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년 새 학기는 모든 게 다 설레는 시기였다. 태평시의 꽃샘추위는 매서웠지만 아이들의 옷차림에는 일찍부터 파스텔 빛이 돌았다. 학과에는 한참 더 어리게만 보이는 신입생들이 들어왔고, 2학년이 된 동기들은 제법 어른스러워진 모습으로 다시 강의실에 모여들었다.
나는 겨울 방학을 이용해 다이어트에 성공했고, 때마침 첫 직장에 들어간 큰언니 덕분에 새 옷을 몇 벌 얻어 입은 상태였다. 곧 피어난 교정의 탐스러운 목련과 벚꽃은 스물세 살이 된 나를 위한 헌사였고, 나는 내게 주어진 싱싱한 젊음을, 무사히 새 학년이 된 기쁨을 만끽했다. 자신감 넘치는 내 옆에는 언제나 은경과 윤석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에너지가 나에게로 손을 뻗치고 있었던 그때, 나에게 주는 세상의 선물은 하나 더 있었다. 그건 현대문학을 가르치는 주순탁 교수와의 만남이었다. 오뚝한 콧날 위에 걸린 뿔테 안경, 그 너머로 보이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 그는 다른 것보다 목소리가 특별히 좋았다. 또랑또랑하면서 정감있는 말투로 그는 언제나 꼭 필요한 말만을 골라서 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그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다 소중했다. 심지어 그는 나만의 작가, 이미란 작가를 발굴한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드디어 닮고 싶은 사람, 인정받고 싶은 어른을 만난 것이다. 강의 시간 내내 나는 주 교수의 말을 거의 그대로 받아 적었고, 집에 와서는 몇 번이고 그것을 되풀이해 읽었다. 그의 말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가 보여주는 신세계를 진지하게 열어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곳의 성벽은 높았고, 두터웠고, 가파른 것처럼 보였다. 성벽 사이로 잠시 뭔가가 보였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그가 거칠게 이야기한 암호 같은 이야기들은 온종일 도서관에 앉아서 따라가기에도 벅찬 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업 시간이면 여전히 그의 말투, 눈빛, 뉘앙스를 해독하려고 안간힘을 썼고, 자주 열등감을 느꼈다.
우리 과에는 나 말고도 그런 아이가 한 명 더 있었다. 나처럼 선망과 애정의 눈초리로 주 교수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는 경서였다. 경서는 어려서부터 읽은 책이 꽤 많았고 글도 유려하게 잘 썼다. 언제나 생글생글 잘 웃는 아이, 키가 작고 눈이 커다래서 야무지고 사랑스러워보이는 경서는 남자 동기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반면에 여자 동기들에게는 미움의 대상이었다.
나에게 먼저 호기심을 보인 건 경서였다. 경서는 언제나 나를 지켜봐 왔던 것처럼 나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고, 친해진 뒤로는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은경에게 미안할 정도로 두 살 어린 경서와 나는 말이 잘 통했다. 경서의 등장에 은경은 예민하게 굴었다. 셋이 잘 좀 지내면 어떨까 싶었지만, 전공 과목 공부를 마치 고등학교 국어 과목인 양 듣는 은경과 경서는 결이 완전히 달랐다. 그래도 경서는 어떻게든 은경과 나 사이에 파고들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은경은 결코 틈을 주지 않았다.
“너는 경서가 왜 그렇게 싫어?”
어느 술자리에선가 내가 은경에게 물었다.
“걔는 좀 가식적인 것 같아. 가식적인 상냥함? 아무튼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애야. 그리고 언니가 알아야 할 게 있는데, 경서는 나랑 둘이 있을 때는 온도가 완전히 달라. 엄청 싸늘해. 그리고 언니가 오잖아? 그럼 다시 헤헤거린다니까. 걔 약간 소름 끼치는 캐릭터야. 으윽…….”
은경이 진저리를 쳤다.
“그래?”
“언니는 귀엽다고 하는데, 언니도 나중에 걔 때문에 크게 뒤통수 맞을 일 있을 거다. 내가 장담해.”
