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디지털 OFF, 모두를 위한 자연 놀이 레시피
자칭 '베프'라고 부르는 친한 친구의 연락을 뜻하지 않게 수 일 동안 무응답한 적이 있다. 친구는 '얘가 말 못 할 무슨 사정이 있나' 싶어 톡 씹은 이유를 굳이 캐묻지 않았다고 했다. 사려 깊은 배려심 때문에 나는 연락을 잘근잘근 씹어 삼키고 나서도 그 사실을 며칠 동안이나 전혀 모르고 있었다. 친구와의 이전 대화에서 마음이 상한 것도 아니요, 알리고 싶지 않은 개인사가 있던 것도 아니요, 육아가 힘들어서 톡을 확인할 정신까지 전무했던 건 더더욱이 아니었다. 아무 리액션이 없었던 변명을 뒤늦게라도 덧대자면 다름 아닌 '수많은 알림들' 때문이었다.
이 시대 현실 육아맘은 소액의 할인에도 다분히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뭐 하나 작은 걸 사더라도 스토어 알림을 설정해 두면 1000원 할인쿠폰을 쥐어준다고 해서 여기저기 알림 설정 버튼 꾹꾹 눌러뒀다. 그러는 사이 현실 육아맘의 깨톡계정에는 수십 개, 아니 백여 개쯤은 되는 알림이 차곡차곡 설정 돼버린 모양이다. 매일 오전 10시만 되어도 재깍재깍 오는 알림들 덕분에 잠깐만 개인 메시지를 못 봐도 알림 메시지들 아래 진짜 봐야 할 개인적인 대화 메시지가 완전히 깔려버린다. 그렇게 친구의 메시지가 땅속 깊이 숨어버린 고구마처럼 단단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친구야, 미안!
육아템과 생활템을 구매하는 스토어뿐일까. 최근 폰 사용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인스타그램을 쓰면서도 '알림' 공지는 흔하게 볼 수 있다. 팬을 자처하고 싶은 인플루언서들의 계정을 팔로우하다 보면 유용한 꿀템들 소개도 종종 접하는데 '오, 이거 나도 써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짜라라 떠오르자마자, 나의 인플루언서들은 눈치챘다는 듯이 센스 있게 '알림'이라는 댓글을 달라고 안내해 준다. 두 글자만 쓰면 상품공구가 시작될 때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고 하니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냉큼 알림을 달아두는 건 시간문제. 시간이 지나면서 구매욕이 훅훅 줄어가기도 하는데 세심한 알림 메시지 덕분에 꺼져가던 소유욕이 다시 불타오르기도 할 때가 많으니 이것 참 유용하면서도, 주머니를 자꾸만 열게 만들어서 얄밉기도 한 알림 되시겠다.
그 많은 알림
다 꺼버리면 안 돼?
진짜 필요한 알림만 선택하면 되잖아
자고로 '알림'은 기상시간에 늦지 않게 일어나라고 상기시켜 주는 요란한 벨소리가 찐 아니었던가. 내 나이 스물네 살 아침 뉴스를 맡아 진행했던 적이 있는데, 아무리 늦어도 새벽 4시에는 일어나서 방송국에 가야 했기에 3시 30분부터 꽤나 촘촘한 간격으로 생존형 알람을 설정해 둔 적이 있다. 기상알람이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알림'이었다. 일어나라고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고, 너무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스물넷 새내기 직장인에게 회사가 배정해 준 업무를 재깍재깍 흠없이 반항 없이 처리해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했으니까, 요긴하고 고마웠다. 스무 번 서른 번 요란하게 울려대도 과하지 않은 알림이었다. 그런 알림이야 말고 버릴 게 없었다.
그로부터 약 16년 정도가 흘렀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알림의 바다에서 살아간다. 곧 추워질 거니까 아이들 애착이불도 포근한 거 구매해야 할 것 같은데 월요일 오전 10시에 특가 오픈한다고 하니 알림 꾹! 예약한 제 때 하면 다둥맘 찬스로 무료 이용가능한 서울형 키즈카페는 화요일 오전 9시에 예약창이 열리니까 또 자발적 알림 설정! 아이들이 사파리 가자고 졸랐는데 날씨 딱 좋은 가을날에 에버랜드 한번 가줘야 하니까 사파리스페셜 투어 예약창 열리는 월요일 오후 3시 맞춰 10분 전 예약 전쟁 치를 알림 꾹! 그 어느 하나 놓칠 수가 없어서 죄다 알림 설정 꾹. 꾹. 꾹이다. 특가 좀 놓치면 어때서, 예약 전쟁에서 좀 지면 어때서, 돌고 돌아 기억날 때 우연히 기회를 가지면 어때서, 그토록 간절하고 절실하게 알림을 만들고 만들고 만든다. 업체에서도 알림을 주고 직접 설정한 폰 알림도 기어코 제 기능을 잘 해내니 알림은 기하급수적으로 나날이 늘어만 간다.
