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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999년 겨울

by 소란

벌써 6월이었다. 아침부터 작열하는 해를 노려보며 나는 무작정 도서관으로 향했다. 내가 사는 도시에는 재수 학원이 따로 없었고, 있었다고 해도 학원에 다닐 형편이 아니었다. 밭농사를 지어 다섯 명의 자식을 책임져야 하는 나의 부모는 셋째 딸에게 더 이상 관심을 줄 수 없었다. 셋째 말고도 집안에 애물단지는 많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5년이 지나도록 취업을 못한 큰딸, 등록금만 비싼 대학에 들어가긴 했지만 뭐 하나 제대로 못할 것 같은 둘째 딸, 그리고 셋째 딸보다 두 살 어린 아들과 그 밑에 또 하나.

동네에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공공도서관에서는 에어컨 냄새가 심하게 났다. 그 도시의 거의 유일한 복합 문화센터여서 그런지 아침부터 사람들이 많았다. 자리를 맡고 둘러보니 수능 문제집을 쌓아둔 아이들이 보였다. 그 중에 여자아이 몇은 낯이 익었다. 이름은 몰랐지만 3년 동안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누던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아이들은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에 도서관에 나와 고정 자리를 맡고 잔뜩 구겨져 있었다. 여름방학 시즌이 되자 고정 멤버가 정해졌다. 공교롭게도 남자 세 명, 여자 세 명, 당시 한창 유행하던 시트콤 제목처럼 우리는 떠들썩하게 어울려 다녔다. 종일 도서관에서 빈둥거리다가 어스름이 내리면 술집으로 노래방으로 몰려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우리는 반년 후에 각자 흩어져 어딘가로 가야 했지만, 다들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해하고 있었다. 답답한 만큼 술이 술술 잘 들어갔다. 우리는 마치 여느 대학 새내기들처럼 거의 매일 밤 취해있었다.

나는 내 생애 첫 번째 연애를 그곳에서 시작했다. 재수생 모임에 맨 나중으로 합류한 동호라는 친구였다. 그 도시에 유일했던 전문대학을 한 학기 마친 동호는 체대에 가고 싶어 했다. 체육 교사가 되고 싶다는 동호는 툭하면 도서관 옆 천변 공원으로 나가 있었다. 아이들과 몇 번 바람 쐴 겸 구경을 갔다가 나는 동호에게 빠져들었다. 적당히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뛸 때마다 자연스럽게 휘날리는 곱슬머리 같은 것. 장난꾸러기 같은 몸짓과 서글서글한 눈매. 그래서인지 재수하는 여자애들은 몽땅 다 동호를 좋아했다. 동호는 자기 인기를 즐기는 것 같았다.

무려 삼대 일의 경쟁을 뚫고 동호와 내가 사귀기 시작했을 때, 친구들은 기꺼이 축하해 주었다. 어차피 우리 사이가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능까지는 겨우 두 달이 남아 있었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난생처음 겪는 연애 감정이었고, 동호와 같이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우선순위로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제 아침마다 도서관에 가는 이유는 동호와 만나기 위해서였다. 동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늘 붙어있었고, 형식적으로 공부는 하는 척만 했다. 다시 한번 운에 맡기는 수밖에. 두 번째 수능을 치르고 나서야 우리는 진지하게 앞날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동호는 돌아갈 곳이 있었다. 원하지 않던 학교였어도 그는 엄연히 대학생이었고, 휴학을 무르고 다시 복학하면 그만이었다.

때마침 나를 찾는 사람이 있었다. 고3 때 같은 반이었던 신윤미. 뜬금없이 전화를 건 윤미는 내 사정을 듣더니 자기 회사에 한번 놀러 와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미는 학교 다닐 때부터 줄곧 나를 좋아해 왔다고,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친구가 많은 내가 부러웠다고 덧붙였다. 잔뜩 의기소침해 있던 차에 어깨가 으쓱해졌던 건 물론이다.

