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 모양을 한 감기약처럼

외로움에 대한 대화를 나룰 때

by 베리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외롭다고 말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외롭다고 말한다고 해서 유독 외로운 것도 아니고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데, 그걸 말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굳이 왜 해야 하냐는 쪽이다.

말하고 나면 좀 후련해지는 것인가. 표현을 좀 하고 나면. 혹시 여기에 또 내가 놓치고 있는 인생의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 것인가.


얼마 전 숨 가쁜 승진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지인과 통화했다. 신문에서 그 이름을 보고 축하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의례적인 답례를 하기에 살짝 놀려주었더니, 뜻밖의 답이 돌아온다.

"점점 더 외로워지겠죠."


이럴 때는 어떻게 대꾸하는 게 정답일까. 진지해지기도 무시하기도 애매하다. 거기에다 대고 위로를 할까? 그거야말로 웃기다. 적당히 즐거운 비명쯤으로 받아들인다.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기 마련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최근에 한 웹툰작가를 방송에 섭외해서 만나게 되었다. 대개 그렇듯 일정이 빠듯하다 보니, 출연자의 저작을 제대로 다 챙겨보지는 못한다. 녹화가 끝나고 그의 작품을 찾아보았다. 역시 만화의 특성을 잘 살려서 조금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것들이 인상적이었다. (일에 쫓기다 보니 시간 내어 만화를 보는 것도 쉽지 않다. 집에 수백 권의 만화책을 쌓아두고 있어도 책장 밖으로 나올 일이 드물어진다. 그래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질 때가 있다. 만화책 책등만 보아도 설명할 수 없는 위로가 될 때가 있다. CD들이나 책장을 볼 때도 그렇다.)


스크롤을 내리다가 웹툰의 한 장면에서 멈춘다. 주인공 캐릭터는 세 컷에 걸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었다.

"사실 난 내가 '불편러'인 것이/

슬프고 화나고 억울하고/

외롭다!"


웹툰의 주인공은 기후위기에서 벗어나 보려고 작은 실천들을 하는데, 이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제각각이다. 누군가에게는 유난스럽게 보이고,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행동하는 사람의 입장은 또 다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삶의 어떤 면이 겹쳐서 보인다.


웃으면서 슬픈 고백을 받는 기분이었다. 기대하지 않고 드롭스캔디 캔을 열었는데 어릴 적에 먹던 잊고 있던 사탕을 발견한 것 같았다. 외로움에 대해서 줄곧 생각하는 일은 좀처럼 드물지만, 내가 느끼는 외로움과 가장 비슷한 모양의 사탕이었다. 대세에 끼는 것은 싫고, 모두가 환호하는 것에 선뜻 같이 손들기를 주저하며, 적당히 맞춰주면 편한 길이 보이는데도 그렇게 못 하는 사람. 나도 좀 세상 살기 편한 성격이었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다. 남들 좋아하는 거 좋아하고, 다들 하는 대로 살아도 크게 불편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더라면.

그 감정은 사탕 모양을 한 감기약을 닮았다. 팬시하고 알록달록한 드롭스 캔디 속에 섞여있을지는 몰라도 다 같은 사탕은 아닌 것.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약과 파란 약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던 네오처럼, 달콤하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 사탕을 집어서 얼른 삼킨다. 질끈 눈을 감아본다. 어릴 적 흔하게 걸리던 기침감기를 달래려고 먹던 약의 맛이 났다. 씁쓸함을 최대한 가리려고 제조한 기침약 시럽의 맛. 쓴맛이 입안 가득 번진다.


다르다는 것이 외롭게 한다.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다름이 사람의 개성이며 서로를 구별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니까.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고통과 외로움에 대해서 조금은 여유로워질 수는 없을까.


다른 사탕을 먹었을 때처럼 웃어본다. 달콤함이든 씁쓸하든 곧 사라지는 것은 같다. 존버거의 문장이 떠오른다.

모든 건 시어지고, 그다음에는 달콤해졌다가 나중엔 씁쓸해져.
-존 버거,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중에서


단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단 걸 먹을 때면 어쩐지 속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달콤함이 주는 안도감을 언제나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약간 쓴 편이 낫다. 시럽을 타지 않은 커피처럼.

사탕 모양의 감기약을 삼켰으니, 괜찮아질 것이다.


외롭다는 말을 굳이 꺼내지 않는다는 말은 틀렸다.

나는 제대로 된 외로움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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