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호주에서의 첫째 날,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고
호스텔에 도착해 짐을 풀 때까지만 해도 모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비록 면세점에서 사고자 했던 선글라스도 못 사고, 택시 타는 곳이 어디인지 몰라 이동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같은 질문을 반복해야 했지만 그러는 과정조차도 여행의 일부로 느껴졌기에 기분 좋은 상태는 어렵지 않게 유지되었다. 공항 직원의 도움으로 무사히 택시 승강장에 도착했고 택시 기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나름 괜찮게 스타트를 끊었다고 생각했다. 도착지에서 내린 뒤에 마주한 호스텔의 외관과 내부는 사진에서 본 바와 같이 매우 아름다웠고 서양인의 얼굴을 한 다양한 사람들의 활기를 느끼며 여유롭게 체크인을 마쳤다.
내가 일주일간 묵을 방은 6인 여성 전용 도미토리로 규모가 꽤 있었는데 창 밖으로 보이는 뷰 역시 볼 만해서 안 그래도 설레는 마음에 바람이 끝없이 살랑였다. 내가 호주에 왔다니. 내가 시드니 중심에 발 붙이고 서 있다니. 이 모든 게 진정 꿈이 아닌 현실이라니. 하지만 마냥 벅차올라 하기에는 해야 할 일이 많았으므로 제멋대로 날뛰려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백팩만 든 채 스터디룸으로 장소를 옮겼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부터, 예상치 못했던 일들의 연속, 그러니까 내 인생 다신 없을 수난 시대가 시작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전부 별일 아닌 것들인데 당시에는 다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쉽게 멘탈이 무너지고는 했다. 가볍게는 마우스를 리스트에 적지 않아 챙겨 오지 않은 것부터 나아가서는 온라인 업무 처리에서 계속 문제가 생기는 것까지 여러모로 굉장히 혼란스러운 첫째 날 오후였다. 그러나 일이 안 풀릴 때 자리에 앉아서 골머리만 앓고 있는 것은 내 분야가 아니었기에 노트북을 빠르게 가방에 집어 넣고 밖으로 나섰다.
나는 울루물루에 있는 호스텔을 예약했기에 시티를 가까운 거리에서 즐길 수 있었다. 첫째 날이니만큼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었고 그런 연유로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이 추천해 준 가게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비싼 가격과 어울리지 않게 굉장히 허접한 비주얼의 음식이었지만 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먹는 음식이라는 타이틀을 떠올리며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혼자 속으로 후한 평을 줬다. - 지금에서 다시 평가하자면 시드니 물가를 고려했을 때 가격에 맞는 퀄리티였다. -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메트로에 들러 샴푸와 바디워시를 구매했는데, 이때 내 옆을 지나가던 아저씨가 대뜸 “Sorry”라고 말하길래 기분 좋은 충격을 받았다. 길을 비켜 달라는 의미로 미안하다고 하다니, 이게 바로 호주의 문화인 건가? 한국에서는 말 없이 지나간다거나 보통 “지나갈게요”라고 하지 “미안합니다”라고 하지 않지 않는가.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아저씨가 한 말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호주에서는 길을 비켜 달라는 뜻으로 미안하다고 하는구나. ••• 정말 좋다.
