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저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학교에서는 정작 중요한 것을 배울 수가 없다.
지식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생 말이다. 때때로 생각한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가르쳐준다기보다는 내가 배울 수 있게 하는 사람.
존 버저의 소설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뭔가를 완전히 깨우친다는 건 슬픈 일이죠.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있어요. 내가 말한다.
내 눈에 너는 초보자야.
아직도?
그 어느 때보다도!
당신은 선생님이고?
나는 가르치지 않았어. 네가 배웠지. 그런 달라, 나는 너를 배우게 했어. 그리고 너한테 배운 것도 많고!
소설 속의 나에게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그의 이름은 켄이고 내가 11살 소년일 때 그는 마흔 살이었다. 작가 존 버저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이 소설에서 켄이라는 남자는 '우리가 함께라면 세상의 어느 도시에서도 음악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믿게 만들었던 사람'으로 소개된다. 나의 어머니는 켄을 보자마자, 그를 '파리를 사랑했던 사람들'이라는 범주에 넣는다.
켄은 뉴질랜드 출신이었지만 세계 여러 도시를 살았고, 저널리스트부터 댄스 강사까지 온갖 직업을 전전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1937년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 처음 알게 된 두 사람은 돌아다니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책을 빌려주기도 하고 공연도 보고 켄이 그린 드로잉을 보여주고 거리에서 체스를 두는 사람들을 구경 다니기도 하면서 시시콜콜한 시간들을 지나간다.
사회 첫 발을 디디던 시절, 일이라는 것이 어떻게 돌아다니는지도 모른 채 여기저기 뛰어다닐 때. 이유 불문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아야 하던 때가 있었다. 딱히 이유를 따지자면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팀으로 일이 돌아가고 리더가 일일이 사과할 수는 없으니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막내 작가가 그 일을 해야 할 때가 많았다. 하루 종일 전화통을 붙들고도 섭외를 거절당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화를 내는 사람들을 상대하고 또 선배작가에게 혼나고 자정이 넘어서 집에 도착해서 쓰러진다. 납득할 수 있는 이유라면 뭘 고쳐보기라도 할 텐데 꼭 나의 일 때문만은 아니면서 또 굳이 나와 상관없다고 할 수도 없는 그 이상한 루프 속에서 비틀거려야 했다. 잘 버티나 싶다가, 어떤 날은 선배의 꾸지람에 뭔가가 올라온다. 일단 끝까지 듣다가 화장실로 달려간다. 아무리 힘들어도 일인데 남들 보는 데서 우는 건 최악이란 것은 알았으니까.
소설 속의 나도 무방비 상태에서 봉변을 당할 때가 있었다. 켄을 따라 들어간 술집에서 누군가 나에게 욕설을 퍼부은 것이다. 느닷없이 울음이 터질 것 같은데, 켄이 나의 어깨를 감싸 안고 밖으로 나간다.
우리는 아무 말없이 한참을 걸었다. 그래,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지. 그가 말했다. 울어야겠으면, 정말 울어야겠으면 나중에 울어. 도중에 울지 말고! 이걸 기억해야 해.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 오직 그 사람들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면 말이야. 물론 그렇다면 너는 이미 운이 좋은 거지, 세상엔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그들과 함께 있을 땐 도중에 울어도 좋아. 그렇지 않다면 나중에 울어.
켄은 나에게 이런 것들을 알려주었다. 둘 사이에 오갔던 책에 대해서도 뭘 가르치거나 하지도 않았다. 두 사람 모두 문학을 설명하는 것의 효용을 믿지 않았고,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켄에게 물어본 적도 없다. 켄 역시도 나의 나이나 경험으로 미뤄 볼 때 이런 책들을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는 식의 얘기를 한 적도 없다. 두 사람 사이엔 모두 책에 대해 배우려 한다는 암묵적인 이해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이었다.
관계의 동등함. 과연 서른 살 가까이 나는 세월의 격차 속에서 가능한 것인가? 존 버저는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는, 내가 노인이 되고 그는 죽으리라는 걸 내다봤고, 이것이 우리를 동등하게 만들었다."
'파쇠르(passeur)'.
켄은 나에게 파쇠르였다고 설명한다. 프랑스어로 사공이나 밀수꾼으로 번역되지만, 그 속엔 안내가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고, 국경을 넘는 법을 배운 것도 그와 함께였다. 특별한 관계 속에는 또 하나의 암묵적인 규칙이 있는데, 그들 사이엔 그렇게 둘만이 아는 '공범 의식'이 있었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격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켄은 시대를 관조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1943년 바르샤바 게토의 몰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폴란드 수상의 목소리가 라디오에 울려 퍼질 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가 자행되고 있습니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고 나서 켄이 스페인 내전에 대한 시를 스페인어로 읽어줄 때 나는 열네 살짜리 주제에 인생이 무엇이고 뭘 걸어야 하는지 알게 됐다고 믿었다.
소설은 그렇게 켄과 함께 보낸 시간을 이어가다가 언젠가 반드시 맞게 될 순간을 마주한다. 이제 켄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 이 소설은 죽은 자와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한 존 버저의 고백이기도 하다.
상실. 자신의 인생에서 그토록 큰 비중을 차지했던 누군가가 사라진 이후를 버티어 간다. 언젠가 차 안에서 켄이 뉴질랜드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얘기를 했을 때가 마지막이었고 그는 63세였다. 내가 이유를 묻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런 대답을 들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죽으러.
훗날 크라쿠프의 거리를 거닐며 나는 켄이 서 있던 곳을 쳐다보지 못한다.
"쳐다보면 거기에 없을 테니까."
그래도 그의 죽음에 가슴이 저며오는 건 어쩔 수 없다. 함께 걷던 거리를 혼자 거닐 때 문득 낯선 남자가 나의 비통한 심정을 알아차린 듯 들고 있던 비둘기를 그에게 건넨다. 비둘기의 축축한 깃털, 가슴 깃털의 가르마, 손안에 작은 무게감을 느끼며 나는 비둘기를 바짝 끌어안는다.
노비 광장을 벗어나 지나가는 사람 두 명에게 물어본 끝에 현금인출기를 찾았다. 그런 다음 미오도바 거리에 있는 펜션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아주 더운 날이었다. 동구 평원의 불확실한 열기가 느껴지는 더위. 이제는 울 수 있었다.
북적이는 거리를 혼자 돌아 해야할 일을 다 마치고 돌아온 나. 아무리 눌러두어도 잠들기 전에 밀려드는 그 슬픔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제는 울 수 있다.
켄이 알려준 울음의 방식은 그의 죽음 이후에도 나의 삶이 되었다.
* 존 버저(Jhon Berger)는 '존 버거'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본인이 스스로를 '존 버저'라고 발음하는 것을 보고 이름을 다시 알게 되었다.
이이언 -자랑
https://www.youtube.com/watch?v=ElRZAHM7W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