윤미는 조용한 아이였다. 골격이 커서 운동을 잘했고,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다. 성격이 소심해서 아이들 사이에서는 항상 주변인을 자처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연히 가까이에 갈 일이 있으면 겨드랑이 땀 냄새가 심하게 나곤 했다. 나는 의식적으로 윤미와 멀찍이 떨어져 있으려 했다. 어딘지 촌스럽고 가난한 태가 나는 윤미와 내가 겹쳐 보이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썼다고 해야 할까? 그랬던 그녀가 버젓이 서울에 자리를 잡고 회사에 다닌다니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홀로, 맨몸으로 상경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영등포역에 마중 나온 윤미는 나를 강남의 한복판으로 데려갔다. 나는 그때 얼마나 설레었는지. 윤미와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는 종일 도서관에서 궁둥이만 키우던 나에게 구세주와도 같았다. 윤미의 회사에서는 나 같은 인재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대인관계가 좋고 야망이 큰 나에게’라는 그들의 말은, 사실 ‘세상 물정 모르고 허황한 꿈만 키우는 어리숙한 나에게’라고 바꿔야 맞을 것이었지만.

일명 다단계 회사였다. 네트워크 마케팅이라니, 촌구석에서 뉴스조차 제대로 보지 않았던 내가 그 단어를 알 리가 없었다. 사람들의 뜨거운 환대 속에서, 나는 난데없이 ‘성공하는 삶’에 대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자기 이야기에 완전히 도취되어 열띤 강의를 하는 강사는 매시간 바뀌었고 하나같이 얼굴이며 차림새며 근사해 보였다. 갑작스럽게 왜 그런 강의를 들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옆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몇 명 더 있었고, 그들은 모두 진지해 보였다. 뒤를 돌아보면 윤미와 그의 동료들이 미소를 머금고 서 있었다. 윤미에게 뭔가 뜻이 있겠거니 생각하며 나는 강의를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누군가에게 주입 교육을 받는 건 아주 적성에 잘 맞았으므로, 내용 또한 흥미진진했으므로, 나는 아무런 의구심을 갖지 않았다.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벌었다는데, 성공해서 남보다 멋지게 산다는 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저녁이 되자 그들은 나를 합숙소로 데려갔다. 그들이 합숙한다는 아파트는 웬일인지 지하철 노선 맨 끝 정거장에 있었다. 지하철의 낯선 리듬과 뜨듯한 온기에 졸음이 몰려왔다. 온종일 받은 자극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눈꺼풀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서서 끔뻑끔뻑 졸고 있는 내게 윤미가 계속 괜찮냐고 물었다. 너무 피곤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켜보는 이가 많았다. 나는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해 주었다. 어느덧 사무실에 있던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사라지고 열 명의 사람만이 내 주변에 남아 있었다. 남자 네 명에 여자 여섯 명, 나는 그들을 따라 낡은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겨우겨우 오 층에 다다라, 꼭대기 층 아파트 문을 열자 방 두 개에 작은 거실이 딸린 작은 공간이 나왔다. 그들은 남녀로 나뉘어 각 방을 차지했는데, 인원수에 따라 정한 것인지 큰 방이 여자들 차지였다. 여자들 방에는 정확히 반으로 나뉘어 나란히 이불이 깔려 있었고 벽 쪽으로 베개들이 열 맞춰 놓여 있었다. 꼭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에 나오는 군대 내무반 같았다.

초라한 방과 허접한 구색에 멍해지려는 찰나에 그들은 손님 대접을 해주겠다며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남자들 중에 제일 키가 작은 남자가 먼저 큰 방의 이불을 접어 구석에 쌓았고, 윤미와 친하게 보이는 여자 하나가 방 가운데에 신문지를 깔았다. 신문지 위로는 합숙소로 오면서 사 온 튀김 닭이 쏟아졌고 온갖 과자 봉지들도 뜯어져서 내용물들이 그 옆에 뭉치 뭉치로 쌓였다. 일사천리로 그 일은 진행되었다. 곧 맥주가 담긴 종이컵이 돌았고 그들은 허겁지겁 그것들을 집어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쏟아냈다. 진짜 대학에 들어갔더라면 아마 엠티를 간 풍경이었으리라.

