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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엄마 돌아오다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왔다.

열흘이다.


8월 말쯤 백신 1차를 맞고 9월 중순에 건강검진을 했었다.

그리고 9월 말에 결과서를 받았다.

남편과 나는 작년까지 아무 문제없었던 수십 가지의 혈액검사 중에서 혈소판과 관련된 검사들이 기준치를 아주 조금씩

벗어나 있었다.  

크게 벗어난 것들이 아니라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찜찜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점을 발견했다.

올해 심전도 검사에서 st-t파 변화가 발견되었으니 순환기내과에

방문하라는 결과였다.

백신을 맞은 후에 이따금씩 가슴이 쿵쿵하고 뛰는 현상이  나타나긴 했었다.


집에서 가까운 삼성서울병원에 예약하려니 한 달이나 있어야 한대고,

건강검진을 받은 강북삼성병원은 건강검진실에서 다이렉트로 예약을 잡아주어 지난주에 진료를 받았다.

심혈관센터장인 의사는 아주 무섭게 이야기했다.

원래 당일 예약이 안되고 외래 검사는 대부분 한 달 뒤에 예약인데

빨리 잡아줄 테니 이틀간 심장 정밀 검사를 받으라 했다.


다음날 남편과 함께 다시 방문하여 심장초음파, 운동부하검사를 하고

24시간 심전도 검사를 위해 가슴에 6개의 이상한 기구를

붙이고 하루 동안의 일들을 적어야 하는 일기장을 받아 들고 왔다.


너무너무 떨렸다. 난데없이 왜 심장검사를 받아야 하는 건가…

매년 건강검진을 정밀하게 받고 있었고 분명 작년까지  아무 문제없었는데 말이다.

이틀에 걸쳐 모든 검사를 하고 일주일 동안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미쳐버릴 것 같았다.

괜히 더 두근거리는 것 같고, 어지러운 것 같고, 식구들은 돌아가면서 내 얼굴을 살피며 창백한 것 같다 하고….


절대 인터넷 따위는 검색하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건만

하루도 안되어 나는 인터넷상의 온갖 무서운 이야기들을 읽으며 캡처하고…..

그럴수록 극도의 불안감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서 쓰지 못하니 구독자님들은 감사하게도 댓글과 메일로 나의 근황을 계속 물어 오셨다.

크리스천답게 의연하게 기도해야 함을 잠시 망각하고,

기도는 기도대로 하면서 돌아서면 결과에 대한 걱정이 스며들었다.


남편은 검사하고 오던 날 아이들에게 쓸데없이 장문의 카톡을 했던 모양이다.

엄마를 스트레스받게 하면 안 되며, 집안 일도 모두 함께 해야 하고 기타 등등….

병원에서 가슴에 기구들을 주렁주렁 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막내딸의 전화를 받았다.

수업시간에 나와서 전화를 한 것이다.


“ 엄마?  엉엉엉…. 엄마… 어떡해, 엉엉엉… 지금 어때.. 엉엉엉”


별일 아니라 단순한 검사라고 둘러대며

 펑펑 우는 막내를 진정시키고 전화를 끊고서 남편에게 한마디 했다.

아니,  왜 회사에 있는 애 하고 학교에서 수업 듣는 애한테까지

카톡을 해서는 놀라게 하느냐고…


지난 주말에 연휴고 뭐고 나의 상태는 우울 그 자체였다.

색으로 말하자면 다크 그레이.

식구들은 모두 어찌나 정보수집 능력들이 좋은지

쉴 새 없이 내게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모두 닥터가 된 듯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결과를 들었다.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다. 약간의 부정맥은 있으나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정도이므로

걱정할 거 없다는 것이었다.

부끄럽지만 의사 선생님 앞에서 훌쩍거리고 울었다.

남편은 좀 더 자세한 것들을 질문하고 답변을 들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안 그래도 지난주에 검사받으라는 자신의 말에

내가 상당히 놀라 하는 것 같아서 걱정됐다면서

지금처럼 계속 운동하고 음식 가려서 골고루 먹으면 된다고 하셨다.


남편은 언제나 늘 담담한 사람이다.

별로 놀라는 것도 없고 걱정도 많이 하지 않는  성격이다.

지난 1주일 동안 나에게 별것 아닐 텐데 왜 그리 걱정하냐고  참 이상하다고 핀잔을 주었다.

그런데 결과를 들으러 가기 전날 밤에 내가 먼저 막 잠들었는데

남편이 내 손을 꼭 잡아주고 팔과 이마를 쓸어 주는 게 아닌가.

아…. 이 사람도 좀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싶었다.


오늘은 백신을 맞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드디어 2차 접종을 완료하였다.

그리고 하늘도 보았다.

높고 푸르고 깊은 가을 하늘이 내 머리 꼭대기에 있었구나.


가을엔 기도하게 하소서… 라는 어느 시인의 시처럼

이 가을, 하나님은 내게 무한대의 감사와 기도를 하게 만드셨다.

밤이 되어 잠을 자고, 아침이면 건강하게 깰 수 있음에 감사하다.

더 이상 두근거리지 않고 두렵지 아니하여 감사하다.

내가 떨지 않게 곁에서 재택근무하면서 온갖 집안일 도맡아 해 준 남편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이렇게 나는 나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걱정해주신 작가님들과 메일로

위로해 주신  작가님들정말 감사드려요.

함께 마음을 나눠 주신거 잊지 않을게요.♡♡


(갱년기 여성들에게 이따금 가슴 두근거림이 있는 사람이 많은데  반드시 심장검사는 한 번쯤 받아서 원인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그냥 갱년기려니… 하고 넘길 것은 아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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