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페렉의 <사물들>
돌아보면 늘 뜨끔한 얘기가 있다.
"한 인간이 어떤 일에 종사하게 되면, 그 직업이 곧 그 사람이 되는 거야."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니로의 말이다.
졸업해서 직업을 갖게 되기까지 무수한 상상과 현실에 부딪힌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하게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원했던 그 일에 발을 담근다. 각자 출발점은 다르지만 그만큼 설렘 가득한 시기가 또 있을까. 젊은이들로 가득한 거리가 눈부신 것은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을 향한 열망때문일 것이다.
1960년대 파리에 도착한 제롬과 실비도 그랬다.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그토록 그려왔던 미래가 손에 잡힐 것 같았다.
책으로 둘러싸인 벽들 사이에서, 오로지 그들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사물들에 둘러싸여, 멋지고 단순하며 감미롭게 빛나는 사물들 사이에서, 삶이 언제나 조화롭게 흘러가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삶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홀연히 모험을 찾아 나서기도 할 것이다. 어떤 계획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사물은 그 주인의 삶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암시해 줄지도 모른다. 안락한 소파는 스트레스로 내려앉은 어깨를 회복시켜 주고, 은은한 전등은 종일 시달렸던 눈도 정화시켜 줄 것이다. 힘들게 보낸 일과가 무색해지도록 그 사물들이 도와줄 것이다. 하나라도 더 내게 맞는 사물들을 찾아 웹서핑에 나선다. 싫증 나면 책을 꺼내볼 수도 있다. 그러다 스르르 잠드는 것도 괜찮은 일상이니까.
스트레스가 더해지고 일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더 그럴듯한 사물들이 필요했다. 만족했던 사물들이라고 해서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를 사고 나면 더 좋을 수 있었던 선택이 보였다. 계절의 변화처럼 그들의 다채로운 기분을 살펴줄 새로운 것들이 따라와 줘야 했다.
사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질문거리였다.
난생처음 돈을 꽤 벌었다. 일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어떻게 이 일을 좋아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일을 하면서 배우는 것이 많다고 느꼈다. 해를 거듭하면서 일이 그들을 바꿔놓았다...
그들은 테이블에 죽치고 앉았다. 자신에 대해, 세상, 온갖 것, 별 볼 일 없는 것, 취미, 야망에 대해 떠들어댔다.
제롬과 실비는 사람 관계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들은 어리석지 않았다. 공감할 줄도 알았고,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 거리도 두었다. 필요에 의해 만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때로 우정 비슷한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점점 비슷한 미래가 준비된 사람들끼리 모이고 앞날은 예정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어긋나 있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미 돌아설 수 없고, 끝도 알 수 없는 길에 들어서 끌려다닌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대개는 조바심을 낼 뿐이었다. 자신들은 준비된 것 같았다. 자신들은 채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삶을 기다렸다. 그들은 돈을 기다렸다.
언제부터인가 자신들의 선택은 과연 자유로운가 의심스러운 순간도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취기 어린 어떤 날에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몽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언제나 반짝거리는 사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지만, 이미 손에 넣은 것들은 시시해졌다.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영리했고 성실했다. 하지만 이 모든 흔들림과 질문들은 바쁜 일 속에서 흩어졌다. 이제까지와 다른 행동을 하기 위해 현재를 무너뜨릴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 늘 망설였으므로 다시 제자리로 안착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일종의 자유였다.
선전, 능력, 경력과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득세하는 그곳 역시 치열한 전쟁터였지만 합리화는 달콤했다. 거대한 존경, 권력, 인정으로 뭉쳐진 세계에 다른 소소하고 하찮은 먼지들이 날릴 공간은 없었다.
변한 것이 있다면, 전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너무나 모호한 것이었다. 그들은 남다른 삶의 방식, 몽상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들은 지쳤다. 그들은 늙었다. 그랬다. 어떤 때는 자신들이 인생을 채 시작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들의 삶이 위태롭고 덧없이 흐르는 것 같았다. 마치 채워지지 않는 욕망, 불완전한 기쁨, 잃어버린 시간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기다림과 궁색함, 편협함이 자신들을 마모시켜 무력하게 만들었다고 느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시작하지 않은 느낌이 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안다고 해도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더 어려운 문제였다. 결국에는 애써 바꿀 수 없는 것들에 시간을 소모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대신, 보이는 세계 안에서 여전히 건재한 사물들이 있었다.
그것들에 무감각하게 되었다기보다는 이제 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지표를 상실했다.
한 번도 같은 형식으로 소설을 쓴 적이 없는 작가 조르주 페렉은 현대미술의 소설가 버전 같다. 그 시절을 살았던 그 어떤 작가보다 독창적인 시선으로 파리를, 또 젊음을 바라보았던 이 소설에는 대화가 없다.
자신을 남 얘기하듯 하는 사람을 조금 고수로 보는 편인데, 그중의 최고는 자기 스스로를 유머의 소재로 삼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사물들>을 읽으면 남 얘기하는 것처럼 내 모습이 읽혀서 뜨끔하기도 하다. 냉담한 어투로 건조하게 풀어가고 있지만, 정작 그가 말하고 싶은 것도 그럴까.
절제된 문장 속에서 세상을 보는 다정함과 설렘이 녹아있는 관찰력들이 독서 경험을 풍부하게 해 준다.
Peter Bjorn And John - Young Folks
https://www.youtube.com/watch?v=iArXv64tC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