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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Mar 16. 2021

사진으로 걷는 올레21코스

제주도민의 언제 포기할지 모르는 올레길 돌파기 (4)

1. 지난주 올레길에서는 볼 수 없었던 흐드러진 유채꽃밭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샛노란 물결이 바람에 일렁이며 봄을 재촉하고 있었다. 길을 따라 성산일출봉까지 걸으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는 유채꽃밭들이 있을 터였다. 그 유채꽃밭에는 다소 어색한 하트 문양의 벤치가 놓여있기 마련이다. 이 날, 올레길 곳곳에서 만난 유채꽃밭은 공짜였지만 벤치도 없고 사람도 드문 하늘과 구름과 땅과 나무가 어우러진 한 폭의 자연이었다.


2. 하도 별방진. 왜구를 막기 위해서 지었다는 해안산성이다. 사실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포구에 붙은 별방진이 아니라 포구 안쪽의 별방진이다. 포구 쪽의 별방진에는 성에 올라 연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성은 세월이 흘러 본래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까맣게 잊고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선물하고 있는 듯했다.


3. 돌담은 위태롭고 엉성하다. 제주 돌에 얼기설기 구멍이 나 있듯, 돌담에도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돌담은 바람을 막아서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돌담들이 세월을 무심히 견디는 것은 바람을 막아서지 않는 돌담의 바람구멍에 있다. 지금에야 만들어지는 돌담은 무너질까 돌을 쌓아두고 그 사이에 끄떡없을 것만 같은 공구리(콘크리트)를 붓곤 하는데, 오히려 세월은 콘크리트 돌담에 쩍 갈라진 깊은 상처를 내기도 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삶의 무수한 바람을 막아설 필요 없다. 온갖 힘으로 막아서다 오히려 회복하기 어려운 큰 상처 입을 필요 없다. 내 삶 속 바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야 한다. 바람은 늘 찾아오고 또, 지나가는 법이다.


4. 마치 드라마 <도깨비>의 그곳을 떠올리게 하는 곳. 바닷물이 부서지지 않고 길에 슬며시 들었다 슬며시 나가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오묘하다. 마치 파도의 그러데이션을 보는 것 같다. 친구와 나는 이곳에서 삼각대로 카메라를 고정해두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5. 커피가 마시고 싶어 들른 카페 '토끼썸'. 야외 테이블 밖으로는 토끼섬이 보인다. 아직 날은 채 따뜻해지지 않아서 그늘진 야외 테이블은 생각보다 쌀쌀했다. 우리는 중간 지점 즈음해서 커피를 마시곤 하는데, 편의점 커피 대신 이렇게 카페에 들른 건 또 처음이었다. 내친김에 스콘까지 허겁지겁 해치우고는 다시 올레길로 향했다. 


6. 갯담의 모습. 바닷돌로 물길을 막아 고기떼를 잡는 장치다. 바다와 돌은 제주에서는 대단히 익숙한 풍경이라 그냥 쉽게 지나치곤 하는데, 글로만 보았던 갯담을 이렇게 자세히 본 건 처음이었다. 멀리 토끼섬도 보인다. 토끼섬은 아무리 토끼를 떠올리며 보아도 전혀 토끼가 보이질 않아 왜 토끼섬일까 궁금하다. 나중에 알아보니, 한여름 하얀 문주란이 섬을 뒤덮었을 때,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이 토끼를 닮았다고 한다.


 

7. 지미봉 정상. 올레21코스에서 가장 난코스다. 160m의 높이인 지미봉까지 오르는 길이 300m이니 얼마나 가파른 곳인지 알 수 있으리라. 완만한 올레길만 걷다 만난 가파른 지미봉은 정말 힘겨웠다. 쉬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 단숨에 올랐다. 지미봉에 오르면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흐릿해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청명한 하늘이라면 우도와 성산일출봉을 카메라에 쉽게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정상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힘겹게 올랐던 기억은 흐릿해지고 일출이 멋있겠다며 다시 지미봉에 찾고 싶어 진다.


8. 지미봉을 다시 내려와 조금 걸으면 만나는 종점. 탁 트인 해안에서 오늘도 이렇게 21코스를 마무리한다. 우린 오늘 오래간만에 올레길의 마무리로 술을 마시겠다고 작정을 하고 나온 터라, 설렌 마음을 안고 제주시로 향했다.


9. 제주시로 돌아갈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만난 '소심한 책방'. 올레길을 마무리하며 들르면 좋을 제주의 작은 책방이지만, 이제 곧 이사를 앞두고 있어 이곳에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예정이다. 이 공간이 없어지기 전에 들를 수 있어 좋았다. 이사하고 나면, 그곳에 다시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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