)
DL은 머신러닝의 하위 분야로, 인간의 뇌 구조를 모방한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을 이용해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하고 학습한다. 특징을 자동으로 추출하며, 이미지 인식, 자연어 처리 등 복잡한 문제 해결에 강점을 보인다.

Data Science
데이터 사이언스는 통계, 컴퓨터 과학, 도메인 지식을 결합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통찰을 도출하는 학문이다. AI와 ML은 데이터 사이언스를 실현하는 핵심 도구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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