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각종 괴담에 빠지지 않는 배경이다. 이순신 동상이 밤마다 조금씩 움직인다는 얘기나 철봉 밑에 억울하게 죽은 누군가가 무시무시한 사연과 함께 묻혀 있다는 이야기, 학교가 묘지 터에 들어서서 망자의 한이 서려 있다는 이야기 등등 누구나 괴담 하나쯤은 들어봤으리라. 내가 어린이였을 때에도 우리 학교엔 괴담이 돌았다. 어느 학교에나 있을 법한 괴담이었다. 깜깜한 밤, 자정이 되면 느닷없이 복도 끝 아무도 쓰지 않는 교실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병을 얻어 일찍이 죽은 아이(아니, 선배님인가?)가 치는 피아노 소리라나 뭐라나.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는 이야긴데 가끔, 깜깜해진 학교에 홀로 남아 껌껌한 복도를 보고 있노라면, 꼭 그때의 괴담이 떠오르며 오싹함을 느끼기도 한다. 복도 끝 교실엔 피아노도 없는데. 어쨌든 이렇게 학교는 각종 괴담으로 꾸며지기 꼭 알맞은 배경이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활자화되어 옮겨지는 이야기가 더 많아서 구전되어 떠도는 이야기가 많지 않은 지금의 시대에도 아날로그한 학교 괴담은 여전히 존재한다.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괴담은 시대를 타지 않는 묵직한 유행인 셈이다. 다만, 요즘 떠도는 괴담은 요즘의 괴담이다. 내가 수련회에서 어린이들에게 엿들은 학교의 괴담은 깜깜한 밤, 자정이 되면 느닷없이 4학년 4반(세대를 관통하며 여전히 오해를 사는 ‘4’올시다.) 컴퓨터가 켜지는데, 세상을 일찍 등진 선생이 섬뜩한 알림장을 컴퓨터 메모장에 빨간 글씨로 적어준다는 그런 이야기다. 그러니까 예전처럼 분필이 절로 움직여서 삐그덕 대며 판서로 메시지를 전하는 게 아니라, 컴퓨터 메모장에 저절로 적힌다는 시대적 배경을 충분히 반영한 이야기다. 같잖은 괴담이네, 싶으면서도 언젠가부터 퇴근하기 전에 컴퓨터가 제대로 꺼지는지 지켜보는 나를 발견한다(실제로 나는 2023학년도 4학년 4반 담임을 맡았더랬다.).
이렇듯 소재나 상황 따위는, 시대적인 요구로 조금씩 바뀌겠으나 학교 괴담에는 딱, 한 가지 시대를 관통하는 설정이 있다. 학교 괴담은 늘 어린이들이 없는 시간의 학교를 배경으로 삼는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자고로 괴담이라 하면, 어둑한 밤이 되어야 오싹한 분위기가 제대로 묘사되기에 그런 면도 없잖아 있겠으나, 언제나 어린이가 있기에 어린이의 힘과 웃음, 행복 따위로 당연히 가득 채워지는 학교에서 그것들을 떼어내어 낯설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문학적 장치일 것이다.
그러한 배경만 따지고 들면, 지난 2020년의 3월은 학교 괴담과도 같았다. 여태 3월은 어김없이 설렌 마음을 안고 학교에 온 어린이들이 북적이는 달이었다. 총탄이 오갔다는 전쟁 중에도 문을 열었다는 곳이 학교 아닌가. 그런데 2020년의 3월은 그러지 못했다. 갑자기 찾아온 전염병은 학교, 선생, 어린이를 일순간 모두 멈추게 했고 개학은 미뤄지고 또, 미뤄져 6월에야 어린이들은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나마도 당시의 내가 근무한 학교가 한 학년에 한 학급뿐인, 규모가 작은 학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어린이가 없는 낯선 학교, 지난 2020년은 학교 괴담이었다.
