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날 첫 손님이었다. 때늦은 겨울 모직 코트를 입은 남자는 계산대로 곧장 걸어왔다.
“혹시, 여기에 이미란 작가 책도 있나요?”
경직된 모습과 달리 남자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아마도 그 이름 때문이었을 것이다.
“도서관에는 몇 권 없어서요, 혹시나 해서 들러봤는데.”
“운이 좋으시네요. 파는 책은 아니지만 제 책을 빌려드릴 수는 있어요.”
“사장님 책이요?”
“네, 저기에서 골라 보세요.”
나는‘책방지기의 서재’ 코너를 가리켰다. 이십 년 가까이 사모은 책들이었다. 나의 독서 편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책들. 마치 일기장을 공개하는 마음으로 나는 그 책들을 전시했고, 그 코너는 은근히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책방지기가 그어놓은 밑줄과 메모들을 심심찮게 발견하며 사람들은 재미를 찾는 것 같았다.
“그러면 이 책도 있나요?”
남자가 내민 휴대폰 화면에는 작가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수필집 표지가 비쳤다.
“네. 그럼요.”
이미란 작가는 9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작가였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겸비하고, 시처럼 아름다운 문장으로 변방과 하위주체를 대변하던. 작가의 책들은 여전히 내 책장 한쪽에 경전처럼 꽂혀있었다. 나는 남자를 내 책장으로 안내했다.
“사장님도 이미란 작가의 지독한 팬이셨군요.”
책장을 천천히 훑던 남자가 말했다.
“그랬죠. 지독한 팬.”
나는 웃음이 났다. 이미란 작가의 팬이었다가 자연스럽게 가닿았던 주순탁 교수와의 인연. 나는 높은 책장이 미로처럼 자리한 교수실에 고고히 들앉았던 한 사람을 떠올렸다. 신인 작가 이미란을 발굴하고, 그녀의 작품 세계를 끝까지 응원했던 사람도 그였다.
“근데, 이미란 작가는 유행이 지난 것 같은데요?”
내가 말했다. 설마 했는데, 책방을 차린 이후 이미란의 책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더라고요. 그 사건 때문인가요?”
남자가 말했다. 사건이라면 표절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이미란 작가는 자기 작품에 다른 작가의 글 일부를 거의 그대로 옮겨 쓴 바람에 한순간에 표절 작가로 전락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집요하게 필사하며 습작기를 보낸 그녀에게 있을 법한 일이었다. 있을 법한 일이었지만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고, 여전히 그녀는 그 사건에서 온전히 놓여나지 못했다. 다시 작품활동을 재기하면서 발표한 그녀의 마지막 수필집은 그녀의 작품에서 유일하게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했다.
“그러게요. 어쩐지 그 이후로는 저도 잘 안 읽히더라고요. 너무 오래 들여다봐서 질린 감도 있었지만.”
내가 말했다.
“질려요?”
“네, 조금요. 한 사람을 너무 오래 깊이 좋아했다고 해야 하나요? 아니다. 제 감성이 메말라서 그랬겠죠. 그래도 작가가 익어가는 모습을 쭉 지켜보고 싶었는데……. 중요한 시기에 묻힌 것 같아요.”
오래된 친구에게 말하듯 말해놓고는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렇군요.”
남자는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빌려 가셔도 돼요.”
나는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으시다면 여기에서 읽고 갈게요. 따뜻한 커피 한 잔 부탁드려요.”
남자는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눈빛을 빛내며 구석 자리에 앉았다.
아직도 이미란 작가를 찾는 사람이 있다니, 그것도 남성 독자라니, 나는 속으로 감탄하며 커피를 내렸다.
남자는 진지하게 책을 읽어나가는 듯했다. 나도 한때는 그런 눈빛으로 그녀의 책에 파고들었으리라.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가. 그녀의 휘적휘적한 걸음걸이와 속으로 말려 들어가는 듯한 답답한 목소리가 생생히 떠올랐다.
이미란 작가의 인기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내가 다니던 학교로 강연을 왔다. 당시 그녀는 내 마음속의 최고 스타였기에 나는 가장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강연을 들었다. 그녀는 내가 상상하던 이미지 그대로였다. 초등학교 교사처럼 단정하게 차려입은 진회색의 치마 정장과 반만 올려 묶은 생머리. 그녀에게는 수수하고 지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그녀는 특유의 웅숭깊은 시선으로 강연장을 휘둘러본 후 강연을 시작했다. 외딴 시골에서 소처럼 큰 눈을 끔뻑이며 낭만적인 꿈에 사로잡혀 지내던 유년 시절, 방직공장 여공이 되어 서울에서 주경야독하던 시절, 은사를 만나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수없이 책에 쓰고 매스컴에서 반복 재생된 이야기였지만, 현장에서 직접 듣는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도 소중했다.
“지금 가슴속에서 가장 절실히 원하는 걸 집중해서 하세요. 완전히 몰입해서요. 대신에 그게 서른 전에는 어느 정도 결론이 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른이 되기 전에. 제가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강조해서 말하고 싶은 건 그거예요.”
갑자기 김이 빠졌다. 당시 대학원에 다니던 내 나이는 벌써 스물여덟이었다. 남은 2년 안에 내가 무언가를 정말 이룰 수 있을지, 나는 자신이 없었다. 글에서 만난 작가는 분명히 어떠한 상황에서도 놓지만 않으면 누구나 ‘가슴속의 소중한 한 가지’를 이룰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게 기한이 있었다니. 어쩌면 그녀는 안일하고 게으른 지방대생들에게 충격요법을 써야겠다는 사명을 가졌었는지 모른다.
나는 뒤풀이까지 따라갔다. 고깃집 구석 자리를 앉은 작가는 다소곳한 자세로 옆에 앉은 주 교수와만 은밀히 대화했다. 그녀의 안중에는 그만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 사이를 질투했다. 나만의 교수, 나만의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조바심이 난 나는 악착같이 대화에 끼려고 했다. 내가 얼마나 당신의 팬인지, 당신 소설 덕분에 대학에 와서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술김에 열심히 떠들었다.
그녀는 반가워했지만 반가움에 특별한 온도는 없었다. 헤어지기 직전에 나는 그녀의 메일 주소와 연락처를 받아냈다. 그녀가 써주는 메일 주소는 나의 메일 주소와 한 끗 차이였다. 운명의 시그널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선천적으로 닮은 사람. 어쩌면 나는 결국 그녀를 만나기 위해 여태 살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할 만큼 나는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날 내가 집에 돌아와서 눈물 콧물 흘려가며 쓴 메일에 그녀는 답신하지 않았다. 팬심조차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미숙한 나의 글쓰기가 문제였을까.
남자는 그날 점심때까지 책을 읽다가 갔다. 다음 날 같은 시간에 찾아오겠다고 문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나는 한참 동안 바라봤다. 검푸른 불꽃 사이로 무거운 롱코트를 휘날리며 휘적휘적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은 나의 무언가를 건드렸다. 왼쪽으로 살짝 기운 고개와 엇박으로 리드미컬하게 걷는 걸음걸이, 그에게서 주순탁 교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대단한 어른으로만 보였던 그때 교수의 나이도 겨우 저 남자,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다. 여전히 코앞에 당도한 문제에 쩔쩔매고 줏대 없이 흩어지는 감정들을 추스르며 사는 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