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길목에서 쇼팽을

입시생의 연주로 만난 영웅 폴로네이즈

by 베리티

겨울바람의 예고편이 시작되었다. 목도리를 칭칭 두르고, 옷장의 두터운 외투를 개시하고 실내의 온기를 찾아 발걸음을 재촉할 그 무렵,

폭풍 같은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그랜드피아노의 풍성한 울림이 차가운 공기를 뚫고 퍼져나간다.


레슨을 받으러 피아노 선생님 댁에 갔던 날이었다. 평소와 다른 시간에 도착했더니 누군가 한창 연습을 하고 있었다. 훌쩍 큰 키의 호리호리한 남학생이 앉아있었다. 혹시나 방해가 될까 살금살금 옆을 스쳐서 연습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서는 피아노에 손을 대지 않은 채 한참 듣고 있었다.

폭풍전야처럼 먹구름의 조짐이 보이더니 휘몰아치다가, 도중에 이슬비도 뿌리고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날씨처럼 나아가다가 클라이맥스에 가서 구름 사이 빛을 드러내는 곡이었다. 그렇게 다가온 빛은 찬란하고 포근했다. 파워풀하게 남성적이면서도 동시에 섬세함을 잃지 않는 풍성함. 그렇게 전혀 다른 성질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신비로웠다. 피아노는 막힘없이 나아가다가 도중에 살짝 삐끗하기도 했지만, 그런 미스터치가 크게 다가오지 않을 정도로 곡 자체가 훌륭했다. 뭔가 뭉클한 것이 올라왔다.

그러다가 더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 학생이 갔나 보다 아쉬워하면서 이제 내 연습을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선생님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좀 높은 언성이 울렸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다시 질주가 이어지나 했는데 중간에 뚝 멈추었다. 그리고 그 연주는 더 들리지 않았다.


나의 레슨 차례가 되어서,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았다. 선생님의 언짢은 표정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학생이죠?" 나는 슬쩍 물어보았다.


그는 입시를 코앞에 둔 고3이었다. 연습을 하도 안 해서 여기 와서라도 하라고 피아노를 내주었더니, 자고 있더라는 얘기였다. 그러니까 연주가 들리지 않는 시간에 그 학생이 바닥에 누워 자고 있었던 것이고, 그걸 본 선생님이 화를 낸 거였다.


"근데, 그 곡 무슨 곡이에요?"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그 곡은 바로 쇼팽의 영웅 폴로네이즈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d3IKMiv8AHw

조성진의 쇼팽 폴로네이즈 op.53

그때 다른 세상이 열렸다. 그 곡은 이전에 내가 알던 쇼팽과는 좀 달랐다. 쇼팽의 왈츠와 녹턴, 에뛰드, 소나타 정도 손을 대본 정도로는 설명되지 않는 세계가 그 안에 있었다. 평소에 보여주지 않던 친구의 다른 면을 발견한 것과도 같은 기분이었다. 쇼팽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조국 폴란드에 대한 정체성 그리고 아주 절제된 애정 같은 외적인 요소뿐 아니라, 그 안에서 쇼팽의 내면까지도 엿본 듯한 느낌이었다.

그 후에도 피아니스트의 연주로 그 곡을 이따금씩 듣는다. 들을수록 새롭고, 쇼팽 특유의 루바토에 따라 곡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나중에 책을 찾아보니, 폴로네이즈는 쇼팽의 영감이 가장 아름답게 간직된 작품이라고 전한다. 쇼팽의 친구인 또 다른 대가 리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단호한 결의에서 비롯된 진지함 -위대한 옛 폴란드인의 전유물이라는 특성-이 가장 먼저 치고 들어온다. 전반적으로 전의를 느끼게 하고, 용기와 담대함은 아주 단순한 표현으로 드러난다.
단순한 표현은 이 전사 민족의 뚜렷한 특성이 되었다. 폴로네이즈에는 아주 침착한 숙고의 힘이 묻어난다. 엣 폴란드인들 그네들의 연대기에 묘사된 모습 그대로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 같다.
건장한 체격, 민활한 지성, 진중한 신심, 길들일 수 없는 용맹이 깍뜻한 예의와 친절까지 갖춘 모습으로.
그러한 모습은 전쟁터에서도, 전투 전야에도, 전투를 마친 후에도, 폴란드가 낳은 자들에게서 결코 떠나지 않았다.
-프란츠 리스트, <내 친구 쇼팽> 중에서

쇼팽의 폴로네이즈를 알고 나서야, 그가 피가 돌고 뼈가 있는 사람처럼 다가왔다. 쇼팽의 곡은 지나치게 아름답고 섬세해서 머얼건 밀랍인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세상 텐션이 아닌 어딘가 진공의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창백함. 그걸 산산이 부수어준 경험이었다.

물론, 내가 몰랐을 때의 일이다. 그래서 알려진 것으로 보이는 것으로만 무언가를 안다고 하기는 어렵다. 지금도 이런 식으로 모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많을까. 때때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 입시생은 지금쯤 전공을 하고 피아니스트가 되었을까?

그 이후의 일은 모른다. 실은, 피아니스트로 살아가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생각하는 쪽으로 기운다. 언젠가 어떤 레슨 선생님은 내게 이런 고백을 했다.

"저는 다른 전공을 가진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제일 부러워요. 피아노를 전공하고 그 길로 간다는 건 현실에서 얼마다 드문 일인가요."


그 입시생의 미래는 모르지만, 10대의 시간에 쇼팽을 연주하며 악보를 따라간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길을 가든 그의 발걸음에는 쇼팽의 시간이 묻어있는 셈이다. 비록 완벽하지 못하고, 미스터치가 있는 연주라고 해도, 수많은 관객들을 만나지 못한 연주라 해도 나는 충분히 그 안에서 쇼팽을 발견했다. 어느 서툰 연주가라도 그의 악보를 더듬고 이해하려고 했던 그 시간만큼은 음악가 안에 있다. 음악가의 시간이 나의 시간 어딘가에 자리 잡는다. 그런 자격을 얻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내가 아는 것은 그것뿐이다.

그래서 그 이름 모를 입시생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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