같은 육아맘이라면 서로 '카페인 중독'이라며 손뼉 치고 공감하는데, 또 하나 공감백배할 건은 바로 '알림 중독' 아닐까.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잘 살던 시대는 분명히 존재했다. 갖고 싶은 물건 판매를 오픈을 디지털 기기로 따박따박 알려주지 않아도 우연히 판매창을 타이밍 맞게 마주치면 구매할 수 있었고, 혹여 놓쳤다고 해도 어디선가에서나 특가는 또 등장하기 마련이었으니까. 딱히 관심이 없는 물건이었는데도 자꾸만 알림이 와서 살펴보다가 견물생심에 결국 지갑을 열게 만든 적도 꽤나 되었으니 이쯤 하면 알림 설정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 그립다. 설정된 알림이 어찌나 많은지 해제하려고 나서도 결국 몇 개 지우다가 손을 놔버리게 되는 지경이고 또 지우다 보면 '아, 이건 그래도 제법 필요한 알림 아니던가' 고르다 보면 또 중도 포기. 결국 알림 중독에서 완전히 탈출하는 각 잡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만 절감한다.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잘 살던 시대는 분명히 존재했다.
알림 설정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 그립다
알림 없는 일상을 상상해 본다. 오전 10시, 아이들 영어노출에 도움이 될까 싶어 찜해둔 영어책 공구가 오픈했다는 소식, 지난번 샀던 아이들 로션 제품 회사에서 또 새로운 제품 판매를 오픈했다는 소식, 평소 애용하는 대형서점 앱에서 꼬박꼬박 전해주는 출석 쿠폰 알림. 이 모든 알림 아무것도 받지 못해도 실은 아침나절 보내는 데 큰 탈은 없을 거다. 오전 11시, 초록창에서 아이 물티슈를 깜짝 특가에 라이브 판매한다는 알림, 평소 유용한 건강 정보를 많이 줘서 팔로우하고 있던 약사 인플루언서가 오메가3를 특가에 데려왔다는 소식. 이 역시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했다고 해서 오늘 하루가 억울해지지는 않을 게 분명하다.
스타벅스 할인 패스 덕분에 오후 2시 이후 커피 한 잔 30퍼센트 할인이라는 얘기, 이거 기억 못 하면 어떠한가. 오후 3시, 아이 어린이집에서 알림장 도착했다는 반가운 알림, 이거 업데이트되자마자 30초도 안돼 열람 못하면 어떠한가. 할인 정보를 시시각각 꿰뚫고 있지 않더라도 우연히 할인을 마주치면 더 반가울 텐데! 알림장의 선생님 이야기에 초단위로 리액션하지 않더라도 1시간 뒤면 더 반갑게 우리 아이 만날 텐데! 넘쳐나는 알림은 삶에서 ‘우연히 하게 되는 일들’의 확률을 낮춘다. 더 반가울 수 있는 ‘뜻밖의 기쁨' 영역을 켜켜이 줄여나간다. 언제부터 이렇게 명쾌하고 확고한 고지를 선호하게 된 걸까. 알려 주지 않는 세상, 알림 하지 않는 세상. 그 모호하면서도 의외의 것을 기대하던 마음이 참 그립다. 그걸 알면서도 알림 하나 버리기가 참 안 된다.
넘쳐나는 알림은
삶에서 '우연히 하게 되는 것들'의
확률을 낮춘다
'뜻밖의 기쁨' 영역을
켜켜이 줄여나간다
방금 글을 마무리하려다가, 잠시 핸드폰 화면이 번쩍해서 보니 며칠 뒤 열리는 신작, 오픈이 머지않았다고 이야기해 주는 알림이다. 국민 첫사랑 배우 수지와 스크린에서 오랜만에 보는 것만 같은 김우빈 배우의 호흡이라니, 알림 가치 톡톡히 있는 친절한 고지임에는 틀림없지만, 번쩍번쩍하는 폰 스크린 때문에 잠시 넷플릭스 앱에서 길을 잃고 이것저것 터치해 보느라 20분을 잃었다. 아무 알림 없이 잠잠했다면, 옆에 잠들어 있는 폰을 깨울 일도 없었을 텐데, 모처럼 쓰는 작업에 몰두해 있던, 제법 마음에 드는 내 모습을 방해받은 것 같아 또 괜히 억울해지는 마음.
알려 주지 않는 세상
알림 하지 않는 세상
그 모호하면서도
의외의 것을 기대하던 마음이 참 그립다.
하루에 하나씩, 설정해 뒀던 알림을 해제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하는 오늘이다. 덜 알림 받는 하루를 보내겠다고, 한 두 가지쯤은 특가든, 속보든, 혜택쿠폰이든 놓쳐도 억울해지지 않겠다고 생각해 둔다. 오히려 알림 중독의 나날들에 나의 것을 하나씩 잃어가는 요즘이 더 억울하지 않았나. 멀고도 멀 테지. 그러나 하나씩 해제하는 길만이 간신히 살 길 같은 ‘알림 중독’ 탈출 프로젝트. 함께하실 분 있다면 슬그머니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