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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지 못 할 다짐은 하는게 아니지

동지 팥죽♡



동지 팥죽


오늘은 동지.

어제 미리 만들어 둔 팥죽을 데우기만 했다.


방앗간에서 파는 습식 찹쌀가루에

따뜻한 물을 부어가면서

익반죽을 해준다.

반죽을 만져 보았을때 말랑말랑 하면 된다.

동글 동글 빚어둔다.


맵쌀은 물에 오래 불려 물기를 빼둔다.


팥은 깨끗이 씻어서 물을 넉넉히 붓고

팔팔 끓이는데

첫 번째 끓어 오르는 물은 독이 있으니

버려야 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요즘 연구에서는 독이 없다고 버릴 필요가  없다고도 한다.

첫 물을 버리고 다시 끓이면

 확실히 덜 떫은것 같다.


이렇게 물러질 때까지 푸욱 끓인후

팥을 걸러내어 믹서에  부앙~ 갈아준다.

(나는 이때 팥의 반만 갈고

반은 통팥을 그냥 사용한다.)


삶았던 팥물에 물을 좀 더 넉넉히 붓고

갈아준 팥, 불린 맵쌀, 통팥을 넣고 중간불에서 계속 저어가며 끓여준다.

맵쌀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끓여야 하는데

이때부터는 인내심 테스트!

잠시 방심하면 다 눌어 붙어버리므로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동글 동글 빚어 놓은 새알은

끓는 물에 넣어 동동 떠오르면

건져내어 찬물에 한번 헹궈준다.


다 끓은 팥죽에 새알심 띄우고

 소금과 설탕은 각자 기호에 맞게 넣어 먹는다.




지금은 팥죽만들기가 익숙해졌지만

아이들 어릴적에 처음 만들때

팥의 양 조절 실패,  불 세기 조절 실패,

새알심 실패 이렇게 트리플로 다 실패해서

몽땅 버린 적이 있었다.

그냥 모두 넣고 끓이면 될 듯 한데

세심하게 신경쓰지 않으면 망해버린다.


가장 힘든건 계속 붙어 서서 나무주걱으로 저어야 한다는 것이다.

팥하고 쌀이 전부인데 들어가는 재료에 비해 너무나 고된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한 번 만들어 두면

조금씩 냉동시켜서 겨울동안 가끔 녹여

끓여 먹으면 이만큼 맛있는게 없었다.


내가 어릴때, 블란서 큰 손 우리엄마는

팥죽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었다.

한 번 끓이시면 몇날 며칠을

하루 세 끼 팥죽을 주셨으니까 말이다.


많은 양을 끓이다 보니 깊은 들통에 넣고

팔을 높이 들고

고추장 만드는 커다란 나무 주걱으로

하루종일 젓고 계셨다.

다 끓고 나면 나랑 엄마는 힘을 모아

그 들통을 베란다에 내놓았다.

차가운 베란다에서 서서히 식히기 위해서였다.


엄마는 내게 수시로

“ 얘, 팥죽 식었는지 가봐라.” 하셨다.

그 심부름을 동생에겐 안 시키시고

 꼭 나에게만 시키셔서

엄청 짜증을 내며 툴툴거린 기억이 난다.

‘ 아니, 팥죽이 식었는지는

왜 나만 확인해야 하는거지?’

정말 불만이 많았지만

종일 들통 앞에 서 계셨던 엄마를 생각하면 불평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들락거리며 확인하다가

 좀 식었다 싶어서

“ 엄마~ 다 식었어.” 라고 외치면

엄마가 국자를 들고 베란다로 가셨다.

그런데 잠시후...

스테인레스 들통 뚜껑이 쾅! 하고

닫기는 소리가 난다.


엄마가 식었는지 확인하라고 하시면 나는 팥죽의 표면에만

슬쩍 손가락 넣어보고 식었다고 한건데

크고 깊은 들통 가득 팥죽을 끓였으므로

사실은 깊은 곳의 팥죽은 전혀 식지 않고

 그대로 뜨겁게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국자로 풀때

나의 말만 믿고 푹 푸셨다가

그릇이 뜨거워 떨어뜨려서

 베란다가 팥죽으로 난리가 났기 때문이다.

( 팥죽 얼룩은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팥죽을 끓인 날은

또다른 고된 노동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끓으면서 사방에 튀어오른 팥죽을 닦아내느라

주방대청소가 되어 버리곤 했다.


이렇게 번거고 귀찮고 힘들었지만

엄마는 매 년  팥죽을 만들어 주셨다.

그 정성을 먹고 자란 덕에

나도 귀찮지만 팥죽을 쑨다.

엄마만큼의 스케일은 아닌지라

 아주 조금씩 만든다.


나는 기독교인이라서 팥죽을 왜 먹는지등의 이유는 별로 중요치 않다.

단지 이렇게 추워질때

곡식들을 불리고 갈고 끓이고 하면서

다가올 엄동설한에 대한 정신적 대비를

 할 수 있다.^^


팥죽을 쑤는 엄마들의 마음은

단 한가지일 것이다.

좋은 영양소를 지닌 곡식을 맛있게 조리해서 가족들에게 먹이고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


이번엔 아주 조금 만들었다.

 냉동실에 여분의 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딱 한 끼만 요기할 수 있을 만큼만 만들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사먹어야지…라고

지키지 못할 다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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