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환상적인튀김요리 Oct 07. 2021

부족한 삶 그 자체로

아홉 번째 책 <우리 동네에 혹등고래가 산다>


<깔끔하게 꽂는 책꽂이>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작품을 선생님의 관점에서 읽고 소개합니다. 주변에 책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지루하다는 이유로 혹은 길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며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읽어보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분명, 그다음의 책을 스스로 찾아 나설 겁니다.



자존감은 자신 스스로를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감정입니다. 어찌보면, 자존심과 한 끗 차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두 개념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결국 자존감은 내부에서 자존심은 외부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 <우리 동네에 혹등고래가 산다>에는 가정환경이 다른 두 아이가 등장합니다. 도근이와 찬영이입니다. 도근이와 찬영이는 서로에게 자존심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내면의 자존감은 조금씩 무너집니다.


도근이는 바다로 모험을 멀리 떠난 아빠를 그리워하며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도근이는 늘 열두 번째 생일만 목이 빠져라 기다렸습니다. 모험을 떠난 아빠가 돌아오기로 약속한 날이 바로, 도근이의 열두 번째 생일이기 때문입니다. 도근이는 그날만을 기다리며, 아빠의 편지 속 모험담을 읽고 또 읽으며 기다립니다. 편지 속 모험담을 친구들에게 늘어놓을 땐 마치, 자신이 모험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친구들도 그런 도근이의 이야기에 늘 호기심 어린 귀를 기울여 주죠.


한편, 찬영이는 불편한 다리로 구두닦이 일을 하는 아빠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늘 도근이가 늘어놓는 아빠의 모험담에 찬영이는 비좁은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아빠의 초라함을 떠올립니다. 괜히 찬영이는 도근이에게 질투를 느끼곤 투덜대기도 하고 아빠에게 "아빠는 이 동네 떠나 본 적도 없제? 모험 같은 거 떠나 본 적도 없제?"라며 괜한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찬영이는 자신이 갖지 못한 멋진 모험을 하는 아빠를 가진 도근이가 부러우면서도 싫습니다. 


마침내, 도근이의 찾아온 열두 번째 생일. 도근이는 부리나케 집으로 향하지만 여전히 집에는 편찮으신 할머니 뿐입니다. 몇몇 친구들도 말로만 전해 들었던 도근이 아빠의 모습이 궁금해 따라왔다가 허탕을 쳤습니다. 고대하던 날에도 아빠를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도근이는 좌절합니다. 아무리 멋진 모험을 하는 아빠라고 하더라도 도근이는 이제 그만, 아빠가 자기 곁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찬영이는 하찮은 구두닦이 일 말고 모험 같은 멋진 일을 하는 아빠였으면 합니다. 도근이는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이젠 그냥 아빠와 함께 곁에서 살고 싶습니다. 찬영이는 아빠가 멋진 일을 하고 있는 도근이가 부럽고, 도근이는 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 찬영이가 부럽습니다. 찬영이는 아빠에게 모험 같은 건 해본 적도 없지 않냐고, 도근이는 아빠가 순 거짓말쟁이라고 몰아세웁니다. 서로가 서로가 가진 것을 바라보며, 정작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은 보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도근이 아빠가 모험을 떠나 쉬이 돌아오지 못하는 까닭을 알게 되고 도근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찬영이는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도근이를 친구들이 몰아세우는 모습을 보며, 시원한 마음 대신 섭섭한 마음이 앞섭니다. 결국, 부럽기만 했던 도근이도 또, 찬영이 자신의 삶도 완벽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찬영이는 그렇게 처음으로 도근이에게서 동질감을 느낍니다.


"니 어렸을 때 아빠 완전 울보였다. 니가 처음 걸음마를 떼서 아장아장 걸을 때도 울고, 세발자전거 타고 씽씽 달릴 때도 울고... 그때 니 아빠 많이 울었데이...", "와, 와 우는데?", "아빠처럼 니도 다리를 절까 봐 걱정이 많았던 기라. 건강하게 잘 자라서 고맙다고 울고 니한테 미안하다고 울고..."



도근이와 찬영이의 모습이 유치한 시기나 질투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삶은 늘 도근이처럼, 찬영이처럼 나아갑니다. 우리는 우리 곁의 수많은 삶과 자신의 삶을 쉽게 비교하죠. 그 비교 속에 우리는 좌절하거나 우월함을 느낍니다. 내가 쉽게 가지고 있는 것이 누군가에겐 소원이 되기도 하죠. 또,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갖추지 못한 우리 삶을 자책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긍정적인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존감 대신 자존심을 좇기 때문입니다.

부럽기만 했던 도근이의 삶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찬영이가 느낀 그 동질감은 아빠의 부재나 부족함에서 오는 동질감이 아니라, 어떤 삶이든 완벽한 건 없다는 걸 깨달은 서로의 부족한 삶에 대한 동질감이었을 겁니다. 찬영은 그제야 자신의 삶에서 차지하는 부족함 대신 곁에 있는 행복을 발견합니다. 절뚝거리는 걸음걸이 때문에 늘 느리게 걷는 아빠 덕분에, 더 오래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처럼 말입니다. 도근과 찬영의 이야기로 자신의 삶에서 늘 빛나는 부분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책 - https://www.instagram.com/childwithbook/

이전 06화 나의 존재에는 조건이 필요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