어디까지나 그날의 주인공은 나였다. 그들과 어울려 밤새워 먹고 마시며 게임도 많이 했다. 마이 네임 이즈 자기 소개하기 같은 것들. 그들은 온통 나에게만 관심이 있는 듯 내게 많은 것을 물었고, 나는 내 존재감을 뽐내며 주인공이 된 기분을 즐겼다. 그 방에 새로운 사람이 올 때마다 벌어지는 풍경이라는 걸 그때는 알 리가 없었고, 나는 근사한 청년들로부터 받는 일방적인 환대가 좋아서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점점 취해가며 나는 그동안 고향에서의 일들이, 대학 입시에 국한한 나의 고민들이 너무 사소하고 하찮았다고 느꼈다. 매일같이 붙어있던 동호마저도 시시해 보였다. 서울에서 매일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면, 나는 진심으로 그들 사이에 끼고 싶었다. 잔뜩 취해서 내가 그날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그 밤 ‘나도 너처럼 여기에 있고 싶다고’ 몇 번이고 윤미에게 말했던 것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을 때는 새벽 여섯 시 쯤이었다. 전날 나를 환대해 줬던 청년들은 차례대로 씻고 화장을 하고 깨끗한 정장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반갑게 아침 인사를 하는 그들을 따라 나도 부랴부랴 외출 준비를 했다. 나는 다시 지하철에 올랐고, 또 한참 졸다가 깨어보니 어느새 강남역이었다. 그들이 나를 데려간 곳은 다시 교육장이었다.

전날 본 사람들이 또다시 그곳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곧 파티를 열 것처럼 잔뜩 고양된 표정이었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반갑다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면서 힘차게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자기들끼리도 마주칠 때마다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힘차게 악수를 나눴다. 각자 정해진 말이 있는지 반복되는 말들이 들렸는데, 가령 ‘할 수 있다, 아이 캔 두 잇’, ‘보이즈 비 앰비셔스’ 같은 광고문구 같은 말들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한 명씩 칠판 앞으로 나가서 그날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과 다짐들을 웅변하기 시작했다. 연극적인 그 행동들이 몽땅 다 낯설었지만, 남의 이야기에 쉽게 감동하는 감동병이 있는 내게는 취향 저격인 풍경이었다.

“저는 어려서부터 고아로 자랐습니다.”

“집안의 모든 물건에 빨간딱지가 붙었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성공해야 하는 이유가 달랐지만 부자가 되는 것이 곧 성공이라는 믿음이 같았다. 한 명씩 자기 사연을 말할 때마다 사람들은 함께 웃고 울며 뜨거워졌다. 나는 덥석 윤미를 붙잡고, 아니 윤미의 회사 상사로 보이는 어깨가 넓은 남자를 붙잡고, 입시 실패에 따른 ‘명예 회복’과 가난으로부터의 ‘가족 구원’이라는 명분에 정확히 부합하는 그 일, 부자가 되는 그 일을 잘 해내겠다고 약속했다.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벅찬 마음을 가지고 나는 상경한 지 일주일 만에 고향에 내려갔다. 기차역까지 바래다주던 윤미는 서울에서 취직을 하게 됐다는 명분으로 그에 부합하는 돈, 이를테면 방값과 생활비를 적어도 일 년 치를 가져오라고 몇 번을 일러 주었다. 나는 그게 결코 가능할 것 같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보겠노라고 말하며 돌아섰다. 전쟁에 연인을 떠나보내는 듯한 표정으로 몇 번이고 손을 흔드는 윤미를 보며, 나는 어떤 운명 같은 걸 느꼈다. 윤미 덕분에 앞으로 뭔가 대단한 삶이 내 앞에 펼쳐질 것만 같았다. 서울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누군가에게 성공담을 들려주면서 사는 삶. 나는 강의 시간마다 우리에게 성공의 소스를 강연해 주는 멋쟁이들 사이에서 윤미와 함께 당당히 설 그날을 그려보았다.

