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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의 끝이 있을까

서촌여행


장마와 태풍이 지나고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다.

어제 아침에 창을 여니 매미소리가 와글와글댔다.

덥지만 여름의 끝을 마무리 하고싶은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집을 나섰다.


3호선 지하철을 타고 덜컹거리며 한강을 건너는데

우연히 바라 본 사람들의 표정이 참 가볍고

투명했다.

이제 코로나 걱정은 조금 뒤로 물린것 같기도

하고, 더위를 무릎쓰고 용기있게 나온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저마다 희망이 보였다.


얼음물 한 병 들고 도착한 곳은 서촌.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전시도 보고 골목 골목

걸었다.

거의 1년만에 온 서촌인데 그사이 너무 많이

바꼈다.  청와대 개방이후 서촌은 도로정비와

기타 여러 개발 계획들이 생긴 모양이다.

나는 무궁화 공원을 참 좋아하는데 그 주변에

특히 새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서 전처럼  

어린시절을 추억할 만한 골목들은 사라져 가고

있었다.

발효 식자재로 비건요리를 선보이던 식당이

있는데 젊은 주인장이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도 들었다.

아! 내가 모르는 시간들이 흐르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렇게 두  시간 양산을 쓰고 걷다가

첼로 연주소리에 발길이 멈춰졌다.

효자로에 있는 통의동 마을마당이었다.

노부부께서  Old Lang Syne을 연주하고 계셨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계이름대로 담백하게

연주하시는걸 보니 배우신지 오래되어 보이진

않았다.

연주가의 등 뒤에서 반짝이며 쏟아지는 햇살이

마치 은하수처럼 그분들을 감싸 안았다.

가만히 앉아서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손수건으로  훔치는데 할머니가 오시더니 내 손에 선물이라며 무언가를 쥐어 주셨다.

직접 만드신 작은 주머니에 성경말씀이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또다시 한강을 건너면서 아까와는 다른 생각들이 머릿속에 부유하고 있었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나이듦과 노년의 삶에 대해

생각했왔다.

10여년 전에 전공과는 상관도 없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도 그렇고, 쉬지 않고 글을 쓰며

내가 살아가는 시간들에 대해 기록하는 것, 막내가 3살 되던 해부터 매년 힘들어도 여러 나라 여행을 감행해온 것, 노안이 심해지기 전에 책을 많이 읽은 것, 매일 아침밥을 정성껏 지은 것.....

이 모든건 내가 좀 더 나이들었을때 힘없는 할머니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꼭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아마도 무더위에 의연하게 연주하시던 노부부의 모습이 내가 바라는 나의 노년의 삶인것 같다.


흐르는 시간이 강물이라면 인생은 강줄기가

모여 이뤄진 바다쯤 되지 않을까?

그런데 바다도 흐른다. 갇혀있지 않다.

그러니 우리의 인생은 내가 살아 있는 한 계속

흐르고 있는게 아닐까.

멈추지 않는 생각, 움직임들이 나의 노년을

아름답게 해 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노부부는 침침해진 눈을 비비며 악보를 외우시느라 힘드셨겠지만 그분들의 밤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싶다.

훗날 우리 부부의 밤도 그러했으면 참 좋겠다.


https://youtu.be/TCSqGmjR3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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