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다는 것은 꽤나 슬픈 일이다. 떠남을 생각하면 괜스레 가슴 한편이 시리고 슬픔이 울렁거린다. 더 불행한 사실은 세상은 야속하게도 한 번의 이별만 안겨주지 않는다. 그렇게 반복된 이별에 사람들은 아파왔고 피하려 노력해왔다. 당연히 나에게도 헤어짐은 나의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게 한다.
헤어짐은 항상 정이 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정이 든다는 것은 쉽게 말해 좋아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좋아함은 이성 관계뿐만 아니라 마음의 모든 긍정적인 끌림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로 가득 찬 내 마음 한 켠의 공간을 내어주는 것, 그것을 시작으로 점차 관계는 물들어간다. 그리고 관계 속에 시간을 쌓아가며 이 순간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보이지만 않았을 뿐 항상 헤어짐은 정이 주는 행복 옆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별의 가장 지독한 점은 정이 주는 행복에 비례해 그 아픔도 커져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시간이 길어지면 정이 깊어지고, 정이 깊어지면서 이별도 짙여진다. 그리고 그렇게 이별은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찾아오고 반복된다.
반복되는 헤어짐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어째서인지 나는 무뎌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헤어짐 앞에 반복의 의미는 무색한 것 같다. 반복의 기능은 상황과 기술을 되풀이 함으로 점차 적응해나가는 것이지만 이별의 반복은 그저 새로운 아픔으로 다가올 뿐이다. 사물, 사람, 장소, 어느 하나 다를 것 없이 선명하게 보기 위해 좁혀왔던 거리가 이제는 그리움, 추억과 함께 떠남을 결정하는 나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결국 위의 글을 정리하면 헤어짐은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슬픈 숙명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이별 앞에 아무것도 못하고 무너지기만 하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는 헤어짐의 상황에 제대로 된 마침표를 찍어주는 것이다. 마침표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끝과 시작을 의미하는 부호이다. 헤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오히려 붙잡고 억지로 써 내려가다 보면 더욱 비참해지기만 할 것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시작을 위해 예쁘게 마무리는 짓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이런 엔딩이 주는 아픔은 금세 회복되지 않을까. 쓰다가 멈춘 배드 엔딩이 아닌 제대로 된 마침표를 찍어 완성하는 해피엔딩으로 이별 앞에 나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