"대학에 들어갔다 치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도와주세요."

어차피 나의 부모는 내가 대학에 가는 것 따위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더 나은 전개였다. 연기를 전공할 생각까지 했던 나로서는 거짓말이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사실 아예 거짓말도 아니었다. 나는 어쨌든 취직을 한 거고, 서울에 올라가면 방값과 생활비는 당연히 지불해야 할 것이므로. 응당 부모라면 그 정도는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나의 부모는 셋째 딸의 사연이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일 년 치는 말도 안 된다며 우선 한 달 치를 주고, 나머지는 벌어서 내든지 말든지 하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상식적으로 부모의 말이 틀린 것 같지 않았기에 나도 곧바로 수긍해 버렸다.

고향 순례 마지막 일정으로 나는 동호를 만났다. 이미 헤어질 각오로 만난 동호는 순진하게도 내가 서울에 가 있었던 일주일 동안 연락이 뜸했던 것에 대해 화를 냈다. 그 사이 내가 좋아하는 곱슬머리를 바짝 깎아 올리고 아디다스 맨투맨 티셔츠를 여전히 교복처럼 입고 있는 동호였다. 나는 이미 강남에서 동호보다 몇 배는 더 멋있는 남자들을 만났고, 그들과 나는 이제 곧 성공 가도를 달릴 것이다. 앞으로 동호 같은 남자들은 한 트럭은 만날 수 있을 거였다.

대학을 포기하고 다음 날 서울에 올라가야한다고 말했을 때, 동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탁자 위로 시선을 둔 채 한참을 멍하게 있던 동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박경숙! 그래도 사람은 대학을 나와야 해. 그냥 가까운 대학이라도 일단 들어가서 생각하면 안 돼?”

동호는 진짜 어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네가 다니는 대학? 거기 나와서 뭐 할 건데?”

나는 일부러 동호에게 상처를 줬다.

“너 서울 가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 취직? 도대체 네가 할 수 있는 게 뭔데? 어디를 다닌다는 거야? 혹시 다단계 같은데 끌려가는 거 아니야?”

나는 속으로 뜨끔했지만, 그때에도 다단계가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뭔가 켕기는 게 있었다.

나는 대뜸 동호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의외로 순순히 그러자고 대답하는 동호는 내게 마지막으로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다. 서울에 한 번 올라가면 쉽게 내려오지 못할 거고, 그러면 여기 바다가 그리울 거라며. 흐리멍덩한 물빛, 그 위로 거품처럼 이는 꾀죄죄한 파도, 그게 뭐가 그리울쏘냐 싶었지만, 나도 동호와의 마지막 순간을 어떤 식으로든 기념하고 싶었다.

바닷가는 지는 해로 온통 노랗고 붉었다. 고운 모래사장 위에 동호는 내 이름을 커다랗게 적어 넣었다. 동호의 못난 글씨를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훗날 나는 동호를 잃고 후회할까? 모래 위에 새겨진 내 이름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서울에 가서 나는 진짜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까?

동호와 나는 자연스럽게 바닷가의 여인숙으로 들어갔고, 동호와는 마지막으로 사랑을 했다. 따스한 이불속에서 맨몸으로 동호를 끌어안고 있자니 갑자기 서울에서의 일들이 꿈결처럼 아득하게 여겨졌다.

다음 날 기차역에서도 우리는 헤어지지 못하고 함께 기차를 탔다.

“다음에는 더 멋있어져서 만나자. 기다릴게.”

영등포역에서 헤어지며 동호가 말했다.

"그래, 기대해, 신동호!"