나도 경서의 그런 가식적인 면을 보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절대로 자기 것을 다 드러내지 않겠다는 태도, 그 아이의 어떤 표정에는 언제까지나 그 아이의 가면만을 보게 될 것 같은 섬뜩함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경서의 그런 어두운 구석이 싫지 않았다. 내가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그건 경서가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언니는 경서가 왜 좋아?”
“그냥, 귀엽잖아. 공부도 열심히 하고, 나와 꿈이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언니 꿈이 뭔데?”
“내가 돈 벌고 연애하느라 자꾸 까먹는데, 나 실은 작가가 되고 싶어. 나도 이미란 작가처럼, 내가 느끼는 걸 글로 표현해 보고 싶어.”
“언니는 여자가 뭐가 그리 야망이 커? 작가는 아무나 되나?”
은경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경서 때문에 은경의 마음이 예민해졌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나는 은경을 마음속으로 정리했다. 나중에 은경과 내가 아주 멀어졌을 때 은경은 울며불며 말했다. 왜 자기가 아니고 경서냐고. 나는 그때도 내 진심을 다 얘기하지 못했다.
함께 먹고 자고 아주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공유하게 되는 윤석과의 동거 생활은 꽤 즐거웠다. 우리는 세상에 우리 둘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낮이고 밤이고 부둥켜안고 서로의 구석구석을 읽어갔다. 먼 훗날에 누군가와 결혼하게 된다면 이런 모습이리라 상상하면서 나는 내게 찾아온 행복에 겨워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윤석은 여전히 우리의 동거를 비밀로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우리의 보금자리는 금세 들통이 났다. 매일 같이 붙어 다니는 동아리 아이들과 과 동기들은 처음에는 당황해했지만 대체로 어른스럽게 받아들였다. 나중에는 그들도 일인용 침대와 작은 식탁과 의자 두 개가 전부인 여덟 평짜리 우리의 보금자리에 수시로 들락거렸다. 아이들은 우리의 관계를 신기해하면서 재미있어했다.
원룸 앞 연못의 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절정에 달했던 어느 밤, 과 친구들과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신 윤석이 우리의 방으로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원룸의 작은 창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취한 윤석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걸어오고 있었다. 멀리서도 듬직해 보이는 커다란 그림자에게서 윤도현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음정도 박자도 엉망이었지만 음색이 맑았다. 윤석은 노래를 잘하지 못했지만, 평소 노래방에 가는 걸 좋아했다. 그때마다 윤석은 늘 같은 노래, 윤도현의 노래와 이문세의 노래 두세 곡을 부르고는 가만히 내 노래를 들어주었다. 나는 온몸으로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 밤 나는 점점 가까워지는 윤석의 노래를 들으며 내 생에 드문 일이 일어났다고, 오래도록 그 순간을 기억하자고 생각했다.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윤석을 원망했다. 이제 겨우 태평시에 적응하고 가슴속에 ‘순결한 한 가지’를 품기 시작했는데, 이대로 윤석과 아이를 낳아 키우며 살게 된다면, 그런 결심을 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윤석은 나보다 더 불안해 보였다. 처음부터 바랄 수 없는 문제였다. 당장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였고 누구의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윤석은 내게 지나가는 사람인 거지, 미래를 담보로 정착할 사람이 아니었다.
태평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버릴 작정이었다. 성에 차지 않았다. 태평대 졸업이라는 사건은 어디까지나 내가 가야 할 곳, 마땅히 내가 당도해야 할 곳에 가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까지 내가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는 다시 은경에게 기댔다. 어쩐 일인지 나는 그 문제를 경서에겐 털어놓지 못했다. 경서는 한없이 어리게만 보였고 여러모로 경험치가 부족했다. 은경은 당장 태평시에 있는 모든 산부인과의 목록을 가져다주었다. 그런 은경이 윤석보다 몇 배는 더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임신중절을 해주는 병원은 흔치 않았다. 돈도 문제였다. 윤석은 사방으로 돈을 빌리고 있었다. 사랑과 행복의 상징과도 같았던 우리의 보금자리가 갑자기 쓰레기통처럼 보였다. 어떻게 마련한 돈인지 돈 봉투를 내미는 윤석의 얼굴은 비굴하게만 보였다.
