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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Apr 12. 2021

사진으로 걷는 올레1코스

제주도민의 언제 포기할지 모르는 올레길 돌파기 (5)

1. 코스 처음부터 말미오름이 마주하는 올레1코스. 21코스까지 개장된 올레길의 시작점이다. 지난 21코스의 가파른 지미봉이 떠올라 우리는 잠깐 좌절했다. 하지만 그 높이나 난도는 지미봉에 비할 게 아니어서 싱겁게 오를 수 있었다. 지미봉에 올라 내려다본 우도와 일출봉이 말미오름에서도 거칠 것 없이 시원하게 보였다. 오늘은 코스의 초반에 오른 오름이라 새롭게 떠오른 해가 우도와 일출봉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2. 말미오름을 내려오면 바로 옆에 위치한 알오름을 오른다. 알오름을 오르다 문득 뒤편을 바라보는데 한라산이 두둥실 떠 있었다. 그 모습이 기괴해서 잠시 한라산이 맞는지 의심까지 했다. 그러나 곧 구름에 걸린 한라산임을 확신했고 우리는 그제야 감동했다. 구름 위에 놓인 한라산을 본 건 내 제주 인생 처음이었다. 카메라 앵글을 당겨 찍어보지만 아무래도 저 장면을 담을 수가 없었다. 


3. 오름을 내려와 걸으면 시작되는 종달리 올레길. 해안도로로 나가는 골목골목에는 작은 상점들이 많았다. 카페도 있고 식당도 있고 공방도 있고, 이렇게 애틋한 모습의 슈퍼도 있었다. 아직 오전 9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라 문을 연 곳이 없었지만 포근한 느낌이었다. 승희상회의 나란히 놓인 다섯의 뽑기 기계는 옛 생각에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러다 승희는 누구의 이름일까 싶었다. 슈퍼집 딸의 이름이라면, 승희는 몇 살이나 됐을까? 내 마음대로 어리석게 추측하고 있는 승희상회의 역사가 궁금했다.


4. 종달은 척박한 땅이다. 염분이 많은 땅에 농사를 짓기 어려웠던 탓이었다. 하지만 종달리민들은 '소금바치(소금밭사람)'라고 불리며 질 좋은 소금을 만들었다. 왕에게 진상되기도 했다니 우수한 품질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예전과는 상관없이 종달은 이제 정말 풍요로운 땅이다. 아름다운 종달바당(종달바다)와 고즈넉한 마을의 모습이 어우러져 계절마다 관광객과 도민들이 몰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종달은 그 단어의 소리값처럼 귀엽고 달콤한 기억을 만들어주는 곳이다.


5. 바닷길을 걷다 보면 해풍에 마르고 있는 준치의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준치는 오징어와 한치의 중간 정도 크기의 반건조 오징어를 일컫는다. 썩어도 준치의 그 준치는 아니다. 줄지어 말라가는 준치는 막걸리 혹은 맥주 한잔을 떠오르게 한다. 마침 올레길 중간에는 목화휴게소가 위치해 있는데, 의도한 건 아닌듯한 탁 트인 오션뷰를 품은 이 노포에서 준치와 막걸리, 맥주를 거절하고 지나가기가 대단히 어렵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우리도 목화휴게소로 이끌리듯 들어갔지만 준치가 부족해 13시부터 영업한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씀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올레길에 올랐다.

  

6. 목화휴게소를 거쳐 계속되는 올레길은 성산일출봉을 향해 걷고 성산일출봉을 만나 광치기 해변에서 작별하는 코스다. 길을 따라 일출봉의 왼편, 오른편, 정면을 모두 만날 수 있다. 깎아지른 듯한 일출봉의 모습은 보는 각도와 장소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는데 각각의 감동이 모두 특별하다. 매번 차를 타고 지나가며 봤던 일출봉을 이쪽, 저쪽에서 천천히 관찰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올레길은 일출봉의 매력을 백 퍼센트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일출봉을 찾을 때는 늘 그렇듯 일출봉 주차장에 차를 세워 정면의 모습만 보기보다는 조금 옆으로 발걸음을 옮겨 다양한 일출봉을 만나는 것도 좋겠다.


7. 걸은 날, 광치기 해변은 물때가 맞지 않아 아쉬움이 있었다. 사실, 광치기 해변은 간조 때 드러나는 바위들의 모습과 바다, 하늘, 일출봉이 이루는 풍경이 그야말로 일품인 곳이다. 하지만 우리가 본 오늘의 광치기 해변은 물이 들어차 평범한 모래사장처럼 보일 뿐이었다. 위의 사진은 몇 달 전 물때를 고려해 찾은 광치기 해변에서 찍었던 사진이다. 


8. 이렇게 이번 올레길도 끝. 체력이 좋아지는 것인지 갈수록 길은 짧게만 느껴진다. 그나저나 목화휴게소는 아직도 찝찝한 마음이 남아 있어 다시 찾아야겠다. 한잔의 술과 준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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