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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

by 소란

태평시에서의 첫 밤, 나는 경호 오빠의 집에서 잤다. 아버지는 담배를 한 대 더 피우고 오빠의 어깨를 한번 두드리고는 차에 올랐다. 무슨 생각으로 다 큰 딸을 장성한 남자 조카에게 넘기고 그냥 가버릴까 싶었지만, 나는 차라리 아버지가 빨리 가버렸으면 했다. 조카에게 밥 한번 제대로 사주지 못하는 아버지의 무능력함과 무뚝뚝함이 민망해서였다.

거대한 짐 보따리를 든 나는 오빠를 따라 컨테이너로 만든 식당에 들어갔다. 학교 주변이 온통 공사판이어서 비슷한 모양의 허름한 식당이 군데군데에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오빠에게 순대국밥을 얻어먹었다. 새빨갛게 매운 양념이 가미된 순대국밥은 처음이었다. 짜고 맵고 뜨거운 그 국물을 몇 숟가락 입에 넣고 나니 그제야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국밥 한 그릇을 후딱 먹어 치운 나는 오빠를 따라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오빠의 아파트로 향했다. 오빠의 손에는 맥주와 과자, 라면 같은 것들로 채워진 봉지가 버스럭거렸다. 뭔가가 불편하고 기분이 묘했지만, 나는 오빠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자주 웃어 주었다. 약간 덜떨어진 아이처럼.

오빠의 집, 정확히 오빠의 방은 혼자 살기에는 넉넉한 아파트였지만 방이 하나였다. 바깥이 곧 어둑어둑해졌고, 방바닥에 상도 펴지 않은 채 퍼질러 앉아서 오빠와 단둘이 주전부리하면서 나는 오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어색함을 달래줄 텔레비전도 없는 방이었다. 오빠는 내게 맥주를 마실 줄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맥주를 한 트럭은 먹을 수 있고 담배도 피울 줄 안다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나는 숨이 막힐 듯 갑갑증을 느꼈고, 오빠 눈치를 보며 맥주를 홀짝였다. 그러면서 수시로 시계를 곁눈질하며 어서 잠잘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오빠는 조용히 맥주를 마시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에게 미리 내 전과를 들었을 게 뻔했지만, 오빠는 고맙게도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혼잣말처럼 내 모습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며 말끝을 얼버무렸을 뿐이었다. 내가 맥주를 홀짝이기보다 하품을 더 자주 할 때쯤 오빠는 인제 그만 자자고 말했다. 침대도 없는 방에서 나는 오빠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이불을 깔고 누웠다. 다행히도 금세 잠이 쏟아졌다.

이튿날 오빠는 새벽같이 연구실로 나갔다. 나는 오빠가 준비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자는 척 누워있었다. 오빠의 배려와 노력으로 나는 별 탈 없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오빠 집에서 지낸 지 일주일이 못 되어 달방을 얻어 오빠로부터 독립했다.

전봇대에 지저분하게 붙어 있던 전화번호 중 하나였다. 전화를 받은 주인 할머니는 농가의 빈방을 내놓는 거라며 보증금 없이 한 달에 십사만 원만 달라고 했다. 학교 후문 쪽은 거의 다 농토여서 여기저기 빈방이 많았다. 오빠는 초라한 방을 구해 나가겠다는 사촌 동생이 불쌍했는지 짐을 날라다 주며 자꾸만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런 경호 오빠가 진짜 나의 친오빠였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힘든 일이 있으면 연락해.”

오빠는 짐을 건네주며 말했다.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오빠를 찾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뭐든 자기 상처와 치부를 너무 깊이 알고 있는 사람과는 불편한 법이니까. 새롭게 주어진 삶에서 가면을 바꿔 쓸 차례였다. 실제로 그날 이후로 오빠와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오빠는 그 후로 일 년이 못 되어 연구소 일을 그만두고 대도시로 나갔다.

