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시간을 지켜주는 지하철보다 창밖을 볼 수 있는 버스를 선호한다. 차창 밖으로 건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살짝 넘은 시간이다. 아니, 서울은 점심시간이 11시부터야 뭐야. 12시는 너무 붐벼 일찍 점심시간을 가지는 걸까? 여의도로 출근하는 친구는 11시 반부터 13시까지 던데. <아무튼, 출근>을 봤다면, 회사마다 점심시간을 탄력적으로 가진다는 걸 알았을 텐데. 그땐 좀 충격이었다. 아무튼, 광화문, 강남, 여의도 등지에서 보이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내 눈에는 그렇게 멋있더라. 잠시 나와 담배 타임을 가지고 있는 수심 가득한 얼굴조차도!
도서관을 그만두지 않았으면 지금쯤 나도 저 안에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 나는 저런 시간을 다시는 갖지 못할 거라고 막연히 확신했다. 선택에는 포기가 따르는 법이니까. - 강민선,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나는 그들과 이제 섞일 수 없는 건가. 다시는 저 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건가. 서울에서 일하거나, 애초에 그들과 섞이던 사람도 아닌데. 분명 제 발로 나온 건데, 나만 떨어져 나온 기분이 들었다. 마음먹으면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다시는 닿을 수 없을 만큼 멀어진 기분이었다. 당분간 일할 마음이 없어 더 멀게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밖에서 삼삼오오 티타임을 가지거나, 다시 회사로 들어가는 직장인들이 보인다. 어슬렁어슬렁. 지옥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그 걸음을 따라가니 입구를 지키는 청원경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가 초라한 건지, 그를 보는 내 시선이 초라한 건지. 나름 경력직이라고 그 사람의 고충, 심정이 희끄무레하게 얼비친다. 같은 업종이라도 근무지마다 환경이 천차만별이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쓰인다. 밥은 제때 챙겨 먹는지. 휴게시간 선잠을 자진 않는지. 민원인의 갑질에 절절매진 않는지.
종일 비가 온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면 동료 생각이 난다, 아직은. 야외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아 걱정스러운 마음이다. 그 고충을 너무 잘 알아서, 누군가의 빈자리까지 힘겹게 메우고 있어 더 짠할 때가 있다. 각자 밥벌이하는 거고, 각자 살아가는 거라지만, 그리고 장마라지만, 세차게 내리는 비가 제법 야속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