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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Oct 10. 2024

27세 클럽을 넘어서

릭 루빈의 <창조적 행위 : 존재의 방식>

그때는 27세가 까마득히 멀게 보였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걸작 만화 <20세기 소년>에는 낙담한 주인공이 있다. 록음악을 하면 27세에 죽을까 봐, 하고 농담 아닌 농담을 했던 그에게도 28세가 되는 날이 온다.

역시, 나는 록커가 아니었나. 켄지는 쓰게 말한다.

영원히 27세로 남은 천재 록커들의 리스트, '27세 클럽'얘기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커트 코베인, 비교적 최근엔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있다. 짐 모리슨, 지미 핸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등 27세 클럽 뮤지션들에 대해 연구한 책도 있다.

하나같이 반짝거리는 젊음을 보낸 그들은 왜 27세에 머물러야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해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럴 시간에 문제집이라도 하나 더 풀었으면 번듯한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세상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믿는 사람 중 하나로 그 물음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나만 한 것은 아니었다는 안도감이 찾아오고 또 나보다 먼저 고민해 온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레이몬드 챈들러의 소설에서 한 여인은 이른 죽음을 선택하며 이런 유언을 남긴다.

"인생의 비극은 젊어서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해를 거듭해갈수록 추악해지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요. 안녕히 계세요."


이 문장을 읽을 때 한 대 얻어맞는 것 같았다. 그저 찬란했던 빛이 조금씩 사그라드는 것에 가까운 줄 알았었는데, 더 바닥이 있단 말인가. 때로 젊어서도 감당하기 쉬운 절망을 만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인물의 스토리가 꼭 보편적이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불꽃이 다 꺼져도 타버리고 남은 재처럼, 지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앙금처럼 가라앉는다.


역시나 좋아하는 작가 레베카 솔닛은 이렇게 썼다.

"십 대가 요절을 상상하는 것은 성인이 감당해야 하는 온갖 결정과 부담 때문에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변할지 상상하는 것보다는 죽음을 상상하는 편이 더 쉽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이다. 그리고 그 심정을 알 것도 같은 기분이다. 단, 이해해 보려는 거지 죽음에 동조하거나 옹호하려는 뜻은 아니니 오해 말기를.


수많은 록스타들을 주변에서 차고 넘치도록 봐온 미국의 전설적 프로듀서 릭 루빈도 이렇게 썼다.

"많은 위대한 예술가가 젊은 나이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는 이유는 존재의 고통이 무너지기를 바라며 약물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존재가 그렇게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들이 애초에 예술가가 된 이유, 뛰어난 감수성 때문이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차마 입밖에 내기에도 슬퍼서 피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미 27세는 언제 왔다 갔는지 모르는 세월을 지났고 여전히 지금의 나이는 믿기지 않는다. 그런데 자신의 나이가 믿어지고 납득이 되는 때가 있기는 한 것인가.

문득, 섹스 피스톨즈의 시드 비셔스가 말했듯 '죽기에는 너무 젊고 살기에는 너무 타락한 '것은 아닌가 뜨끔해진다.


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성공의 구루(guru)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릭 루빈은 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에 나올법한 수염 가득한 포스의 괴짜 할아버지는- 스타워즈의 요다 같다고 소개되어 있다- 에미넴, 비스티 보이즈. 런 디엠씨 같은 힙합 뮤지션부터 레드 핫 칠리페퍼스, 메탈리카, 에어로 스미스, 그린 데이 등 장르를 초월한 프로듀서이다. 그는 27세에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창조적 삶을 살아가기 위한 존재의 방식을 말한다. 이 책은 음악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그 너머 창조적인 일을 오래도록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작업에 대한 실질적인 지침이 될 수 있다.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는 단계에서부터 질문은 시작된다.


식물이 번성할 때 우리는 잎과 줄기의 꽃에서 생명력이 마구 튀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이디어가 번성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이디어의 조짐을 알아채는 일.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나는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릭 루빈은 아이디어의 씨앗에 대해 말한다. 아이디어의 씨앗 쏟아지고 그중 가려내야 할 때가 오면 그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을 한번 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어떤 씨앗에 집중할지 선택하는 최고의 기준은 흥분감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무언지 정확히 잡히지는 않아도, 그 생각을 하면 들썩이게 된다면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일 가능성이 크다.


창조 작업을 할 때 이런 느낌을 주목하라. 몸속에서 일어나는 반응에 주의를 기울여라.

