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이제 곧 시드니 국제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오후 8시,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온 적은 처음이었기도 하고 약 5년 만에 다시 온 것이었기에 인천공항의 웅장함에 새삼스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널찍하고 큼지막한 규모에 눈은 바쁘게 움직였고 여기저기서 세계 각국으로 떠날 준비를 마친 이들의 모습에 내 마음은 더없이 소란스러워졌다. 날 배웅하러 서울까지 함께 온 아버지는 담배가 당긴다며 내가 보안 검색대로 향하기도 전에 급히 자리를 떴다. 이제 정말 홀로서기를 해야 할 차례였다.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서둘러 탑승구로 향했다.
오후 9시 45분, 게이트 107번에 도착했다. 널다란 창을 통해 쏟아지는 밤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비치된 의자에 앉아 흑색으로 가득찬 하늘 그리고 그 아래에 놓인 비행기 한 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나... 정말 곧 떠나는구나. 지난 8개월 동안 이날만을 위해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날에 이르렀을 때는 그 어떤 것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나라에 가기 위해 해야 할 모든 준비를 예정대로 잘 마쳤는데, 어째서 기분은 착잡하기만 한 걸까? 이젠 그 누구도 내게 답을 줄 수 없으리란 걸 알고 있었지만 평생을 그래 왔던 것처럼 그날 밤도 나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오후 10시 15분, 보딩을 완료하고 선반에 짐을 올린 뒤 지정된 좌석에 앉았다. 그러고는 예정된 이륙 시간인 오후 10시 35분까지 내게 응원을 보내온 사람들에게 쉬지 않고 감사의 답장을 보냈다. 지금까지 나를 알고 지내온 수많은 사람들이 내 개인 SNS로 대체로 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 왔고 나는 그제야 내가 정말 사랑 받으며 살아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의 열정, 에너지를 언급하며 너라면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많은 사랑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을까? 자의로든 타의로든 사랑하는 친구들과 멀어지는 경험을 적잖게 했던 게 오히려 도움이 되었던 걸까? 아니면 이것은 살다 보면 자연히 일어나는 일인데 내가 너무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일까? 어느 쪽이 되었든 간에 나는 내가 퍽 잘 살아 왔다는 생각에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곧 펼쳐질 아주 가까운 미래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 때문에 결국 울지 못했다.
전해 여름의 일이었다. 호주 워홀러로서의 일상을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리는 사람들의 영상을 우연찮게 보게 되었었다. 어쩌다 보게 되었던 걸까? 이제는 그 과정마저도 머릿속에서 희미해져 버렸지만 그때의 내가 매우 단호했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기억난다. 호주에 갈 거라고. 호주에 가야 한다고. 당시의 나는 내가 정말 그 사람들이 말하는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지, 호주에서 생활 가능한 수준까지 영어 실력을 올릴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은 제로에 수렴했었음에도 호주에 가야 한다는 생각만은 확고했다. 아직 워킹 홀리데이라는 제도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를 때였는데, 호주에 가면 인생이 바뀔 것을 무의식적으로 예측했던 것일까?
이유는 붙이기 마련이다. 그들의 영상을 잇따라 보며 내 바람은 점차 굳건해졌고 호주에 가야 하는 그럴듯한 이유들을 하나둘씩, 매우 구체적으로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내가 호주에 가야 하는 이유는 총 네 가지였다. 첫째로, 나는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에 언제나 관심을 보여 왔기에 영어권 국가이자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호주에 가서 하나의 사회인으로 자리잡는 경험은 무척 의미 있을 것이다. 둘째, 내가 가장 입사하고 싶은 회사는 본사가 외국에 있기에 해외 취업을 위해서는 영어로 일할 줄 알아야 하고 워홀 제도는 일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기에 영어 일 경험을 쌓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셋째로, 해외 인턴십이나 해외 취업을 준비하면서 드는 비용이 만만찮을 테니 돈을 꽤 벌어 둬야 하는데 그 역시 호주에서는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호주인들의 여유로움과 삶과 사람을 향한 다정한 태도를 배우고 싶다. 그러니까 짧게 줄이면, 경험, 영어, 돈, 인생 교훈을 위해 나는 호주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네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소리였다.
포부가 거창했던 것과 달리 실제로는 불신에 가까운 태도로 나의 소망을 관찰하고는 했는데, 그 이유인즉슨 나는 단 한 번도 혼자서 해외로 나가 본 적이 없거니와 영어로 할 줄 아는 말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 본 적 없는 길을 제 발로 걸어 간 경험은 그리 많지 않았고, 해외에서 장기간 동안 잘 알지도 못하는 언어를 제1 언어로 쓰며 혼자 사는 경험 따위의 일은 스케일이 커도 너무 컸다. 내가 그걸 감당할 그릇은 못 되지 않나 하며 불안과 두려움에 뒤엉켜 있는 동안, 한편으로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설렘과 기대감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시시때때로 나를 지배했다. 내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나의 손은 개의치 않고 쉴 틈 없이 호주 워홀에 대한 정보를 모아 나갔다. 그렇게 발견한 정보 하나. 본인을 워홀 전문가라 칭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워홀러들은 성수기가 시작되기 전인 9월에서 10월에 호주를 가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 말은 워홀을 준비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들여도 된다는 허락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리하여 내게는 8개월이라는 준비 기간이 주어졌다.