존중, 배려, 다정. 이 세 단어를 지나칠 만큼 사랑했다. 그랬기에 내가 타인을 존중해서 배려하는 만큼, 내가 타인을 다정하게 대하는 만큼 언제나 상대도 내게 그리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세상은 공평하지 않았고, 인간 관계는 더더욱 그러지 않았다. 내가 주는 애정의 크기는 항상 타인의 것보다 컸고, 내가 온 마음을 다해 감사와 사과를 표해도 상대는 그만큼의 노력을 쏟지 않았다. 아마 그럴 용의조차 없었으리라. 애초에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이 같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지만 과거의 나는 순진했고 무지했다. 그래서 그저 길 좀 비켜 달라고 하는 건데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문화가, 나를 그렇게도 서글프게 했다. 고작 그 쉬운 일 하나 부탁하는 건데, 미안하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해서. 사과 한 번 제대로 받아 본 적 없던 나는 다른 맥락의 Sorry 한 번에 울적해졌고 동시에 행복해졌다. 이곳에서는 내가 존중하고, 배려하고, 다정하게 행동하는 만큼 돌려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먼저 그러지 않아도 방금처럼 상대가 먼저 보여 줄 것 같아서. 나는 지금 한국이 아닌 호주에 있다. 그 사실을 선명하게 각인한 첫 번째 순간이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샤워를 했고 예정대로 Gap Park에 갈 준비를 했다. 안 풀리는 일이야 내일 이어서 하면 되는 거고, 일단 나는 첫째 날의 밤을 즐겨야 했다. 시드니에서 갈 곳으로 추천 받은 곳이 그곳이었기에 목적지로 그곳을 택하긴 했지만 여행에 있어서는 매우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편이기 때문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구글 맵을 끄고 주변을 둘러보는 데에 집중했다. Robertson Park을 거닐며 Watsons Bay로 향했고 때마침 노을이 작열하며 지고 있었다. 노을빛으로 물든 하늘과 바다는 더없이 아름다웠고, 나는 바닷길을 따라 걸으며 틈틈이 그 풍광을 감상했다. 근처 레스토랑에서 흘러나오는 Roy Ayers의 Searching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고 더 가까이에 있던 펍에 들어가 마가리타를 시켰다. 한 번도 마셔 본 적 없는 마가리타를 시킨 데에는 인생 드라마 The Good Place의 주인공 엘리너가 로봇 비서 재닛을 시켜 종종 마가리타를 마신 영향이 다분히 있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세 모금 이상은 돈이 아무리 아까워도 못 마시겠어서 거의 다 버렸지만.
이후엔 근처 젤라또 가게에 가서 Candy Wonderland를 먹었고 완전히 밤이 된 하늘을 보며 페리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대기열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가까운 곳에 나처럼 혼자 온 것 같은 여성이 보였다. 말, 걸까? 아냐, 부담스러워하시면 어떡해. 그렇지만 우리 둘 다 일행도 없는데 말동무 있으면 서로 좋잖아? 그건 네 생각이고. 속으로 두 인격을 내세워 말을 여러 번 주고받다가 결국 그에게 말을 걸었다.
“Hi, how are you? Are you traveling now?(안녕, 기분 어때? 지금 여행 중이야?)”
다행히 그는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서로의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일본에서 약사로 근무하다가 지금은 호주 여행 중이라고 했고 곧 시드니를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워홀 비자로 호주에 왔고, 이러저러한 목적으로 2년 동안 있다 갈 거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매우 용감하다며 잘하고 있다고 했다. 입장 시간이 되어 우리는 페리를 함께 탔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얘기 나누었다. 페리에서 내리고 나면 오페라 하우스 주변을 거닐 거라고 했더니 그는 자기도 오늘 밤 함께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시티에 가까워졌을 쯤 우리는 빌딩숲을 배경으로 서로의 사진을 찍어 주었고 페리에서 내린 뒤에는 오페라 하우스 쪽으로 향했다. 지난 8개월간 나를 눈물짓게 하고 때로는 그 무엇보다 벅차오르게 만들던 바로 그 건물 앞에 마침내 이르렀을 때,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사실 그때의 감정이 어땠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보다 덤덤한 스스로에게 놀랐었던 것도 같다. 근처 레스토랑 앞에서 버스킹하는 것을 보며 저 공간에 가까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걸 눈치챈 그는 그곳에서 늦은 저녁을 먹자고 했다. 우리는 Opera Bar로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다. 두 시간이 넘도록 그와 각자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얘기 나누다가 인스타그램을 공유하고 헤어졌다. 당시까지만 해도 eSIM 연결을 못해서 와이파이에 의존하고 있던 터라 집 가는 길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지만 길을 잘 찾는 능력 덕분에 무사히 귀가했다.