윤석과 나는 젊은 부부인 것처럼 연기하며 병원에 들어갔지만 어설프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여자 의사는 많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이게 아이 낳는 거나 똑같은 수술이에요, 학생. 앞으로 몸 잘 챙겨요.”
그녀의 말에 나는 겨우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수술은 간단했다. 잠깐 자고 일어났더니 이미 모든 게 끝나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품었던, 윤석과 나를 반반씩 닮았을 아기가 죽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정말이지 너무도 말짱했다.
입고 왔던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커다란 분홍색 장미 한 다발을 든 윤석과 은경이 나란히 서 있었다. 장미를 보자 속이 울렁거렸다. 장미 다발 속에는 윤석이 선물한 금귀고리가 들어 있었다. 하트 귀걸이 속에 자그맣게 빛나는 큐빅으로, 그렇게 나의 첫아이는 응고되었다. 그날 윤석과 나는 미역과 전복이 들어간 죽을 사 먹고 원룸에 들어가 종일 잠을 잤다. 더는 누워있을 수 없을 때까지. 이후로 윤석과 나는 서로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의식적으로 서로를 피했다.
오랜만에 다시 동아리방에 들렀을 때, 막 군대에서 제대했다는 승준 오빠가 거기 있었다. 특전사 출신이라는 그는 선배 중에서도 나이가 제일 많았고, 곱상한 얼굴에 키가 크고 몸이 다부졌다. 선배들은 그를 깍듯하게 대했다. 그 후로도 승준 오빠는 동아리방에 자주 나와서 후배들에게 테니스를 가르쳐 주었다.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은 편이었던 그는 운동할 때만큼은 마치 운동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몸을 날렵하게 움직였다. 반전 매력을 가진 승준 오빠에게 여자 후배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승준 오빠의 복귀 파티가 있던 날. 그는 차분하게 대화를 이끄는 반면 거침없이 소주를 마셨고, 독특하게도 후배 한 명 한 명에게 철저히 존댓말로 응수했다. 유치하지 않음, 어른스러움 같은 것들이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윤석은 여러모로 승준 오빠에 비하면 어린아이 같았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어리숙함을 뜻했고, 나는 누구보다 어리숙한 나를 싫어했기 때문에 승준 오빠의 등장은 다분히 문제적이었다.
당시 나는 시내에 있는 경양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은 승준 오빠가 혼자 손님으로 찾아왔다. 오빠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식당에서 제일 비싼 세트 요리를 시켰다. 몸매가 다 드러난 검은색 투피스 유니폼은 나를 더욱 성숙하게 보이게 했을 것이다. 나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섞인 마음으로 심부름을 하다가 그의 앞에 털석 앉았다.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그냥, 한번 보고 싶었어. 경숙이가 어떤 일 하는지.”
나는 부끄러워서 말을 잇지 못했다. 승준 오빠는 분명 내게 호감이 있었다. 오빠는 같이 앉아서 식사하자고 했지만, 식당에서 종업원이 손님과 같이 식사하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마침 부주방장으로 일하는 레스토랑 사장이 한창 한번 사귀자고 장난을 치던 때였다.
까까머리에 블룩 나온 배, 굵은 목에 금 체인을 두른 전형적인 깡패 인상의 레스토랑 사장은, 자기한테 오기만 하면 학교며 집이며 걱정 없이 살게 해 주겠다고 늘 장난처럼 말하곤 했다. 실제로 사장과의 열애를 상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시골구석에서 레스토랑이나 하며 늙은 사장의 애인으로 산다는 건, 농공단지에 다닐 때로부터, 동해의 바닷가에서 섣불리 정착하려던 그때로부터, 한 치도 진보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승준 오빠의 등장에 사장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그것도 모르고 승준 오빠는 맥주를 홀짝이며 내가 일을 마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렸다.
“경숙아, 이제 일하지 마. 공부해야지.”
일을 마치고 내가 밖으로 나오자, 승준 오빠가 말했다.
“오빠가 알고 있는 것보다 나는 진짜 많이 가난해요.”
