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쁨 나의 기록: 사랑하는 아이를 떠나보낸 기록
이윽고 내 눈앞으로 의료진이 기쁨이를 데려와 보여주었다. 온 힘을 다해 울어대는 내 아기, 말할 수 없이 예쁜 내 아기. 그런데 유독 얼굴이 하얬다. 보통 갓 태어난 아기 얼굴은 시뻘겋다는데 순간 의아하긴 했다. 처음 얼굴을 마주한 아기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찰나, 아기가 힘들어하니 얼른 상태를 더 살피기 위해서 올려 보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는데, 아기는 의료진에 안겨 분만실 밖으로 나갔다.
분명히 후처치 때는 수면마취를 해준다고 했는데 너무 큰 흥분상태여서 그랬는지 잠도 들지 않았고 잠시 후 회복실로 이동했다. 회복실에 누워 있을 때 수술을 해준 당직의와 마치의가 번갈아 다가와서 아기가 빈혈 수치가 너무 좋지 않다 했고, 이후 수혈과 응급처치를 위해 아빠와 함께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로 갔다고 전해주었다. 아기가 참 예뻤다고, 기도하겠다는 말도 함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뱃속에 있던 아기가 여기 나와 함께 있지 않다는 사실이 몹시도 이상했다. 남편과 아기는 대학병원에 잘 도착했을까, 왜 빈혈 수치가 그리도 안 좋았을까. 어쩐지 너무 하얗기만 했던 아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도 제때 병원에 잘 왔구나, 이제는 의료진들이 우리 아기에게 가장 좋은 치료를 해주겠지. 불안함과 안도감 사이를 왔다 갔다 했지만, 정작 나는 허전함이라는 감정을 가장 크게 느꼈다. 이제 더 이상 나의 기쁨이 내 안에 없었다. 이 넓은 건물 안에도 없었다.
밤 열한시가 다 되어서야 입원 병실에 들어왔다. 병실에서 드디어 핸드폰으로 남편이 보내 둔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신생아 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찍은 듯한 기쁨이 사진 여러 장과 동영상 하나가 있었고, 지금 대학병원 중환자실 밖에서 대기 중이라고 했다. 출산 병원 니큐에서 기쁨이는 호흡을 어려워해서 이미 한 차례 기도삽관을 했고, 현재 옮겨간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여러 치료를 받고 있다 했다. 남편은 담당 교수 면담을 초조하게 기다리면서도 내게 기쁨이는 괜찮을 테니 걱정 말고 쉬고 있으라 당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이때부터 부정(denial) 단계가 아니었나 싶다. 분명 아기의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기쁨이가 잘못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4년전 26주 중기 유산(사산)으로 아이를 잃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끔찍한 불행이 내게, 아니 그 누구에게라도 두 번 연속으로 올 수는 없다고, 그건 확률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습게도 나는 다른 무엇도 아닌 확률을 믿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조심스레 출산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축하를 건네면서도 중환자실에 있다는 아기 소식에 많이 안타까워했다. 몇몇 친구들은 나도 인큐베이터 출신이라며 기쁨이도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힘을 실어줬다. 현재 기골이 장대한 '인큐베이터 출신' 친구들의 응원을 받는 이 순간이 나와 우리 가족에게 단지 재미있는 추억이 되기를 바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남편이 보내준 기쁨이 사진을 보고 또 보고, 쓰다듬고, 입 맞추며. 먼 곳에 있는 나의 기쁨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