우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영원히 고향에서 나를 기다릴 것만 같았던 동호는 금세 외로워졌고, 함께 재수하던 다른 친구와 사귀기 시작했다. 나와도 친했던 아이였고 둘이 사귄다는 소식을 전했던 것도 그 아이였다. 동호에게 돌아갈 마음이 있었건 없었건 간에 나는 상처받았다. 사실 너무 충격적이어서 한동안 나는 동호를 내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노력했다. 서울 생활이 힘들 때마다 동호를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배신당했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았다. 동호도 그 친구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강남역에 마중 나온 윤미는 내가 내민 돈 봉투를 보고 크게 실망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곧 상부에 불려 가서 돈을 더 끌어모을 방법에 대한 분석과 연구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생활비와 방세 말고도 사야 할 것이 많다며 카탈로그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딱 봐도 고급스러운 남녀 정장, 금가루가 들어간 화장품 세트, 샴푸와 린스 같은 생필품들이 그득했다. 일하는 데 그런 것이 왜 필요한 것인지, 그 상품들이 일반 매장에서 파는 제품과 무엇이 다른 것인지, 나는 왜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그때의 나는 그들이 말하는 그 돈이 없으면 금방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던 성공의 대열에서 나만 열외가 될 것 같은 생각에만 안달이 나 있었다.

내가 생각해 낸 묘안은 서울에 사는 엄마의 유일한 부자 친척이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동생이며 몇 번 우리 가족을 서울로 초대해 주었던 작은할아버지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나는 그를 외작은할아버지라 불렀다. 무언가에 씌운 사람처럼 나는 대뜸 외작은할아버지를 찾아가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입학금이 없다는 핑계였다. 엄마에게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나는 이미 수없이 누적된 거짓말로, 거짓이 되레 진짜인 것처럼 생각되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할아버지는 정확히 내가 요구한 돈을 곧바로 송금해 주었고, 드디어 나는 본격적으로 일에 투입됐다. 부끄러웠지만 성공하기만 하면 그 몇 배를 되갚을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으므로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일이라는 게 문제였다.

나는 규칙적으로 하루 중 몇 시간을 공중전화부스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나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미가 내게 처음 전화를 걸었던 방식과 같았다. 먼저 그들의 안부를 묻고, 내가 하는 일을 거짓으로 말하고, 그토록 멋진 나를 보러 서울에 한번 올라오라는 내용. 상부의 멘토라는 사람이 전화기 옆에 서서 통화 내용을 정리하고 검열해 주었다. 뭔가가 불편하고 이상했다.

내가 상상했던 일은 결코 그런 일이 아니었다.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그들이 매일같이 공원이나 지하철 공중전화에 줄지어 서서 전화를 돌리는 일이라니. 세상에 그런 일도 있다니. 아침마다 씩씩하게 성공 구호를 외치고 간절히 서로의 성공을 빌어주던 그들이, 응당 명분에 합당한, 어떤 숭고한 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과만 생각했지 그 돈이 어떻게 벌린다는 것인지 전혀 상상해보지 않았다니. 그들은 당혹감에 쭈뼛거리는 나의 태도에 난감해했다. 설득도 필요 없이 끼어달라고 사정했던 내가 고작 그 정도라는 게 황당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그게 진짜 돈이 벌리는 구조라고 알았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돈방석에 앉을 그날을 고대하며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처음에는 정말 함께하고 싶은 친구들을 소환했다. 인생의 최고지에서 함께 샴페인을 터뜨릴 친구, 그러다가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어 보이는 친구로, 집이 부자인 친구로, 나중에는 그냥 시간이 되는 친구로, 목표는 점점 하향 설정되었다. 하지만 친구들 중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는 없었다. 한때의 나를 기억하고 서울까지 올라왔던 친구들은 먼저 나의 거짓말에 화를 냈고, 거꾸로 다단계를 욕하며 나의 탈출을 도와주겠다고 설득했고,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나가서 그냥 사라지거나, 대놓고 쌍욕을 하며 떠나갔다.