강렬한 반응에 주의를 기울이라. 무언가에 거부감이 든다면 그 이유를 알아야만 한다. 강렬한 반응은 의미로 가득한 더 깊은 샘과 같다. 그것을 탐구하다 보면 창조적 여정에서 우리가 다음에 내디뎌야 할 발걸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각자가 밀고 있는 씨앗에 관심을 주고 반응을 찾으려고 시도하라고 격려한다. 내가 이 직업을 이끌어간다는 태도보다 작품이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자라고 자연스러운 단계에 따라서 변하고 고유한 생명을 갖도록 하라고 전한다.


글 쓰는 사람들에게 특히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많다.

언젠가 김영하 작가가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뮤지션은 악기를 다루는 이미지가 있고, 화가들도 붓질하고 작업하는 '멋진' 상징적 모습들이 있을 텐데 작가는 뭐가 있는가?

보여줄 게 없다는 것이다. 무슨 얘기인지 단번에 들어와서 웃음이 났다.

작가는, 글 쓰는 이들은 기껏해야 흰 모니터의 커서를 노려보거나 텅 비어있는 백지를 보며 멀뚱멀뚱 씨름하는 딱히 멋져 보일 이미지가 없다.


김은희 작가의 말도 떠오른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작가들은 노트북에 후다다다 그분이 오신 듯 두들기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자신은 도대체 누구 얘기일까 싶다고 했다. 물론 겸손이 깃든 태도일 것이다. 김은희 작가 부부의 솔직함이야 늘 웃음과 즐거움을 주니까. 어떤 말이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릭 루빈은 이렇게 설명한다. '글쓰기나 요리처럼 퍼포먼스와 상관없는 것이라도 관찰자가 있으면 변화가 생긴다. 에세이를 써서 친구에게 준다면 친구의 관점을 들어보기도 전에 나와 작품과의 관계는 달라진다.'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말의 뜻을 알 것이다. 아무리 하찮은 습작이라도 보여달라는 요청을 아무에게나 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런 것을 보여주고 나면 좋은 나쁘든 무언가 들키고 마는 것이다. 많이 보여주고 발표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동시에 누구에게 보여주어야 하는지를 구별하는 능력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보여줄 때 조금 부담을 덜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작품이 결코 나를 완전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의 나를 비춰주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그렇게 계속 작업을 해나가는 '창조의 모멘텀'을 구축하라고 설명한다.


활기찬 창조의 모멘텀 안에서 자유롭게 창조하고 세상에 내보내고 또 다른 것을 만들고 내보낼 수 있게 된다. 하나의 챕터를 만들 때마다 경험이 늘어나고 기술이 향상되고 진정한 나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또 하나 깊이 공감하는 부분 중에 하나는 협업을 할 때의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그 내용을 읽을 때엔 내가 흔하게 해온 실수들이 보였다. 협업 과정에서 오는 고민을 하고 있는 창작자라면 많은 도움이 될 실질적 조언이 있다.


그래서 그 만화책의 킨지는 록커가 되지 못해 실망스러운 삶을 살았을까.

친구는 말한다.

"하지만 다 늙어서도 굉장한 록을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많거든."


위로일까 희망일까 사실일까.

답은 각자에게 다를 것이다.


그 시절 어둑한 음악바에서 춤을 추고 잔을 기울이던 친구들도 이제는 뮤지션의 부고가 뜰 때 한 번씩 얼굴을 보게 되었다. 데이빗 보위가, 루 리드가, 크리스 코넬이 그렇게 떠났다. 그래도 그들이 음악으로 남아주어서 감사한다.

존 레논의 죽음은 신화가 되었지만, 여전히 멋진 신곡을 내고 있는 폴 매카트니의 공연장을 찾는 것은 너무나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나는 곡 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전보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말고, 그냥 해나가자고 말한다."
- 폴 매카트니


내가 좋아하는 사진 중의 하나는 폴 매카트니가 한참 후배인 블러의 데이먼 알반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 것이다. 레드 제플린의 백발이 된 지미 페이지가 역시 한참 후배 잭 화이트의 기타 리프를 배우려고 몸을 낮추는 순간이다. 여든이 넘은 믹 재거가 공연을 소화하기 위해서 런던 하이드 파크를 매일 달리며 체력단련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들이 오래 활동해 주기를 바란다. 그 리듬에 그 멜로디에 함께 머물고 싶다.

끝으로 한번 더 릭 루빈의 말을 생각해 본다.


일생에 걸쳐 훌륭한 작품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예술가는 아이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방식을 연습한다면 노래는 자유로워지고 우주의 시간표와 보조를 맞출 수 있다.


우리는 존재방식을 연습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발밑의 땅이 좀 더 단단히 굳어지기를 바라면서.


Paul McCartney - New

https://www.youtube.com/watch?v=BkbbP0ozy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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