학과 수업은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고등학교 국어 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식과 내용이었다. 달라진 거라고는 남자아이들이 군데군데 앉아 있다는 것.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아이들 틈바구니에서 견뎌내는 게 내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 같았다. 가장 큰 난관은 정해진 수업 시간 외에 주어지는 무한한 자유였다. 한 달 전부터 이미 학교에 다닌 아이들은 벌써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녔고, 이미 그들만의 세상이 존재하는 듯했다. 더는 설거지를 하지 않는 나의 육체는 갈 길을 몰라 난감해했다. 어디서든 위치 설정을 해야 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지만, 그 누구도 나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얼굴도 눈동자도 말간 아이들은 나이 많은 학생인 내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수업이 빌 때마다 자취방에 돌아가 멍하니 누워있었다. 눅눅한 방 안에서는 주인 할머니의 냄새가 났다. 인생의 단맛을 진즉에 잊은, 쇠락의 길만이 남은 사람의 냄새. 학교 앞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전까지 가난한 학생들을 차례로 품었던 방. 나는 가만히 누워 그곳을 거쳐 갔을 수많은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그들이 사회에 나가서 당당히 제 밥벌이를 하고 있을지 못내 궁금해졌다. 학교 주변에 새로운 건물이 계속 지어지는 것으로 보아 내가 그 방의 마지막 자취생이 될지도 몰랐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스르르 잠이 몰려왔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홀로 잠이 깰 때면 거기가 산간벽지 부모의 집인지, 서울의 합숙소인지, 고향 집인지 헷갈리곤 했다. 그러다가 나는 처음으로 완전한 혼자가 되었다고 느꼈다. 그건 생각보다 자유롭지도 홀가분하지도 않은 지독히 쓸쓸한 감정이었다.

며칠 사이 나는 학과의 아이들을 눈으로 머릿속으로 열심히 익혔다. 어떤 아이와 말을 섞을 수 있을지 나는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나와 나이가 같은 여학생이 한 명, 나보다 세 살이 많은 남학생이 한 명, 한 살이 어린 여학생이 두 명이나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기구한 사연이 있는 얼굴들이었다. 그 사이사이로 모델처럼 제법 잘생긴 아이, 어떻게든 튀고 싶어 말이 많은 아이, 지나치게 수줍음이 많은 아이, 빈정거리며 거드름을 피우는 아이. 변방의 국립 대학교 미달 학과에 입학할 수밖에 없었던 스무 살 언저리의 아이들이 포진해 있었다. 저마다 한 번씩은 날개가 꺾였던 그 아이들은 모두 달랐지만, 희미한 패배자의 표정만은 비슷했다. 나는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그 틈새를 찾아 킁킁거렸다.

그들 사이에 은경이 있었다. 긴 생머리에 희고 동그란 얼굴, 그 안에 이목구비가 균형 있게 자리한 아이, 은경이 내게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언니, 학교 다닐 만해요?”

처음부터 나를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는 은경은 나보다 한 살이 어렸다. 은경 역시도 학교에 마음 둘 곳이 없어서 방황하는 중이라고 했다.

은경과 나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재수 경험이 있다는 것, 여자 형제가 많다는 것, 아버지가 무능력자에 고주망태라는 것. 대신 은경은 태평시의 토박이라서 여러모로 나보다 안정적으로 보였다. 특히 부모가 있는 집에서 학교에 다닌다는 건 엄청난 특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은경은 예뻤다.

여자아이들이 많은 학과에서 인기가 있으려면 우선 예뻐야 했다. 은경은 옷을 잘 입었고 화장 기술에 연륜이 보였다. 분홍 티셔츠를 입을 때는 분홍색 아이섀도를, 하늘색 블라우스를 입을 때는 하늘색 아이섀도를 바르는 식이었다. 나는 갓 알을 깨치고 나온 오리처럼 열심히 은경을 따라다녔고 은경이 하는 모든 것을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

학과 왕언니들의 조합에 아이들은 드디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둘의 조합이 가장 빛을 발할 때는 역시 해 질 무렵이었다. 우리는 초저녁부터 아무 술집이고 주저앉아서 싼 안주를 앞에 두고 술을 마셨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마시고 나의 자취방에서 며칠 밤을 보낸 우리는 세상 그 무엇도 갈라놓지 못할 사이처럼 붙어 다녔다. 아직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과의 여자아이들은 우리 사이에 끼어 술 한 잔을 얻어먹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고, 툭하면 서로 삐치고 조합도 들쑥날쑥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나는 그런 아이들의 수장이 되어있었다.