웃음거리가 되어 내가 고향 친구들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었을 때쯤에야 한 아이가 걸려들었다. 학교를 휴학하고 잠시 고향에 내려가 있다는 나연은 윤미도 잘 아는 고등학교 친구였다. 윤미도 나에 대한 기대를 접어갈 때였다.

"너 경숙이 맞아?"

나연이 영등포역에 마중 나온 나를 보고 말했다. 그때쯤 나는 매일 밤 취해서 잠이 들었고, 싸구려 음식들로 허한 마음을 마구마구 채운 덕에 살이 십 킬로그램은 불어 있었다.

내가 나연을 데리고 강남의 교육장에 나타나자 윤미는 다시 한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 윤미는 또 다른 고등학교 동창을 데려와 내게 처음 베풀었던 것처럼 갖은 애를 쓰는 중이었다. 이틀째 강의를 듣는 그 아이는 내내 똥 씹은 얼굴이었다. 내가 나연을 데리고 들어가자 그 아이는 나와 나연과 윤미를 한 번씩 훑어보고 짐을 싸기 시작했고, 강의실을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거꾸로 나연은 적극적이었다. 나연는 특이하게 처음부터 그 시스템이 다단계라는 걸 알았고, 다단계의 수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문제는 나연에게 돈 나올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나연은 나보다, 윤미보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나를 믿고 일을 해보겠다는 유일한 친구, 나연이라도 옆에 있어야 그곳에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아는가? 나연이 가진 인맥이 어떤 재물을 물어다 줄지?

나연이 짐을 싸서 서울에 올라온 날, 우리는 밤새 먹고 마시며 회포를 풀었다. 나연은 생각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나연의 아버지가 간암으로 위중하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나는 처음으로 죄책감을 느꼈다. 이미 그곳의 어두운 바닥을 본 이상 더는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나연아, 정말 미안해. 오늘 우리 둘이 여기서 도망치자. 사실 나는 여길 나가려고 했어. 너를 끌어들이고 이런 말하게 돼서 진짜 미안해.”

그러고 보니 갑자기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눈물을 흘리며 웅변을 하던 사람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늘 새로운 사람이 딱 그만큼씩 채워졌다.

이제 막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나연에게 도로 나가자고 하다니, 나연은 거꾸로 나를 붙잡았다. 그들의 성공 시나리오에 완전히 세뇌되었던 나연은 내가 없어도 자기는 남아서 꼭 돈을 많이 벌 거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나연의 혀는 꼬일 대로 꼬여있었다.

이튿날 나는 상부로 불려 갔다. 윤미의 윗사람의 윗사람, 그러니까 윤미를 끌어들인 사람을 끌어들인 어깨가 넓은 남자였다. 같은 합숙소에서 생활하던 나보다 다섯 살이 많았던 그 남자는 일대일 상담을 하자고 했다. 모두가 출근을 나간 빈 아파트 거실에서 그는 언제나처럼 앉은뱅이책상을 폈다. 그러고는 성공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시작했고, 내 가족 스토리를 끌어들이며 응당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강조했다.

나는 이미 마음이 그곳을 떠나 있었고, 입 언저리에 거품을 물고 열변을 토하는 그를 한심하게 여기고 있었다. 눈치를 챈 것인지, 내가 흔들릴 것 같지 않아 답답해졌는지, 그는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꿀꺽꿀꺽 마셨다. 나에게도 한 캔을 따서 권했다.

나는 최대한 점잖게 그곳을 나오고 싶었다. 윤미가 꾸준히 활동한 덕에 그곳에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몇 명 더 있었고, 서로가 모두 돈으로 조금씩 얽혀 있었다. 그는 내 마음을 잘 안다면서 자꾸만 술을 권했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자신의 처지를 동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내가 이해받았다는 느낌에 안도하고 있을 때 그의 툭 튀어나온 입술이 내 입술을 덮었고, 축축하고 더러운 벌레 같은 그의 혀가 내 목구멍까지 들어왔다. 나는 있는 힘껏 몸을 뒤틀었고, 그는 더 거칠게 나를 끌어안으며 급기야 오징어 과자를 집어 먹던 손을 내 바지 속에 넣었다. 동시에 나는 벌떡 일어나서 그를 밀쳤고, 그 방을 미친 듯이 뛰쳐나왔다.

