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꿈꾸는 자들은 알고 있다

낮과 밤,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by 베리티

낮에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날은 생각이 구름처럼 떠돈다. 학생이라면 아마 선생님한테 지적받았을 것이다. 시험을 앞두고 딴생각이나 한다는 질책이 화살처럼 따갑게 꽂힌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다지 반길 상황은 좀처럼 없다. 일을 코앞에 두고 다른 생각에 빠져있다면 십중팔구 한심하다는 말을 들을 것이 뻔하다.


얼마 전 사촌동생을 만났는데 팔에 깁스를 했다. 뉴저지에 사는 그는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팔에 금이 갔고 병원 치료받으러 한국에 왔다. 특히나 차 없이는 불편한 미국에서 면허증은 고이 모셔두고 늘 자전거를 탄다.

그는 면허증이라도 있지, 사실 나는 면허증도 없다. 굳이 자랑할 일이 아닌 지라 떠들고 다니지는 않지만 드물게 면허증 없는 사람들을 만나면 동지를 만난 것처럼 반가운 기분이 든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냥 어릴 적부터 면허를 따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고등 학교 때 아파트 단지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차에 부딪힐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사건의 영향인지는 모르겠다. 걷는 것을 워낙 좋아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


"눈앞에 풍경이 보이면 딴생각에 빠져요."

그 애가 말했을 때 이유를 하나 찾은 것 같았다. 몽상적 기질과 운전의 안전성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운전을 피하는 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의 방어 기제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팝 음악을 듣다 보면 종종 'daydreaming'이라는 단어를 마주친다. - Smashing Pumpkins의 B사이드 곡 중에 'My Daydream'이란 곡이 있다. 그 노래는 이렇게 말한다. 'My daydream seems as one inside of you.'

무심코 들을 때는 지나쳤는데 다시 보니 우리는 다소 몽상을 억압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생산성, 효율성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딴생각들을 제거해야 할 요소로 치부할 때가 많지만, 위대한 업적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몽상이나 상상을 딛고 날아오른 경우가 많다. 뇌과학자들은 때때로 '멍 때리기'를 권한다. 몽상은 잠시 뇌가 활동을 멈추고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NM)'를 활성화시키는 과정이라고 한다. DNM이 활성화될 때 뇌는 기본 습득한 정보를 재배열하고, 서로 관련 없어 보이던 개념들을 연결하여 현실적 해결책이나 창조적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 모든 사람들이 몽상에 빠질 필요는 없겠지만, 사회적인 분위기가 몽상을 조금은 존중하는 방향으로 흘렀으면 한다.


몽상하는 작가라고 하면 가장 먼저 에드가 앨런 포가 떠오른다. <몽상과 우울>이라는 단편집 제목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소설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에서 만난 몽상의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어떻게 그렇게 쓸 수 있었을까 감탄이 나올 정도로 소설의 화자는 뒤팽이라는 친구를 만나 빈 집에서 함께 몽상을 한다.

파리의 어느 도서관에서 같은 희귀본 책을 찾고 있다는 이유로 알게 된 뒤팽은 생에서 커다란 몰락을 겪은 뒤 세속의 야망을 모두 내려놓게 된 인물이다. 그의 유일한 사치는 남은 유산으로 책을 원 없이 보는 것.

첫 만남에서 서로 끌린 두 친구는 파리의 어느 허름한 빈 집을 구해서 취향에 맞는 가구를 들여 향초를 켜고 밤이면 함께 몽상을 한다.


어둠이 희미하게 밝아오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 낡은 건물의 무거운 덧문을 전부 내리고 촛불을 두 개 밝혔다. 초는 강한 향기와 은은한 빛을 발하는 것을 주로 썼다. 이런 과정을 마친 다음, 우리는 영혼을 몽환의 경계에서 놀게 했다. 읽고 쓰고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러는 동안에 어느덧 시계의 종소리가 진짜 밤이 찾아왔음을 알려주곤 했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팔짱을 끼고 서둘러 거리로 뛰어가 낮에 했던 이야기를 계속하거나 날이 샐 때까지 멀리 지역을 돌아다니거나 이 대도회지의 아름다운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부근에서 조용한 관찰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무한한 마음의 고양을 추구하곤 했다.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 에드가 앨런 포


산책자가 목적 없이 길을 나서는 것처럼 그들의 몽상 역시 아무런 목적이 없었지만, 그들의 '데이드리밍'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함으로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는 귀납적 추론에서도 독보적이었다.

에드가 앨런 포의 비극적 삶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는 자신이 고통스럽고 불안했던 삶의 경험을 활발한 상상력과 몽상의 연료로 삼았다. 'daydreaming'은 단순한 시간 낭비나 집중력 부족이 아니라, 현실을 넘어선 더 깊은 통찰을 얻는 수단으로 본 것이다.


5시 무렵, 최후의 잠 한 조각까지도 모두 소진되어 버리고 나면, 그때부터는 오직 꿈을 꿀 뿐이다. 그것은 깨어있는 것보다 더욱 힘들다.

-카프카의 일기, 1914.


카프카에게 잠, 꿈, 몽상은 단순한 문학적 소재가 아니라 그의 글쓰기의 본질적인 조건이었다. 카프카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고 가수면 상태 -선잠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일기에 기록했다. 카프카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은 꿈이나 환상에서 볼 듯한 부조리한 사건을 일상으로 옮겨와 극도의 건조하고 사실적인 문체로 그려내는 것이다. '현실이 된 꿈'이 소설이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되거나 (변신), K가 미지의 관료제와 끊임없이 싸우는 일(성, 심판)은 한낮 꿈이나 다른 세계의 환상이 아니다. 뚝 떨어진 우리 앞의 현실이다.

카프카 연구자들은 카프카의 작품을 '일상도 아니고 꿈도 아닌, 꿈과 일상 사이에 떠도는, 꿈과 일상 사이에 빚어진 무엇'이라고 설명하며, 이는 '카프카적(Kafkaesque)'라는 표현으로 압축된다.


몽상가들의 꿈의 빛은 스펙트럼처럼 다채롭다.


낮에 꿈을 꾸는 자들은 밤에만 꿈을 꾸는 자들이 놓치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
-<엘레오노라 (Eleonora>, 에드가 앨런 포


프라하의 작은 방에 누운 카프카의 꿈은 파리의 빈집에 거하던 뒤팽을 지나, 스매싱 펌킨스의 읊조리는 몽상으로, 광장으로 나온 존 레넌의 기타 위에도 희망의 선율로 날아간다.


"당신은 나를 몽상가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유일한 몽상가가 아닙니다."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Imagine 중에서, 존 레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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