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리티 Oct 07. 2024

이토록 이단적인 낭만

조지 오웰의 <1984>

바람 부는 저녁에 종소리를 들었다.


사직동 근처 돌담길을 걷다가 손목시계를 보았다. 정확하게 여섯 시였다. 멀찍이 길 건너 성당의 종탑이 보인다. 요즘에도 종을 치는 건가? 서울 한복판에서? 잠시 멍해진다.

무심한 얼굴로 바쁘게 갈 길 가는 행인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 종소리 하나로 문득 낯설어진다. 주변이 선선해진다. 그리고, 시계를 보며 걷는 풍경이 있는 첫 문장이 떠오른다.


맑고 쌀쌀한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시계들이 13시를 알렸다. 윈스턴 스미스는 지긋지긋한 바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턱을 가슴에 파묻었다. 그는 빅토리 맨션의 유리문을 재빨리 열고 들어갔지만 소용돌이치는 모래 먼지가 뒤따라 들어오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바람을 피해 유리문에 몸을 숨긴다 해도 먼지까지 피할 수는 없는 세상.

윈스턴은 사람의 모든 생각과 행동들이 당에 대한 충성으로 수렴되는 1984년의 가상 국가 오세아니아에 산다. 우두머리인 빅브라더의 절대적 지배 속에서 39세의 윈스턴은 진리부의 서기로 일하며 기록을 고쳐 쓰는, 그러니까 조작하는 일을 한다.

어디에나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텔레스크린의 네트워크와 사상경찰 아래 권력에 복종하는 것만이 가능한 곳에서 윈스턴은 평범한 국민으로 보였지만, 그의 무의식 속에는 이 세계와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꿈의 잔해들이 떠돌고 있었다. 때때로 이유를 알 수 없는 찢어질 듯한 마음의 아픔이 그 증거이기도 했다. 어떤 날 그는 "셰익스피어"를 중얼거리며 잠에서 깨기도 했다. 사라진 어머니에 대한 기억 역시 그중 하나였다.


윈스턴의 어머니는 언제 그랬는지 기억도 없이 사라졌다. 어린 시절 아주 적은 양의 초콜릿을 배급받으면서 언젠가 아이는 혼자 다 먹겠다고 떼를 썼고 어머니는 초콜릿을 잘라 2/3를 윈스턴에게 나머지를 여동생에게 주었다. 동생의 몫까지 뺏은 아이를 달래던 엄마. 뭔지 모르고 쳐다보던 업힌 여동생, 그리고 달아나버린 아이. 우는 동생을 품에 안고 달래던 엄마가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이후로 윈스턴은 엄마를 보지 못했다.


그가 기억하기로 어머니는 남다른 측면이 있거나 특별히 지적인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이 나름대로 정립한 기준에 항상 충실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고결함과 순수함을 가졌었다. 그녀의 감정은 그녀만의 것이었으며, 외적인 힘에 의해 변화되지 못했다. 그녀의 관점에서는 아무리 부질없는 행동이라도 의미 없는 행동은 아니었다. 만약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냥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에게 더 이상 줄 것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 되더라도 사랑만큼은 여전히 줄 수 있는 것이다. 초콜릿이 다 없어지자 어머니는 어린 동생을 꼭 껴안았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었다. 초콜릿이 어디서 더 생긴 것도 아니고 딸과 자신이 죽음을 모면하게 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극히 당연하게 느껴졌다.


만약,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냥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어떤 억압도 어머니를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을 다 빼앗겨도 줄 수 있는 사랑은 남아있었다. 그것이 어머니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죽음마저도 그 사랑을 바꿀 수는 없었다. 아무리 빅브라더에게 사상을 주입받아도 지워질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어린아이의 칭얼거림조차 용납되지 않는 사회. 그곳이 윈스턴이 살고 있는 나라였다.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오늘날의 영광스러운 혁명 이전의 런던에 대해 교과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더러운 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곳. 아이들은 돈벌이에 매를 맞으며 열두 시간씩 일하고 부자들은 저택에서 수많은 하인들을 거느리며 땅과 집, 공장, 자본을 소유했었다.  그 지옥 같은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풍요로운가. 50년 전의 그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고, 덜 일하고,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고 더 똑똑하게 살고 있는 이 나라 오세아니아에서 정부가 내세우는 단골 표현은 '우리의 새롭고 행복한 삶'이었다.


윈스턴은 일생에서 단 한번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손에 넣었던 시절을 기억한다. 빅브라더에 반역한 혁명 초창기 지도자들이 대숙청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후에는 숙청 후보에 오른 사람들이 자백을 해왔고 그럴싸한 자리를 한 자리씩 얻었다. 여느 때처럼 윈스턴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 사건들을 날조하고 위조했다. 하지만 그들의 자백이 거짓이라는 자료를 볼 때면 가슴이 뛰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텔레스크린에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의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들의 입장에서 상식적인 생각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이단적 행위였다. 가장 끔찍한 사실은 당의 기조에 반하는 생각을 하면 제거된다는 것이 아니라 당이 틀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둘에 둘을 더하면 넷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만유의 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같은 맥락에서 과거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겠는가? 과거와 외부 세계가 단지 머릿속에서만 존재하고 생각 자체가 통제될 수 있다는 바가 과연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


당에 반항하면 안 된다는 것보다 더 위험한 생각은 당이 틀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이 개인으로서의 삶을 말살하는 지름길이었다.