자그마치 8개월이다. 체력을 기르고, 돈을 벌고,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시간. 나는 그걸 잘 알았다. 따라서 휴학 기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부터 PT 10회권을 끊고 이후에는 러닝을 시작하는 것으로 체력을 길렀고, 오프라인에서 서비스직 알바 두 개 온라인에서 부수입 일 하나 해서 돈을 벌었으며, 이런저런 영어 공부법을 실험 삼아 해 보다가 마침내 완성된 나만의 영어 공부 루틴을 반복하며 영어 실력을 늘려 나갔다. 그러는 동안 비자와 비행 준비도 일찍이 모두 마쳤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내가 미래를 계획대로 준비하는 것에 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호주에 가서 크나큰 약점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모른 채로, 그렇게 대체로 자신만만한 준비 생활을 보냈다.
그럼에도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작게는 하루에 1분씩 러닝 타임을 늘려 가는 것부터, 크게는 맞지 않는 동료와 좀처럼 늘지 않는 리스닝과 스피킹까지 꾸준히 나를 주저앉고 싶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호주 워홀에 대한 갈망이 사그라드는 것이 느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어째서 호주에 가고 싶었는지 도무지 답을 내릴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내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모든 걸 준비하고 있나 싶었다. 그럼에도 한 번 결단 내린 것에 있어서 번복하는 유형은 아니었기에 멈추지 않고 하던 걸 계속했다.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으므로. 이유가 뭐가 되었든 내가 간다고 한 거니까. 과거의 나를 저버릴 순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귀국하는 달이 가까워질수록 나의 자신감은 호주에 가서 혼자서도 잘 살아낼 거라는 확신을 스스로에게 불러일으켰고, 그 감정에 기대어 하루하루 설렘과 두려움 사이를 널뛰기하며 지냈다. 어떤 밤은 기대감에 부풀어 쉽사리 잠들지 못했고, 또 어떤 밤은 불안을 한껏 집어삼켜 다른 의미로 쉬이 잠들지 못했다. 내 인생의 타임라인이 그러하듯 이번에도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대망의 9월이 마침내 찾아왔다.
코앞으로 다가온 귀국일에 대한 걱정은 하나도 들지 않게끔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마지막으로 남은 일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해 두는 것이었다. 이별이 아쉽지 않게, 훗날 후회되는 일 없도록 한 명도 빠짐 없이 진심을 눌러 담아 마음을 전했다. 나는 곧 호주로 떠나고, 2년 동안 있다가 올 거라고. 그동안 함께해서 즐거웠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 그때 웃으면서 다시 보자고. 소중한 인연들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한국에서도 나름 행복하게 지내 왔음을 상기했다. 그래, 나쁘지 않았지. 어쩌면 좋았다고까지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내 앞에 놓인 것은 더 이상 한국이 아닌 호주였다. 내가 가야 할 길은 명확했고, 그곳에 한국은 없었다. 전해 연초부터 시작한 자기 전 다이어리 작성 루틴을 그날 밤 비행기에서도 꿋꿋이 지켰다.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이 역시 당시에는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
오전 5시 10분. 창 밖으로 태양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내게 주황빛이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비행기에 타기 전까지 언제나 기대감이 두려움을 이겼었는데 그날 밤만은 그러지 않았다. 준비했던 시간은 모두 사라지고 호주 워홀에 가야겠다고 다짐하던 날의 내 상태 그대로 호주 땅을 밟을 것 같았다. 목적의식 뚜렷하던 과거는 다 어디로 가고 방향 감각을 잃은 현재만이 내 머릿속을 바쁘게 배회했다. 이대로 정말 호주에 간다고? 이제부터는 정말 모든 걸 오롯이 나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고? 거짓말. 어째서?
그렇지만 나는 그런 순간에도 나를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 바라는 것을. 그 어떤 감정이 지금의 나를 혼란스럽게 할지라도 무대에 오르는 순간 제집인 양 뭐든지 척척 잘해 낼 거라는 것을. 나는 오늘의 계획을 줄줄이 꿰고 있고, 그대로 실행에 옮길 능력이 있다. 나는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밝게 웃으며 “Hi, how are you?” 할 준비가 되어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굳게 믿는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정말로 꿈을 현실로 만들 때이다. 폭죽에 불을 붙이자.
“승객 여러분, 이제 곧 시드니 국제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좌석 벨트를 풀지 마시고, 좌석에 앉아 계시기 바랍니다. ••• 호주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