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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Dec 05. 2024

겨울밤엔 TV디너

불안과 강박에 대한 히치콕의 대답

짐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에 'TV디너'라는 말이 있다. 


헝가리에서 뉴욕으로 건너와 작은 방에 혼자 살고 있는 윌리에게 어느 날 사촌 에바가 찾아온다. 작은 TV가 놓인 식탁에 마트에서 사 온 인스턴트 음식을 놓아주며 말한다.

이건 TV디너야.

왜냐고 물어도 답은 똑같다. 

그냥 그게 아메리칸 스타일. 미국 사람들은 이렇게 먹어.

별 의미 없는 대화들이지만, 우리 일상 어딘가에 흩어져있는 일부다.


TV를 보면서 저녁을 먹을 때면 가끔 TV디너를 떠올린다. 제대로 한 상은 아니지만 때로는 단순하게 먹는 안 끼가 좋을 때가 있다. 소파에 앉아 TV에서 나오는 빛을 마주하며 볶음 국수를 먹거나 샌드위치를 먹는다. 


'히치콕과의 대화'라는 책이 있다. 방송이나 영화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 목록에 단연 꼽히는 그 책은 오래전에 절판되었다. 나도 누군가 복사본을 만든 것을 후루룩 봤던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있다. 1962년 평론가이자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가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을 인터뷰한 기록을 엮은 책이다. 

히치콕이 처음부터 지금의 히치콕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할리우드의 엔터테이너 감독 정도로 알고 있던 히치콕의 영화들을 보고 또 보던 트뤼포는 그가 단지 그 정도에 머물 인물이 아님을 알아본다. 그리고, 인터뷰를 요청하여 그의 영화를 해부하면서 히치콕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재발견한다. 책은 구할 수 없지만 -중고가가 무려 30만 원이 넘는다고 - 다큐멘터리 영화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TV디너로 선택한 그 영화 <히치콕 트뤼포>에는 히치콕을 공부한 영화감독들이 인터뷰를 이어간다. 웨스 앤더슨, 데이빗 핀처, 구로사와 기요시, 마틴 스콜세지 등등이 자신에게 미친 히치콕의 영향에 대해 말한다. 트뤼포와 히치콕이 인터뷰하는 장면은 물론이다.


트뤼포는 영화를 사랑하는 방식에 대한 정의로 널리 인용되곤 한다. 씨네필 3원칙으로 통하는 그 원칙은 첫째 영화를 많이 보고, 둘째 감독의 이름을 기록하고, 셋째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며 머릿속에 감독이 되어보는 것이다. 사실 '영화'라는 자리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대입해도 뜻은 통한다. 프랑스의 누벨바그 붐을 일으킨 감독들이 어떻게 영화를 공부하고 탐구했는지를 드러내는 말로 세월이 지나서도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다. 무언가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면, 이 방법을 참고할 수 있다.


1962년 40번째 영화 '새'를 완성한 히치콕은 어느 날, 프랑스 젊은이로부터 편지를 한 장 받는다. 존경과 팬애정이 가득 담겨있는 트뤼포의 편지를 받고 그는 눈물이 났다는 답장을 하고, 할리우드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두 사람은 하루 종일 대담을 나눈다.


공포 영화를 그리 즐겨보는 편은 아니라, 히치콕의 영화를 몇 번씩 보지는 않았지만 이미 너무도 유명해서 마치 보지 않았어도 본 듯한 착각을 주는 그런 영화가 있다. <사이코>의 샤워 씬은 지금 봐도 놀랍다.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 컷과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와 배수구의 오버랩. 

히치콕은 영화 속의 사물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를 알고 있었고, 정확하게 카메라로 표현하는 법을 실험했다. 인물이 들고 나오는 머그컵 속에 전구를 두어서 흑백 필름에서도 컵이 빛나 보이게 하여 이야기를 전개했을 정도였다.

 

기억에 남았던 것은 마틴 스콜세지의 말이다.

"히치콕의 이야기는 공포 그 이상이죠. 그는 공포와 함께 평생을 산 것 같아요."


히치콕은 어린 시절 부두에 있는 배의 숫자를 세어 자신의 방에 기록하곤 했다. 공부에는 관심 없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아들을 걱정하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심부름을 보낸다. 경찰서장인 자신의 친구에게 편지를 갖다 주는 일이었는데, 그는 그 자리에서 아이를 유치장에 가두어버린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이 일 자체도 공포스럽다!) 그리 오래 유치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어린아이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때의 경험으로 극한의 불안, 공포를 경험하고 유치장을 나왔을 때의 기쁨을 히치콕은 자신의 작품의 평생의 기반으로 삼았던 것 같다. 이것에 삶이 히치콕에게 주는 숙제였다.


빅터 프랭클 박사가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던졌던 질문이 되살아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느냐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인간사의 여러 범죄들 속에 신의 시선을 배치한 것이었다. 어디에도 신의 존재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샷으로 관객을 초대함으로써 원죄에 대한 신의 시선을 공감하게 했다. 사실 연출자들이 히치콕을 마르고 닳도록 언급하는 이유는 대사가 아니라, 보이는 것으로 영화가 말하게 하기 때문이다. 인물이 아니라, 영화가 말하게 하라.

작품이 깊이를 가지려면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무의식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범죄물이라 해도 인간의 원죄의식을 건드리게 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작품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 자체로 이미 클래식이다.


히치콕이 뛰어난 연출가라는 사실은 사진 한 컷을 찍을 때에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는 인터뷰 현장의 사진 요청에 자신이 직접 포즈를 선보였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처럼 무게감 있고 뾰루퉁해 보이는 표정에서 어떻게 그런 앙증맞고 유머 있는 연출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결국 당신이 가장 관심 있는 것은 범죄 이야기의 테두리 안에서 도덕적 딜레마를 찍는 일이로군요."


인터뷰 말미에 던진 트뤼포의 한 마디에 담긴 통찰이 놀랍다. 그들이 얼마나 연구를 했으면 누군가의 작품 세계를 이렇게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을까.


히치콕이 덤덤한 표정으로 답한다.

"네, 맞습니다. 이게 제 결론입니다."


자신을 알아봐 주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클래식이 되는 과정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삶에서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가 이 이야기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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