나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말했다. 왠지 오빠에겐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당장 그만둬. 윤석이 집에서도 나오고. 등록금까지는 어렵겠지만 생활비 정도는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오빠의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아주 가볍게 윤석을 정리했다. 잔인하게도 나는 윤석에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해버렸다. 윤석의 황망한 얼굴을 뒤로하고 나는 짐을 쌌다.
“내가 미안해. 너를 잡지 못해서 미안해. 그 자식만큼 매력적이지 않아서……능력이 없어서 미안해. 잊지 못할 거야. 앞으로 나는 너만큼 좋은 사람, 만나지 못할 거야……. 잘 가.”
내 뒤통수에 대고 윤석이 울먹이며 말했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말을 하는 건지 그 땐 몰랐다. 마음이 아팠지만, 나는 윤석을 떠나는 연인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바보라고 생각했다.
나는 더 이상 동아리에 나가지 않았다. 승준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학교에서 동아리 사람들을 마주치면 우리는 피해버렸다. 그들도 일부러 우리를 아는 척하지 않았다. 학과에도 순식간에 소문이 퍼졌다. 내가 바람을 피워 오래된 연인을 무참히 차버렸으며, 동아리 선배와 동거한다는 소문과 임신을 했다는 소문, 곧 결혼하게 된다는 소문까지 무성했다. 나는 일일이 해명할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그저 그 많은 소문에 윤석이 심하게 다치지 않기만을 바랐다.
오빠의 원룸은 평수가 넓어서 둘이 지내기에 좁지 않았다. 나만큼이나 가난한 집에서 자란 오빠는 특전사를 선택해 먼 타국까지 파병을 갔다 왔다고 했다. 오빠가 가진 얼마의 돈은 그 대가였다. 오빠는 오빠답게 자기가 한 약속을 지켰다. 생활비는 물론이고 주말마다 데이트 비용에 내게 간혹 저렴하고 예쁜 옷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생활비 걱정이 없어지자, 나는 드디어 학과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오빠는 진짜 나의 친오빠라도 되는 것처럼 집에서도 도서관에서도 기꺼이 나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주었다.
승준 오빠와 만나면서 윤석과 친한 은경과는 점점 멀어졌고, 경서와는 가까워졌다. 그러다 보니 나와 경서와 승준 오빠 셋이 원룸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우리 셋은 죽이 잘 맞았다. 경서와 내가 늘 여기가 아닌 저기, 미래의 우리 모습에 대한 풍선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걸 승준 오빠는 가만히 듣는 걸 좋아했다.
승준 오빠는 생각보다 더 조용한 성격이었다. 그동안 내가 윤석과 함께, 동아리 아이들과 함께 늘 떠들썩한 상태였다면, 오빠와는 조용히 비밀스럽게 지냈다. 오빠의 몇 안 되는 친구들은 이미 반은 사회인이었다. 여자 동기들은 이미 졸업해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남자 동기들은 일과 공부를 병행하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에게는 벌써 인생의 반려자가 있었다. 나는 진짜 어른 같은 그들 사이에 철없는 동생처럼 끼어있는 게 싫지 않았다. 원래 제 나이의 내 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딱 한 번 오빠의 동기들과 오빠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오빠의 친척 누군가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남쪽 땅끝마을을 지나서 배를 타고도 한참 들어갔던 작은 섬, 그 섬에 있던 낡고 초라한 집. 그곳은 내가 태어났던 시골집과 거의 같았다. 인적 없는 산 중턱에 오롯이 홀로 있던 집. 담도 없던 집 마당에서 새벽마다 오 남매가 국민체조를 하던 곳. 밤나무와 돌무더기로 둘러싸인 그곳.
지긋지긋한 그 집과 헤어진 건 초등학교 삼 학년 여름방학이었다. 마을 안에 새집을 지어 이사한 날,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창문이 있고 거실이 있고 방이 세 개나 되는 집에서는 잔치가 벌어졌다. 사람들은 돼지머리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돼지 코에 만 원짜리 지폐를 쑤셔 넣었다. 그 모든 것이 빚잔치인 줄 모르던 그때, 우리 오 남매는 서로를 마주 보고 까르르까르르 웃기도 했었다.