학과에 막 적응했을 때쯤 나는 도서관 앞에서 고등학교 동창 수현을 만났다. 수현과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짝꿍으로 만나 한동안 붙어 있었지만, 끝이 좋지 않았다. 수현은 매사가 조심스럽고 예민한 편이었고 나는 실수가 잦고 덤벙거리는 성격이었다. 수현은 그런 나에게 잔소리하는 걸 좋아했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기며 까탈스러운 수현을 받아주었었다. 우리가 한창 가까워졌을 때 수현은 내가 다른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걸 견디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멀어졌고, 삼 학년이 되어서는 각자 전혀 다른 친구들과 어울렸다. 수현이 나의 과거, 다단계 사건을 모르는 이유였다.

수현은 수현대로 살찐 나를 못 알아볼 뻔했고, 나는 나대로 파마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수현을 지나칠 뻔했다. 하지만 익숙한 그 눈빛과 표정만은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것이었다. 사회복지를 전공한다는 수현은 이미 3학년이었고, 옆에는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수현은 눈에 띄는 미인이라고 하긴 어려웠지만, 다시 보니 오목조목 귀여운 얼굴이었다. 작은 키에 볼륨감 있는 몸매, 나는 수현을 은밀하게 훑어봤다. 더군다나 옆에 든든한 애인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늘 책상에서 뭔가를 열심히 풀던 수현도 고작 여기에 와 있다는 생각에 연민이 느껴졌다.

“나는 네가 뭐라도 될 줄 알았어. 너 연극영화과에 간다고 하지 않았었나?”

수현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나를 보자마자 내뱉었다. 주 양육자가 할머니였던 수현은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을 에둘러하지 않았다.

“그러게, 그것도 이제 1학년.”

나는 웃으면서 대꾸했지만, 수현의 말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내가 뭐라도 될 줄 알았던 건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요란스럽게 열심히 나댔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는 빈 수레 같은 아이라니. 나는 정곡을 찔렸고 다시 상처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때 너무 외로웠고 수현이 필요했다. 마침 수현은 나의 방과 멀지 않은 곳에 자취방이 있었고, 그곳에서도 언제나 애인과 함께였다. 그들은 곧 결혼할 사이라고 했다. 결혼이라니. 수현을 통해 비로소 나는 내 나이를 실감했다. 누군가를 만나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나이가 되다니. 대학에서 자연스럽게 배우자감을 만나게 되다니. 나는 그토록 여성스럽게, 어른스럽게 변한 수현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수현의 애인 덕분에 나는 예비역 선배들과 자연스럽게 합석할 기회를 얻었다. 이십 대 중후반의 그들은 저녁 무렵이면 늘 술판을 벌였고, 수현 커플 주변으로 가벼운 성적 농담들을 주고받았다. 순진한 표정의 과 아이들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수현처럼 밤마다 함께 지낼, 혈혈단신 타지에서 나를 지켜줄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자주 몸을 꼬았다. 그 틈으로 접근한 사람은 인주 오빠였다.

인주 오빠는 일 년 후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본가인 서울에 올라갈 거라고 했다. 자그마한 체구에 얼굴이 새하얀 인주 오빠는 정말 서울 사람 같았다. 서울에는 그의 오래된 연인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는데, 연인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랬는지 그는 함께 밤을 보낼 여자 친구가 필요했다. 수현과 애인 주변 사람들은 사정을 잘 알면서도 내가 얼마나 외로운가, 얼마나 불쌍한가를 생각하다가 결국 우리 둘을 엮어주려고 했다.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들 눈이 정확했다. 나야말로 기댈 곳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나는 밤마다 들고양이처럼 초라한 농가를 벗어나 인주 오빠의 세련된 원룸으로 파고들었다. 오빠와 나는 밤마다 취해서 서로를 끌어안았다. 서로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온기가 필요해서 나누는 섹스는 언제나 미적지근했다. 우리는 섹스 후에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처럼 금방 서먹해지곤 했다.

