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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May 04. 2021

사진으로 걷는 올레6코스

제주도민의 언제 포기할지 모르는 올레길 돌파기 (6)

1. 오랜만에 시간이 맞아 올레길을 걷기로 한 전날 비가 내렸다. 당일 아침까지도 비 예보가 있었고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흐린 하늘에 걷는 올레길은 아무래도 맛이 나지 않을 터였다. 그래도 오랜만에 걷는 올레길을 포기하기엔 마음이 무거웠다. 하필 전날 과음을 한 친구를 위해 거리가 짧은 6코스를 택했다. 6코스의 시작점으로 가는 길은 안개가 자욱했다. 올레길 중에서도 또, 아름답다고 유명한 6코스를 걷게 된 날, 날씨가 좋지 않아 마음이 쓰렸다. 그런데 이게 웬걸. 서귀포에 들어서자마자 하늘이 개운하게 열렸다. 거짓말처럼 구름모자를 쓴 한라산 아래로는 맑음이었다. 그렇게 올레길 돌파기 역사상 가장 좋은 날씨를 마주했다.


2. 6코스는 쇠소깍에서 시작한다. 효돈천의 하구를 가리키는 쇠소깍은 전통배를 탈 수 있는 곳으로 이미 유명한 관광지였다. 효돈천과 바다가 맞닿는 곳에는 오묘한 파란색과 초록색의 그러데이션이 일어난다. 예전에 쇠소깍에 왔을 땐 비싼 가격에 조각배 탈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가격에 상관없이 왠지 타고 싶었다. 다만, 관광객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금세 포기했다.


3. 쇠소깍을 걸어 나오면, 섶섬이 보인다. 쇠소깍 쪽에서부터 섶섬, 문섬, 범섬을 차례로 볼 수 있는데 서귀포의 아름다운 바닷가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섬들이다. 나는 내가 이미 평생을 섬에 살았으면서도 섬에 가는 걸 좋아한다. 우도도 좋아하고, 마라도, 추차도에도 좋은 기억이 있다. 육지에 올라서도 귀소 본능처럼 아름다운 섬을 찾아 떠나는 것을 좋아했다. 섶섬에게도 마음을 빼앗겼다. 핸드폰 갤러리에는 이쪽저쪽에서 찍은 섶섬 사진이 가득했다.


4. 올레6코스는 휠체어 구간이 있는 곳이다. 곳곳의 길을 새롭게 발견해 걷는 올레길의 특성상 거동에 불편함이 있는 경우에는 걷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유아차를 이끌고 걸을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올레길은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주고 있다. 우회로를 개발하거나 휠체어 구간을 마련해 공지해주는 것이 그것이다. 난 이런 장치들이나 생각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이 일반인이라고 칭송받는 이들의 장애를 위한 배려나 따뜻한 마음씨가 아니라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을 존중하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5. 파란색과 초록색은 참 잘 어울리는 색이다. 그리고 올레길은 그 색을 잘 담아낸다. 초록색 사이로 비치는 파란 바다는 눈길을 저절로 옮겨내고 발길을 저절로 더디게 만든다. 숲은 푸르지만 막막하고 바다는 푸르지만 허무하다. 올레길은 그 두 가지가 적절히 섞인 풍경이다.


 

6. 아는 사람은 안다는 소천지. 스노클링으로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비경으로 불릴만한 곳이다. 사실, 이 글에 소개하면서도 들킬까 조마조마한 아이러니한 마음이기도 하다. 그 모습이 마치 백두산 천지를 축소한 것과 같다 하여 소천지라 불린다. 제주에 내려오는 이들에게 겁 없이 추천하는 곳이다. 용암으로 굳은 바위들과 바다가 만든 호수가 장관을 이룬다. 소천지에 한라산 모습이 투영되면 기가 막힌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함께 걸은 제주도민은 '이거 뭐야?'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는데, 그 푸념은 제주에 살면서도 와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책망처럼 들리기도 했다.


7. 소천지를 돌아 나와 정방폭포로 향하는 길에는 듬성듬성 물이 떨어진다. 마치 곧 만나게 될 폭포를 예견하는 듯하다. 사실, 나는 정방폭포 대신 소정방폭포를 더 좋아한다. 북적북적한 정방폭포보다 맘껏 폭포수를 즐길 수 있는 소정방폭포가 내게는 더 애틋하다. 여담이지만, 충청도 출신의 까다로운 성격의 매형은 제주도에서 가장 멋진 곳으로 소정방을 꼽았다. 소정방폭포 물에 얼굴을 괜히 얼굴을 한 번 씻었다.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소정방폭포에서 조금 걸으면, 진짜(?) 정방폭포를 만날 수 있는데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던 터에 아쉬운 마음이 들어 정방폭포도 들렀다. 도민은 무료입장이 가능해 부담이 덜했다. 역시 사람이 많았고 바다와 이어지는 정방폭포는 나름 매력이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마음 한편에 소정방폭포가 떠올랐다.


8. 종점으로 가는 길에는 이중섭 미술관과 이중섭 거리를 지난다. 얼마 전 읽은 <방구석 미술관 2>에서 이중섭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는데 여러 번 왔던 곳임에도 마음가짐이 달랐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 시간이 촉박해 이중섭 미술관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시간을 내서 꼼꼼히 다시 오고 싶었다. 함께 걷는 친구와 이중섭 거리에 놓인 잡화점에서 사실, 쓸데없는 물건을 하나 샀다. 비싸고 귀여웠다. 아내에게 줄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중섭 거리 보도 블록에는 곳곳에 이중섭이 있다. 걸음을 즐겁게 해주는 그림이다.


9. 그렇게 오늘도 6코스가 끝났다. 짧은 거리였지만 알찬 코스였다. 누군가 시간이 없으니 한 코스만 가야 한다고 나를 채근한다면 난 주저 없이 6코스를 택할 것 같았다. 물론, 고작 여섯 코스를 돈 것이지만 말이다. 그만큼 좋았고 아름다웠다.


+. 친구와 와펜을 모으기 시작했다. 지난 1코스에서 사지 못했던 와펜까지 두 개를 샀다. 모으는 재미가 여권만큼이나 재밌다. 처음엔 돈이 아까워서 모으기를 거부했는데, 왜 그랬나 싶다. 6코스의 와펜에는 섶섬이, 1코스의 와펜에는 시흥초등학교가 그려져 있다. 올레길은 누가 계획했는지 참,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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