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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Zero sum game


딸과 둘이 북촌을 걸었다.
발효한 재료들로 음식을 만드는 식당에서
조금 신기한 식사를 하고 딸이 좋아하는
오설록의 진한 녹차라떼도 마셨다.
곳곳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모두 다른 모습이어서 그런 하늘을 보는 맛에
아무리 걸어도 힘들지 않았다.

나에겐 딸이 둘이 있다.
막내는 내가 퇴사하고 낳은 아이라서
오롯이 내 손으로 키웠다.
그런데 큰 아이는 6살때까지 시어머니가 키워주셨다.

나는 출산 전날까지도 회사에 나가서 씩씩하게 운동삼아 일을 했었기 때문에

 아이를 낳고서 출산휴직 1년을
알차게 보낼 수가 있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이름을 부르면 엄마를 알아보면서 내가 지나가면 까르르 웃기도 하고
정말 행복했다.

아이가 6개월되었을때 남편이 미국으로 보름간 출장을 갔었다.
원래 혼자 밤에 잠도 못자는 겁쟁이였는데 그 보름간은 아이와 지내느라 두렵지도 않았다.
남편이 출장중이던 어느날 시아버님이 찾아 오셨다.

“ 아가, 니 꿈이 행장이 되는거라고 했지?”
“네… 뭐…. 입사 면접볼때 그렇게 대답했죠.”
“내가 생각해봤는데 애기가 돌이 되면 엄마를 확실히 알아봐서
니가 복직하기 힘들것 같다. 오늘부터 내가 데리고 가서 돌볼테니 너는 복직을 하거라.”

그렇게 청천벽력같은 선포를 하시고는

 나와 아이를 차에 싣고 시댁으로 데려가셨다.
집으로 돌아와 엉엉 울면서 미국에 있는 남편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휴대폰이 생기기 전이라 연락이 안됬고
울다가 지쳐 생각하니 아버님 말씀이 맞는것 같기도 하여
나는 다음날 복직 신청을 했다.

복직을 한 후로는 점심을 제대로 먹질 못했다.
아이와 통화하느라 30분을 보내고 나머지 시간엔
명동 신세계 백화점과 남대문 수입상가를 돌면서
아이옷과 머리핀, 인형등 닥치는대로 사두기 시작했다.
주말에 데리고 올 아이를 생각하면 배도 고프지 않았다.

그때는 토요일도 근무를 하던 시절이라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는 시댁에서 아이를 키워주셨고
토요일날 1시에 퇴근하면 총알같이 남편과 함께 시댁으로 가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일요일 밤까지 목이 쉬게 책을 읽어주고
뒹굴고 놀았다.
그리고 주중에 사두었던 온갖 물건들을 쏟아두고
아이에게 입히고 먹였던것 같다.


그리고 일요일 밤이되면 밤새 뜬눈으로 지냈다.
월요일 새벽이면 아버님이 차를 갖고 오셔서 나와 아이를 태워 시댁으로 가시는 도중에

나를 회사에 내려주고 카시트에 아이만 태워 가셨다.
아이는 내가 내릴때쯤에 어김없이 잠에서 깨서
핏줄이 보이도록 울었고 결국에는 나의 화장품이나 목걸이 같은걸
한개씩 쥐어 주어야 다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출근하는 월요일은 정말 지옥같았다.
회사에서 인정을 받을수록 내 마음 한켠에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때 선배들은 나에게 말했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괜찮아진다고. 그때는 울지도 않는다고.
지금 회사를 그만두면 평생 후회한다고…

남편은 내가 일에 대한 욕심이 무지하게 큰 사람이란걸
알기때문에 승진을 코앞에 두고 퇴사를 고민하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해주질 못했다.
그야말로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맡겼다.


어느날 아이가 내게 물었다.

" 엄마, 나 버렸떠?"

"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가 널 왜 버려.."

이야기를 들어보니

유치원에 어떤 아이가 왜 너네 엄마는

안보이냐고 했던 모양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내가 도대체 뭘 위해 일을 하는건가 싶었다.
결론은 ,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은 내가 시키겠다고 결심했다.

이렇게 뒤늦게 큰 아이와 나는 6년이 지나고야 둘이서 껌딱지처럼  지낼수 있게 되었다.
내가 6년간 회사다니면서 인정도 받고 돈도 많이 벌어서 일찌감치 강남에 아파트도 마련했지만 그보다 더 더 중요한걸 놓쳤다.
막내를 키워보니 아이는 매일 시시각각 변하는게 보였다. 자기를 버렸냐고 묻던

그 6살.

막내의 6살때 그 생각이 다시 났는데

6살은 정말 애기였다.
 사랑스런 순간들을 6년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것도 미안했다.
이래서 인생은 zero sum game 인가보다.

씩씩하고 당찬 막내와는 달리 큰 아이는 아직도 제 동생을  껴안고 뽀뽀하고 볼을 부비고

 뒹굴고 난리다.
나에게도 수시로 와서 파고 들고 볼을 부비고 그런다.
사랑이 참 많은 아이다. 그게 참 다행이다.

나는 두 딸들과 1:1 데이트를 하려고 노력한다.
두 아이가 각자 다른 아쉬움을 가지고 있을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따로 나가서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먹고 걷는다.

이제 막내와의 시간을 만들어 볼 차례이다.
막내야 기대해!
It's your turn.^^

https://youtu.be/1 ttseRx3 u8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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