찝찝한 연애와 동시에 나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의 부모는 처음부터 등록금 외에는 한 푼도 내어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었다. 당장에 일을 시작해야 했다. 학교에는 공식적인 문이 두 개가 있었는데 자취방이 있는 쪽은 후문으로 그쪽으로 나가면 야산과 농가들이 나왔다. 번화가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일손이 필요한 곳은 학교 정문 앞 아파트 근처였다. 마음이 급했던 나는 은경과 마주 앉아서 구직 신문을 뒤적였다. 은경도 고등학교 때부터 안 해본 일이 없는 아르바이트 고수였다. 저녁에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술집이었고, 술집에서 스물두 살의 여대생은 환대받기 딱 좋은 인력이었다. 우리는 일은 쉽고 시급이 비싼 순으로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면접하러 간 가게에는 분명 카페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중년의 여자 사장은 은경과 나를 꼼꼼히 훑어봤다. 역시나 나보다 은경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얘는 그냥 같이 알아봐 주러 온 애예요. 일할 사람은 저예요.”

기분이 나빠진 내가 말했고, 사장은 그제야 다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카페에서 일은 해봤어?”

나는 태평시에 오기 전의 이력을 부풀려서 사장에게 어필했다. 사장은 미심쩍은 얼굴이었다.

“당장에 입을 옷은 있니? 정장 비슷한?”

나는 그때 청바지에 흰 블라우스 차림이었다.

“네. 옷을 갈아입고 올게요.”

나는 비키니 옷장 속의 초라한 옷가지를 떠올렸다.

“되도록 검은색으로 입고 와라. 출근은 일곱 시까지야.”

나는 은경에게 검은색 카디건을 빌려 입고 출근했다.

카페에는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한 명 더 있었다. 짙은 화장에 배꼽이 훤히 보이고 몸에 딱 붙는 검은 니트옷을 걸친 그 아이는 연예인처럼 예뻤다. 아이는 일부러 그러는 건지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렸다.

나는 사장을 돕기 위해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특별한 인테리어도, 창문도 없는 이런 시골 카페에 누가 차를 마시러 온다는 건지, 의구심이 들던 찰나에 장년의 남자 세 명이 카페로 들어왔다. 금방 경운기에서 내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촌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나를 흘끔 보더니 사장에게 새로 온 애냐고 물었다. 나는 그들에게 물을 가져다주었다.

남자들은 나를 본체만체하며 여자아이에게만 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제야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버드와이저 네 병을 들고 그들 자리에 합석했다. 아이는 누가 봐도 아버지 벌인 그들에게 오빠라고 불렀다. 그들은 단골손님인지 사장은 메뉴도 묻지 않고 돈가스와 한치구이를 안주로 준비했다. 나도 주방에서 사장을 도왔다. 우리가 일하는 동안 아이는 그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내가 한치구이를 가져갔을 때 그들 중 한 남자가 아이의 윗도리를 들쳤다. 아이의 새하얗고 봉긋한 가슴이 드러났다. 남자들은 낄낄거렸다. 여자아이도 깔깔 웃었다. 그들은 내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아이의 하얀 가슴을 주무르는 새까만 손을 보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탁자에 안주를 내려놓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의 새까만 손이 뒤에서 따라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전력을 다해 뛰었다.

카페를 도망 나와 내가 제대로 시작한 일은 포장마차였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있던 그곳도 시급이 셌다. 제법 손님도 많았는데, 포장마차의 이름은 ‘게놈 프로젝트’였다. 유전자 복제 기술이 전국적으로 파문을 일으키던 때였다. 사장은 포장마차 천막에 커다랗게 간판을 써놓고 말끝마다 “이 개놈아!” 하며 실없이 웃는 사람이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전혀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사장은 손님이 뜸한 틈마다 술을 마시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마치 자신이 술을 마시기 위해 하는 장사 같았다. 넙죽넙죽 술을 받아먹은 나도 언제나 반쯤은 취한 상태였다. 술에 취해, 사장의 노래에 취해, 몽롱한 상태로, 나는 오랜만에 설거지에 심취했다. 여느 포장마차처럼 좀 더럽고 비싼 술집이었지만, 막차까지 찰지게 달린 취객들의 난동이 빈번했지만, 그때마다 포장마차는 휘청휘청했지만, 나는 그 일이 싫지 않았다.

나에게는 이제 ‘순결한 한 가지’가 있으니까, 어차피 나는 제로에서 다시 출발한 거니까, 정말 많은 것이 다 괜찮았다. 나는 망가진 옷을 한 땀 한 땀 수선하는 심정으로 나를 다독여 나갔다. 나는 좋아질 것이다. 나는 나아질 것이다. 나는 결국 이곳을 벗어날 것이다. 생각하는 사이 첫여름방학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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