섬 집에서 나는 오빠의 하나뿐인 형과 누나 세 명, 그리고 나이 든 어머니를 만났다. 오빠를 빼고는 다들 촌스럽고 가난한 티가 역력했다. 그들은 집안의 자랑이자 귀염둥이 막내의 애인인 나를 요모조모 뜯어보며 신기해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 집의 며느리로 들어와 있을 미래의 나를 상상했다. 그건 결코 내가 바라던 미래가 아니었다. 그제야 나는 너무 일찍, 섣불리 남의 집 경조사에 따라온 걸 후회했다.
어느 저녁, 오랜만에 은경의 연락을 받고 나갔을 때 은경은 윤석과 함께였다. 호프집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미 취해 있었다. 윤석은 곧 군대에 갈 거라고 했다. 가기 전에 한 번만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윤석과 나, 은경 세 사람은 진탕 술을 마셨다. 승준 오빠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거리낌 없이 우리가 예전처럼 웃고 떠들고 있을 때 호프집 안으로 승준 오빠가 들어왔다. 누가 제보를 한 건지, 학교 앞이라서 지나가다 우연히 들른 건지 모를 일이었다. 오빠는 잠시 우리 셋을 쳐다보더니 내 앞자리에 턱 하고 앉았다.
“너 지금 똑바로 말해. 나야, 이 자식이야?”
승준 오빠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미안해, 오빠…….”
내가 말을 채 맺기도 전에 오빠의 크고 두툼한 손이 내 얼굴로 날아왔다. 호프집 안의 모든 사람이 쳐다볼 정도의 세기였다. 은경과 윤석이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오빠는 이미 문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는 얼얼해진 뺨을 붙들고 윤석을 한번 쳐다봤다. 윤석은 특유의 어리숙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오빠를 따라갔다. 오빠는 저만치 앞서서 걷고 있었다. 나는 목이 터져라 오빠를 부르며 따라갔다. 한참 씩씩거리며 걸어가던 오빠가 뒤돌아와 나를 안았다. 오빠는 벌겋게 부은 내 얼굴에 입술을 대고 계속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날 오빠와의 사랑은 뜨거웠다. 오빠의 태도는 윤석을 내게서 완전히 지우려는 것 같았다.
“다시는 그러지 마. 한 번만 더 윤석이 눈앞에 보이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오빠가 안타깝고 무서웠지만, 그 말을 내뱉는 오빠가 한없이 지질해 보이기도 했다.
정말이지 나는 천하의 바람둥이였다. 나는 승준 오빠 몰래 윤석을 몇 번 더 만났다. 윤석이 군대에 간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간절해졌다. 우리는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내 변화를 눈치챈 승준 오빠는 점점 더 미쳐갔다.
그날도 나는 윤석을 만나고 도둑고양이처럼 조심하며 원룸으로 들어갔다. 오빠는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살림을 부수기 시작했다. 밥통도 컴퓨터도 가볍게 뒤집혔다. 분에 못 이긴 오빠는 벽에 붙어 있는 간이 옷걸이를 무너뜨렸다. 그러고는 옷걸이 봉을 휘두르며 내게 옷을 벗으라고 했다. 오빠에게서는 술 냄새가 진동했다. 오빠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만취 상태로 다 큰 자식들 앞에서도 엄마 몸 위에 올라타던, 죽기 직전까지 엄마를 때리고, 잔뜩 주눅 든 엄마에게 잠자리까지 요구하던 아버지. 오빠는 알몸인 채로 벌벌 떠는 내게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이 씨발년아, 이 걸레 같은 년.”
오빠 말이 맞았다. 나는 줏대도 의리도 없는 미친년 꽃다발이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제발 때리지 말라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오빠 말을 듣겠다고. 그 밤 우리는 또 미친 듯이 엉겨 붙었다. 이상하게도 그런 날이면 나는 극도의 흥분을 경험했다. 이튿날 대낮에 퉁퉁 부은 눈으로 일어났을 때 곁에 오빠가 없었다. 새벽같이 도서관에 간 것 같았다. 나는 천장을 노려보며 그 방에서 도망치자고 결심했다. 오빠와 계속 그렇게 살다가는 둘 다 망가질 일만 남아 있었다.
