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쁨 나의 기록: 사랑하는 아이를 떠나보낸 기록
기쁨이가 태어난 지 약 27시간이 넘어가던 자정을 넘긴 늦은 밤, 남편의 핸드폰이 울렸다. 출산 다음날 밤이었다. 아침에는 기쁨이 상태가 처음 왔을 때 보다 조금 안정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기분이 좋았던 날이었다. 신생아 빈혈, 태변 흡입, 폐동맥 고혈압, 질소 치료 같은 도무지 이해가 잘 안되는 단어를 검색하고 아기가 잘 회복했다는 글을 기어코 찾아내어 희망 회로를 팽팽 돌리던 날이었다. (이후 사람들은 치료 예후가 좋지 않을 경우 대게 글을 올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편은 심각한 목소리로 네, 네, 짧게 대답만 하더니 이내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를 돌아보는 남편 얼굴 표정만으로도 이미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중환자실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아기 상태가 많이 안 좋다고, 한두 시간밖에 못 버틸 것 같다고, 엄마는 수술하고 아직 못 걸을 테니 아빠라도 아이를 보러 오라고 했단다. 그 어떤 악몽이 이보다 더 끔찍할까. 말을 전하는 남편도, 듣는 나도 그 어떠한 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계속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기가 얼마나 버텨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수액과 페인 부스터, 진통제를 주렁주렁 달고 있던 나는 당장 움직일 수 없으니 우선은 남편이라도 아기 곁으로 재빨리 가야 했다. "너라도 얼른 가. 기쁨이한테 엄마가 많이 사랑한다고 전해줘, 오늘 밤만이라도 꼭 버텨달라고 해줘, 응? 병원에다가는 끝까지 최대한 뭐라도 해달라고 말해주고." 남편은 날 두고 가야 하는 사실이 맘에 걸려 선뜻 출발하지 못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함께 가기 어렵다는 걸 알았기에, 이내 빠르게 옷을 챙겨 입고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그리고, 나는 병실에 홀로 남았다.
모두가 잠든 시간, 시계 초침 소리만 들리는 어둡고 고요한 방. 링거 줄을 달고, 텅 비었어도 여전히 불러있는 배를 쥐고 한걸음 내딛기도 힘든 몸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나. 내가 낳은 아기가 죽어가는데 달려갈 수조차 없는 나. 무력하기 그지없는 내 모습을 자각하자 나는 까무러치듯 무너졌다. 비명을 지르는데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 슬픔, 혐오감과 수치심이 나를 집어삼켰다.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는 없는 거였다. 신이 있다면 이따위 일을 내게 허락할 수는 없는 거였다. 할 수만 있었다면 나는 그 순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죽이고 또 죽이고, 그 잘난 신마저도 수십, 수백 번 죽인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내가 그때 죽었다면 나는 그 누구도 승천시키지 못하는 악귀가 되었을 것이다. 그 악귀의 한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대단하여 누구라도 그 서슬 퍼런 얼굴을 보는 순간 목숨을 잃었으리라.
한차례 대지진과도 같던 분노가 휩쓸고 간 폐허에서 나는 별안간 나의 아이를 떠올렸다. 내 아기, 내 기쁨, 내 사랑, 내 모든 것. 태어나 엄마 목소리 한번 듣지 못한 내 아기. 왜 나는 기쁨이가 태어난 순간 인사 한마디 못했을까. 왜 나의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낯선 이들에게 이끌려 그들 사이에서 죽어야만 하는가. 나는 이대로 내 아이를 보낼 수 없었다. 나는 기쁨이에게 해줄 말이 있었다. 나는 내 아이에게 가야만 했다. 주렁주렁 달려있던 줄을 모두 제거하고, 한걸음 한걸음 느린 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