다음 날 아침, 조식을 먹기 위해 일찍 기상했으나 형편없는 콘푸라이트의 맛에 크게 실망했다. 알고 보니 호주 일반 마트에서는 내가 익히 아는 콘푸라이트를 팔지 않았고 따라서 내가 콘푸라이트라고 생각하고 부은 것은 다른 회사의 제품이었다. - 호주에 사는 동안 이렇게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한국과의 다른 점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 아침을 먹고 나서는 eSIM 연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심을 사러 시티에 나갔고 예약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은 뒤에는 서둘러 호스텔로 돌아와 마저 해야 할 일을 처리했다. 호주에 온 지 이틀 만에 호주 통신사 고객센터와 통화하는 일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어찌 되었건 그 이후로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듯했다. 호주 전화번호 하나 생겼다고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일들이 줄줄이 해결됐기 때문이다.
셋째 날 아침, 내일 떠난다는 같은 방 일본 친구가 자신의 친구로부터 받은 도넛을 나누어 주었다. 나는 당일 저녁에 달링 하버에서 불꽃 놀이가 열린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친구에게 말해 줬고 그는 일행이 없으면 같이 가자고 했다. 이왕 만나는 거 저녁도 같이 먹기로 하고 그 전까지는 각자의 일정을 이행하기로 했다. 나는 그날도 고객센터와 씨름하고 있었고, 마침내 유심을 이심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채 바로 The Rocks Market에 구경을 갔다. 구름 한 점 없는 오후에 마주한 하버 브릿지는 매우 아름다웠고 마켓으로 가는 길 역시 어느 하나에서도 쉽게 눈을 뗄 수 없었다. 선글라스를 사기 위해 간 것이기도 했기에 선글라스 매대를 특히 더 찬찬히 살펴보았고 나에게 어울릴 법한 녀석을 용케도 찾았다. 지금은 아무리 햇빛이 뜨거워도 선글라스를 잘 안 쓴다는 걸 알기에 저렴한 값을 주고 아무거나 사겠지만 당시에는 뭐든지 한 번 사면 오래 쓸 거니 응당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했다.
하늘에서 펼쳐지는 스카이라이팅도 보고 바깥쪽에 설치된 마켓들과 보는 이 하나 없는 버스킹도 구경하면서 퍽 새롭고 즐거운 오후를 보냈다. 또한 첫째 날 저녁에 먹은 젤라또가 무척 맛있었던 기억이 있어 그날 오후에도 근처 젤라또 가게에 들어가 비슷한 맛으로 골라 먹었다. 이후 Observatory Hill Park에서 노을을 감상했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일본 친구와의 저녁 약속을 위해 달링 하버 사이드로 향했다. 우리의 저녁은 스시샵이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먹은 호주식 스시의 맛에 충격을 받고 나는 그만 사랑에 빠져 버렸다. 그 가게의 것이 특히 맛있었다기에는 호주에 있는 동안 먹은 모든 스시가 너무 맛있었고, 정말 너무 맛있었단 말밖에 못할 정도로 대체로 다 맛있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뒤 친구와 나는 달링 하버로 향했고,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되는 불꽃 놀이를 그 누구보다 신선한 반응으로 즐길 준비를 했다. 그렇게 오후 8시 30분이 되었고, 축제가 시작되었다.
팡, 팡, 팡, 팡.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는 폭죽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매번 다른 방식으로 수놓으며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일제히 빼앗았다. 어찌 저리도 아름다울까. 그날 밤의 불꽃 놀이는 내가 시드니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무언의 인사처럼 느껴졌다. 비록 너무 많은 일들이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 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순간은 즐겨 마땅하다고 친절히 알려 주는 듯했다. 그때의 불꽃 놀이가 시사하는 바를 완전히 깨닫기까지는 그로부터 수개월이 걸렸지만 그날 밤 내 안에서 울컥하고 차오르던 무언가가 의미하는 바는 당시에도 알았다.
결국, 나는 해 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