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게이먼의 <멋지게 실수하라>
누군가의 꿈을 훔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우연히 듣게 된 꿈 이야기에서 그는 자신이 쓰고있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대결하고 있었다. 겉모습부터 범상치 않았다. 이미 외모부터 이 세상 텐션이 아니었다. 만화 영화 속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부스스한 헤어와 몽롱한 분위기. 작가로서의 정체성 이전에 그 세계의 일원으로서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온 그는 뜻밖의 다정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고 있었다.
스토리 속의 인물들을 처치하고 나면, 그들이 내 꿈에 찾아와요. 그리고 원망스런 눈빛으로 말합니다.
"왜 나를 죽인 거죠? 왜죠?"
그 대답을 막 꺼내려 할 때의 눈빛을 기억한다. 눈내리는 오르골처럼 반짝거리는 슬픈 눈으로 그는 등장인물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목소리는 담요처럼 따뜻했다.
"이건 엔터테인먼트일 뿐이야."
마블 코믹스의 가상 세계관을 마련한 영국의 그래픽 노블 작가 닐 게이먼의 일상이다. 무의식 속에서도 자신의 일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 멋지다. 소설가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몰입하고 있는 사람의 한 페이지를 들여다본 것 같다.
지금은 대체불가능한 스타 작가가 되었지만, 그에게도 출발점은 있었다. 작가가 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해야했던 나날들. 프리랜서로서의 경험담을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딛는 졸업생들에게 전하는 메세지가 있다. 2012년 필라델피아 예술대학의 졸업 연설을 타이포그래피로 담은 책 <멋지게 실수하라: Make Good Art)이다.
이 책에서 얻은 프리랜서의 이미지가 있다. 닐 게이먼은 말하기를 '프리랜서의 삶은 때로는 아무도 없는 외로운 섬에서 병에 메시지를 담아 물에 띄워보내는 일'과 같다고 했다. 그 병에 백 개쯤 되는 메세지가 들어있지 않으면 그 병들을 다시 받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망망대해에서 혼자 메시지를 담은 병을 띄워보낼 때 계속해서, 많이 보내지 않는다면 돌려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 정도로 수 많은 헛발질과 실수를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수를, 실패를 잘 다뤄야만 우리는 섬에서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계절이 다가오듯 프리랜서의 일에도 주기가 있다. 숨 쉴 틈 없이 일이 들이닦쳐서 허우적거릴 때가 있는가 하면, 놀다 지칠 때가 되었는데도 일 소식이 깜깜일 때도 있다. 그런데, 가장 힘들었던 경우는 그럴 때가 아니었다. 무언가 하고는 있는데, 그 일이 자꾸 돈때문에 하는 것같은 기분이 들 때였다.
물론, 돈벌이는 일의 가장 큰 목표로 무방하지만, 누군가 프리랜서를 택했을 때에는 그것이 전부일 수 없다. 사실 프리랜서 역시 돈때문에 상당 수의 일을 하기도 하고, 그 역시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이유들이 사라지고, 오직 입금이 된다는 사실 하나로 버텨야할 때,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위태로워진다. 누구에게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그 일, 닐 게이먼이 먼저 말해준다.
저는 글을 쓰면서 글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는 무엇이든지 모험하는 것처럼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일처럼 느껴지는 순간 멈추었습니다. 이것은 인생을 일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글쓰기가 일처럼 느껴지는 순간. 어쩌면 온전히 집중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일지 모른다. 시키는 대로만 하자고 스스로를 다잡아도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억지로 했을 때 입금 완료되면 다행인데(사실은 그게 정상이지만), 프리랜서의 일이란 그렇게 알아서 다 챙겨주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동료 선후배들이 월말이 다가오면 하나같이 챙기는 일이 있다. 자신의 급여에 대해 확인 전화를 하거나 드물지 않게 독촉도 해야한다. 계약 대로 하면 될 일이지만, 문서와 사람 사이 수많은 말줄임표가 있다. 그러다가 결국 이렇게 토로하는 날이 오기도 한다. "내 돈 내가 받는 건데 왜 빚 독촉하는 기분이지? "
돈때문에 일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 찜찜한 이유가 서서히 드러난다. 닐 게이먼 역시 그 고초를 겪은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돈을 위해 작업했는데 돈을 벌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가진 게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작업을 했음에도 돈을 벌지 못했다면... 최소한 본인의 작품 하나는 건지는 셈입니다.
저는 일을 하고도 돈도 못 받고 끝나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슴 떨렸던 건, 그리고 현실 속에서 존재하기를 갈망했던 작업들은 결코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돈을 바라고 일했는데, 그것이 없어지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흥미나 보람을 바라보면서 일을 했는데 돈을 받지 못하는 사고를 겪었다면, 그래도 경험이 남고 작품이 된다. 그 결과물에 더 손을 대서 다음을 바라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돈 때문에 한 일의 주도권은 대부분 조직에 있고, 그 의견을 수용하는 과정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개인은 지워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일을 선택해가면 좋을까. 닐 게이먼은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을 하나의 산으로 보라고 전한다. 어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일로 내가 산에서 멀어질까, 가까워질까?"
내가 산을 향해 걸어가는 한 성공할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할지 확신이서지 않는다면 잠시 멈춰서 그 일로 내가 산에서 멀어지는지 가까워지는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잡지사의 편집자나 괜찮은 월급을 받는 일자리를 거절했습니다. 그런 일들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 일을 하게 되면 나는 산에서 멀어질 게 뻔했으니까요. 아마 그런 일자리 제안을 좀 더 일찍 받았더라면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때는 그 일로 산에 가까워질 수도 있었을테니 말입니다.
우리가 목표에서 멀어지는 건 장애물을 만나서라기 보다는, 눈앞에 닥친 덜 중요한 목표를 추구하다가 진정한 목표에서 멀어진다는 철학자 로버트 브롤트의 말이 떠오른다.
프리랜서든 조직에 속한 개인이든 대부분의 일이란, 조직의 요구와 개인의 판단 사이의 갈등을 거쳐서 이루어질 때가 많다. 어느 경우에 어느 쪽을 더 수용하고, 버려야 하는지는 일하는 사람이라면 내내 고민하게 되는 숙제가 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갈림길에서의 선택이 결국 내가 된다는 것이다.
공감하고 기억에 남는 닐 게이먼의 글쓰기 조언이 하나 있다. 피드백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고민하고 흔들리던 부분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말할 때 거의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라면 독자로서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은 여백에 메모를 적어둘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는 정보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그들의 방식대로 일을 해결하려고 하면 그들의 이야기를 쓰게 될테니까. 그리고 너의 것을 써야지.
그 모든 악전고투 속에서 나아갈 때, 언젠가 이렇게 감탄할 수 있는 날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닐 게이먼은 그 날을 아름답게 묘사해서 기억에 남아있다.
그 중 일부는 마법의 날에 쓰였습니다. 그 날은 다이아몬드처럼 당신의 손가락에서 떨어져 빛에 반짝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주셨고 마법처럼 노래했습니다.
some of it was written on magical days when was dripped like diamonds from your fingers and sparkled in the light, and every word was given to you by the God, and was magical and sang.
다이아몬드처럼 손가락에서 떨어져 빛으로 반짝거리는 마법의 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은 예고 없이 성큼 다가온다.
Sufjan Stevens - should have Known better
https://www.youtube.com/watch?v=lJJT00wql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