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AI 밥그릇 11화

지금 당신은 AI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신가요?

by 맨디

회식보다 무서운 건, 건배사였다. 회식이 있을 때마다 모두 한 번은 이 건배사를 해야 자리가 끝났다. 승진이나 결혼, 수주처럼 축하할 일이 있으면 오히려 다행이다. 목적 없이 그냥 하는 회식에 건배사는 정말 곤욕이었다. 매번 멘트를 미리 정해서 비장하게 앉아 있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내 차례가 되어 쭈뼛 자리에 일어났다.

이제 준비된 멘트를 막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질문이 들어왔다.


"니는 우리 회사가 성장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노?"


우와. 치사하게 갑자기 나한테만 질문을 한다고? 긴장해 잔을 든 손이 파르르 떨렸다. 스무 명쯤 되는 사람들이 내 입에서 흘러나올 다음 대답을 기대하며 멈췄다. 난 이런 순간이 정말 싫다.

"어... 부장님을 비롯한 우리 선배님들이 밤낮없이 열심히 노력해 주신 덕분 아닐까요?"

적당히 아부를 담은 꽤 괜찮은 멘트라고 생각했다.

질문한 부장님의 반응을 기대했는데,

"쩝, 고놈의 열심히 한다는 소리. 에잇"

했다. 그가 원하는 답은 아니었다. 분위기가 차게 가라앉았다.

준비해 간 건배사는 뭐 시들하게 끝났던 것 같다.


그 잊고 있던 장면이 한 유튜브를 보다가 스치듯 떠올랐다. 연사는 '우리나라가 유난히 눈부신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 이유로 그는 훌륭한 보통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 영상을 본 지 꽤 시간이 흘러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문맹률이 거의 없다 시피합니다. 모두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해요. 해마다 새해가 되면 자기 계발을 위한 목표를 정하고, 꾸준히 새로운 일에 도전합니다. 아주 높은 교육 수준을 가졌지요. 대중들의 취향도 훌륭합니다. 감각 있고 늘 깨어있어요.

뛰어난 몇 명이 이끌어가는 사회도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50년 넘게 꾸준히 눈부시게 성공하려면 이 훌륭한 보통들이 필요합니다. 우린 그걸 가졌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거예요."

정도의 내용이었던 것 같다.


‘보통의 힘이라니.’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머리를 띵 맞은 느낌이었다. 장담컨대 이것도 부장님의 정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역정을 낼 만한 소리다. 아마도 부장님은 똑똑한 리더십에 대한 칭찬이 고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회식이 끝나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해왔다. 그리고 확신했다. 단순히 순발력이 부족했다거나, 긴장해서가 아니라 이 질문 자체가 꽤나 어려운 질문이었다고. 왜 유독 우리나라만 성장하고, 많은 것들을 이뤄갈 수 있었을까? 치아점이 뭐였을까? 다양한 이유들을 떠올렸지만, 이전까지는 뾰족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 연사의 말이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답에 가장 가까웠다.


그렇다. 우리는 이토록 뛰어난 시민의식과 성장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는 훌륭한 보통들의 나라이다! 높은 교육열과 잘 갖춰진 시스템을 바탕으로 '상식'이라고 불리는 수준이 높다. 안주하지 않고, 성장하려고 매 순간 노력한다. 다수의 품격이 이 사회를 빚어왔다.

이건 정말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나 역시 그 보통 중 하나이다. 으쓱한 기분이 들었다.





AI를 파고들기 전, 나는 겁이 났다. 이 무서운 레이스를 누군가 제발 멈춰주기를 바랐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능력을 월등히 뛰어넘는 존재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을 하다니. 너무나 위협적이다. 그들이 어떤 가치관과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모른다. 아니, 아직까지는 그 공포의 대상이 누구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AI 근처로 접근해 볼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 기저에는 어려운 기술일 것이란 막연한 편견과 이 압도되듯 무서운 기분이 깔려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일이었다.


하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AI를 공부하며 가장 명확해 진건, 이 레이스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AI에 대한 공포와 사회적인 파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이 가져올 진보는 순식간에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을 것이다. 거스르거나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풀 수 없던 수많은 문제들, 지구 온난화, 연료나 식량 부족 문제, 질병, 그리고 노화. 이 복잡하고 어려운 사회적 문제들에 꽤 많은 해답을 AI가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대가 있는 한 기업들은 AI에 대한 투자와 발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멈출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건 다시 한번 훌륭한 보통의 힘을 쌓아가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성장해야 한다. 이건 모두가 다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해 AI를 배우자는 식의 단순한 접근이 아니다. 그건 효율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각자의 자리에 더욱 집중하면서 AI를 통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조금씩 AI를 일상에 활용해야 한다. AI 툴들로 내가 해오던 일들을 비춰보는 습관을 기르자. 성장해야 하는 건 피할 수 없이 우리에게 떨어진 분명한 과제이다.


하지만, 나는 성장보다는 성숙해져야 한다는 데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무분별한 배척도, 무모한 수용도 옳지 않다. 유용한 기술은 받아들이면서도 비판적인 시선을 내려놓아서는 안된다. 휘둘리지 않도록 자주 돌아보며 내 위치를 확인했으면 한다.

AI 윤리에 대해도 고민해야 한다. 기술은 중립적이지만 그 사용은 그렇지 않다. 설계하고 활용하는 사람의 책임감과 가치관에 대해 최소한의 울타리가 필요하다.

또한 AI는 학습 데이터에 기반을 두고 발전하기 때문에, 데이터에 내재된 편향이나 차별을 그대로 학습하는 실수를 보여왔다. 데이터의 다양성과 공정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매번 역사는 똑똑한 민중이 힘을 합칠 때마다 새롭게 씌어왔다.

지금이야 말로, AI의 발전을 가늠하면서 그 방향을 다듬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AI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리고 이 변화의 시대에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이건 아주 당분간 우리의 밥그릇을 지켜내기 위한 질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넓게는 우리 스스로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지향점이 될 것이다.


결국 기술의 시대를 이끄는 건, 여전히 사람이다.

그 사람이 얼마나 성숙하고, 열린 태도로 배움을 이어가느냐,

그게 앞으로의 문명을 결정할 것이다.


지금 당신은 AI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신가요?

keyword
이전 10화AI 시대의 두 번째 키워드: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