오세아니아의 결혼은 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하는데, 결혼의 유일한 목적은 당을 위해 헌신할 아이들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욕망은 곧 사상범죄였다.

어릴 때부터 윈스턴 역시 세뇌받아왔지만, 그에게는 은밀한 욕망이 있었다. 그가 사랑받는 것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인생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당에 의해서 강요된 정조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어느 날, 윈스턴은 미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작업복을 입은 여자가 그를 염탐하고 있다. 금지된 술집을 몰래 가는 것도 그녀는 알고 있을 것이다. 피할 도리가 없자, 그는 자살해야 하는지 고민까지 한다. 자살하거나 그녀를 죽이거나. 그것만이 해결책이었지만, 도무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윈스턴은 그저 일기를 쓰면서 사상범으로 체포되는 다음을 떠올려본다.

그날도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그녀와 마주친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는 우당탕 넘어져버린다. 자신의 적이긴 하지만 그녀의 고통을 생각해서 손을 내밀고 그녀는 쪽지를 전해준다.

협박, 소환, 자살 명령. 그도 아니라면 지하조직. 윈스턴이 떠올린 것은 그랬다. 온갖 억측 속에서 쪽지를 펼쳤을 때, 아주 미숙한 필체로 무언가 쓰여있었다.


놀람과 경이로움.

윈스턴은 그 메시지를 읽고 또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더 일에 집중할 수도 없다. 그리고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을 작정하고 이제 다른 선택은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조지 오웰은 이토록 숨 막히는 시스템 속에 어떻게 이런 극도의 메시지를 숨겨두었을까. 이 부분에서 읽히는 작가의 정신에 숨이 멎을 것 같은 아찔함이 전해진다.


그리고, 줄리아와 윈스턴은 체포된다. 윈스턴은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얀 타일로 된 벽과 높은 천장을 메우고 있는 차디찬 빛. 그 이후는 면도날, 통증과 피와 비명, 경련의 날들이 이어진다.

초반에는 지금 당하는 고통이 배가 되어도 줄리아를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결심도 했다. 자백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기도 했다. 하지만 고통이 모든 것을 지배했다. 다른 생각이 들어설 자리를 앗아가 버렸다. 이제는 구타가 시작되기도 전에 없던 죄까지도 고백할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묻게 된다. " 언제쯤 저를 총살할 건가요?"


모든 것이 용서되고 그의 마음은 눈처럼 깨끗했다. 그는 대중 앞에 서서 모든 죄를 자백하고 모든 사람들을 연좌시켰다. 그는 햇살을 받으며 걸어가는 기분으로 하얀 타일의 복도를 내려가고 있었다. 총을 든 간수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러고는 그토록 기다리던 총알이 그의 뇌를 침투하고 있었다. 그는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 검은 수염 뒤에 어떤 웃는 얼굴이 숨어 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오, 잔인하고 쓸데없는 오해! 오,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스스로 망명을 청한 고집! 그의 코 양 옆으로 진 냄새가 나는 두 갈래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모든 것이 괜찮게 된 것이다. 투쟁은 이제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는 이제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빅브라더를 사랑하고 나서야 결국에 이 싸움은 끝이 났다. 사람으로서 살아갈 순간을 희망했던 윈스턴의 얕은 희망은 끝이 났다.

이토록 미친 발상의 향연 속에서 조제 오웰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낭만을 숨겨두었다.

촘촘한 시스템에 갇혀서 살아가도 사람을 떨리게 하는 고백은 한 가지인 것이다.

이 결말은 마지막 희망을 처참히 짓밟은 것일까, 아니면 인류가 실패한 자리를 다시 보게 하려는 것일까.


윈스턴이 산책하다가 길에서 발견한 어느 사진 속에는 교회가 있었다. 그는 옛날에 그 교회에서 들었던 동요를 떠올렸다. 그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어떤 소리를 듣는다. 그 노래는 줄리아를 만나기 전에, 찾아왔던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고 윈스턴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향하게 된다.


이상한 일이지만 속으로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면 종소리가 실제로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종은 아직은 어디엔가 존재하지만 변해 버려서 잊혀 버린 런던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한 유령 같은 종탑에서 다른 종탑으로 종소리가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기억으로는 실제로 한 번도 종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 모든 시작과 끝은 그 종소리를 듣던 날, 염탐꾼으로 보였던 그녀 줄리아가 전해준 쪽지에서 비롯되었다.

그 한마디가 모든 걸 바꾸었다.


감히 생각해본다.

이 소설에서 조지 오웰이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그 쪽지에 있다고. 그 한 마디를 완성하기 위해 모든 전복과 이단적 사고체계를 끌어왔다.

그게 전부이다.

거기엔 단 한 톨의 값싼 감상이나 환상이 없다.

조지 오웰을 지독한 낭만주의자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Radiohead - 2+2=5

https://www.youtube.com/watch?v=2w6kHS_IRr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