신발도 신지 않은 내가 아파트 밖으로 튀어나왔을 때, 마침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같은 합숙소에 생활하는 기린오빠였다. 오빠는 회사에서도 합숙소에서도 내가 의지하고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회사 내에서 공식적인 연애는 금지되어 있었지만, 젊은 청년들이 바글바글한 그곳에서 비밀스러운 일들은 꾸준히 일어났다. 서울에 자취방이 있던 오빠는 그때쯤 의욕을 잃고 회사에 나오다 말다 하고 있었는데, 내가 걱정이 돼서 기다리는 중이었다고 했다. 나를 보자마자 오빠는 상황을 이해했고, 무슨 첩보 작전이라도 수행하듯 나를 그곳에서 재빨리 피신시켰다.

그날 나는 오빠의 자취방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고, 기린 오빠는 한낮에 아무도 없는 아파트로 돌아가서 내 짐도 모두 가져다주었다. 또다시 원점이었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를 도와줬다고 오빠가 혼자 사는 자취방에 얹혀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빠의 사정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오빠 역시 지방에서 올라온 가난한 휴학생에 불과했다. 오빠는 다음 학기에 복학할 거라고 했다. 나는 복학할 학교가 있는, 그것도 서울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기린 오빠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생각나는 사람은 역시 가족밖에 없었다. 마침 나의 부모는 무리하게 농사 채를 늘려가다가 은행 빚을 갚지 못하고 산간벽지 타지로 도피한 상태였다. 만약에 나의 부모가 그때까지 고향을 지키고 있었다면 나는 결코 그들에게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기린 오빠는 기차역까지 나를 바래다주었다. 하룻밤이었지만 오빠는 내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고, 내가 진정하고 쉴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었다. 마음으로 좋아하는 사이였어도,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며 존칭을 쓰는 사이였던 것이 함부로 가까워지지 못하게 했다.

“한 번 갈게요. 가서 부모님 잘 풀어드리고, 안정되면 한 번 초대해 줘요.”

기린 오빠가 말했다. 헤어지면서 우리는 마치 곧 이산가족이 될 오누이처럼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삼 개월도 더 지나 내가 가 있던 산간벽지로 기린 오빠가 딱 한 번 찾아왔었다. 기차역에서 오빠를 기다리며 나는 잔뜩 기대했다. 만약에 기린 오빠가 정말 멋지게 짠하고 나타난다면, 나는 오빠와 정식으로 사귀고 싶었다. 하지만 기차에서 내린 오빠는 더 말라 있었고 그래서인지 가뜩이나 큰 키가 더 커 보였다.

우리는 가까운 호프집에 들어가 요기 겸 술을 마셨다. 오빠는 여전히 복학하지 않았고,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낸다고 했다. 더는 존칭을 쓰지 않는 오빠는 마치 오래된 연인을 다시 만난 것처럼 나를 애틋하게 대했다. 스킨십도 서슴없이 시도했다. 오빠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었지만 그렇게 매력 없는 오빠의 애인이 되기는 싫었다. 하지만 기차를 타고 일부러 먼 길을 찾아온 오빠를 매몰차게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맥주를 마시고 노래방도 가며 시간을 보내던 우리는, 밤 열두 시쯤 기차역 근처 숙소 앞에서 헤어졌다. 다음 날 새벽 기차로 다시 서울에 가야 하는 오빠는 함께 자고 싶은 눈치가 역력했지만, 내게는 엄한 아버지라는 좋은 핑계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무능한 아버지도 쓸모 있을 때가 있었다. 순진한 기린 오빠는 끝내 나를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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