윤석이 군대에 가는 날은 몹시도 추웠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기차로 두 시간을 달려 훈련소 앞까지 따라갔다. 기차 창문으로 성긴 눈발이 쉴 새 없이 들러붙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면서 계속 훌쩍거렸다. 무엇 때문에 눈물이 멈추지 않는 건지 나 스스로에게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훈련소 앞의 많은 사람 속으로 눈에 익은 사람들 무리가 보였다. 윤석의 가족들이었다. 나의 등장에 그들은 형식적인 안부를 물었다. 그날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윤석이었고, 아무도 우리의 미래에 대해 희망적이지 않은 것 같았다.
윤석은 나의 등장에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짧은 머리의 윤석을 대면하자 그제야 윤석과는 뭘 더 어찌할 수 없음을 나는 실감했다.
“편지할게.”
가족들의 눈치를 보던 윤석이 한 손으로 살짝 내 어깨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곧 윤석은 한 무리의 청년들과 운동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윤석은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윤석이 울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고만고만한 청년들 사이에서 윤석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때까지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폈을 때는 이미 그의 가족들도 모두 자리를 떠난 상태였다. 나는 나를 홀로 내버려 둔 그들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곧 겨울 방학이 시작됐고 나는 승준 오빠에게서 달아날 계획을 세웠다. 오빠에게 사실대로 얘기하면 사단이 날 것만 같았다. 이미 오빠의 밑바닥을 본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때 나의 부모는 이혼 후에 따로 살고 있었다. 은연중에 나는 늘 부모의 이혼을 소망해 왔었지만, 그들이 진짜로 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당시만 해도 이혼이라는 사건은 내게 먼 나라 이야기였다. 하지만 막상 엄마에게 그 소식을 들었던 때, 나는 먼저 엄마가 드디어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가난해서 며칠씩 굶기도 했었다는 엄마는 탈출구로 열 살이나 차이가 나는 아버지를 선택했고, 열아홉에 시골에 와서 아이 다섯을 내리 낳고 노예처럼 살았다. 엄마가 버릇처럼 말한 것처럼, 엄마 얘기를 하자면 대하소설로도 부족했다.
하지만 부모 밑에서 살던 한 시절이 영원히 끝나버렸다는 사실이 의외로 상처가 되었다. 서로에게 다정한 적이 거의 없었던 부모였지만, 그들은 삼십 년 가까이 함께 산 부부였다. 그들이 그렇게 무책임하게 서로를 밀어냈다면 자식인 우리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부모와 자식 간에는 그들의 이혼과는 별개의 연이 닿는 걸까? 더군다나 그들이 그동안에 진 빚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 밥을 대어주던 공사판 사장의 빚보증을 서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고 했다. 이혼하기 직전에 아버지는 당시 성인이던 언니들과 나까지 인감도장을 파게 했다. 그날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먹은 것들을 다 게워 냈다.
엄마는 외가 친척의 소개로 서울의 한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가족 누구와도 연락을 끊고 잠적한 상태였다. 나는 빚쟁이에게 찾아가듯이 엄마를 찾아갔다. 다음 학기 등록금을 이유로 짐을 싸는 나를 승준 오빠도 말리지 못했다. 일단 몸부터 멀어지고 오빠를 서서히 정리할 생각이었다.
엄마가 있는 방은 서울에서 방값이 가장 싸다는 동네의 반지하에 있었다. 여섯 평짜리 방 하나에 바깥으로 불법 개조한 화장실과 부엌이 달린 방이었다. 엄마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궁색한 모양새였다. 옷 가방을 들고 또다시 나타난 셋째 딸을 엄마는 그저 지겹다는 얼굴로 맞았다. 호프집 주방에서 일하며 그나마 발 뻗고 잘 수 있었던 최소한의 자유마저 날아가 버린 순간이었을 것이다. 다섯 명의 자식을 세상에 내놓은 엄마는 아마 죽을 때까지 자유를 찾지 못할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