3개월이라는 긴 시간, 어린이가 없는 학교는 심히 낯설었다. 음악 시간 노랫소리가 옆 반까지 들려올 일이 없었다. 시답잖은 이야기로 소란스러워질 일도 없었다. 복도에서 뛰다가 선생님께 야단을 맞을 일도 없었다. 점심시간에 스파게티가 나온 날, 누가 누가 많이 먹나 의미 없이 가릴 일도 없었다.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 일순간에 사라진, 낯선 상황이었다. 그렇게 당연해야 하는 것들이 사라진 학교는 기괴했다. 학교로 출근하면, 매번 담임선생보다 일찍 등교해서 교실의 불을 켜는 어린이가 없어 내가 불을 켜야 했다. 먼저 교실에 와서 친구들과 선생을 종종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어린이가 없었다. 친구와 선생을 반갑게 맞이하며, 안녕을 건네는 마음씨가 없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업 시간을 자꾸 놓치는 어린이가 없어 시계의 째깍째깍 소리만 유독 크게 들렸다. 난 그동안 저 시계가 무소음 시계인 줄만 알았네, 그래. 어쨌든 그래서 1초 늦었네, 말았네, 다투는 어린이가 없었다.
그렇게 주변의 삶에 이러쿵저러쿵 참견할 거리가 없었다. 저마다 각자의 삶만이 음소거된 채로 간섭 없이 조용히 놓였다. 운동장은 내내 텅 비어있었다. 허겁지겁 밥을 욱여넣고 연신 오물거리며 공을 차는 어린이가 없었다. 빠져나갈 구멍 투성인 허술한 규칙의 놀이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즐겁게 어울려 놀고 있는 어린이가 없었다. 그러니 비가 와도 아쉬워하는 이가 하나 없었다. 내일의 시간표를 붙일 필요가 없었다. 칠판은 늘 텅 비어있었다. 내일을 묻는 어린이도 내일을 기대하는 어린이도 없었다. 어린이가 없는 교실은 선생도 기대되지 않았다.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이건 괴담이었다. 내가 선생으로서 처음 경험한, 어린이가 없는 학교는 괴담이었다. 어쩌면, 이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설로 남아 제멋대로 각색된다면, 학교에 떠돌며, 진짜 괴담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있잖아, 언젠가 3월에 학교가 문을 안 열었던 때가 있었대. 그런데 말이야…,’ 따위로 시작하는. 왜 숱한 학교 괴담들이 학교를 어린이로부터 떼놓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어린이가 없는 학교란, 누구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그리고 누구도 쉽게 상상해 볼 수 없는 낯선 장소이니까. 그곳에선 어떤 초자연적 현상이든 벌어질 것만 같으니까.
어린이들이 여전히 학교에 오지 못하던 2020년 그 해의 어느 날, 해가 한복판에 떠 있던 대낮에 교실에서 나와 복도 끝 교실을 바라보는데, 낯선 피아노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문득 어렸을 적 그때의 괴담이 떠올라 조금 웃음이 났다. 그리고 바로, 괴담의 복판에 서 있는 순간이 오싹하게 느껴졌다. 원격수업이랍시고 아침마다 화면으로 인사를 나누는 일도, 음소거가 된 채 고요하게 공부하는 일도, 대꾸 없는 쉬는 시간을 외롭게 보내는 일도 오싹하게 느껴졌다.
가끔, 그때의 학교를 회상한다. 이제는 웃어넘기며 이순신 동상 아래에 숨겨놓을 만한, 한낱 괴담이었네 싶으면서도, 다시는 학교가 어린이를 떼어놓는 괴담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가득 들어찬 당연한, 교실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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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 무성했던 이순신 동상이 결국엔 1cm도 움직이지 않았던 것처럼 2020년에도 결국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왔다. 많은 학교 괴담이 그렇듯 결국엔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괴담의 결말이라면 결말이다. 그러니 2014년 4월의 그날은 얼마나 더 괴이한가. 여전히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며 가라앉은 그날은 결말을 맺지 못한 채 덩그러니 괴담으로 남았다. 몇이 남아 교실로 돌아갔겠으나 돌아간 그곳은 괴담 한가운데였을 것이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나는 여전히 노란 리본을 곳곳에 달고 다닌다. 구태의 정치적 처사가 아닌, 당연한 교실을 꿈꿨을 어린이들을 위한 처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