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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스럽다는 건

by 소란


나는 겨우 퇴직금을 챙겨서 다시 태평시로 돌아갔다. 마침 윤석이 제대하고 복학하는 시점이었다. 윤석이 아니었다면 끝내 태평시로 돌아가겠다는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더는 은경도 경서도 거기에 없었다. 어쩌면 그 시간이 되기까지 기다렸는지 몰랐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는 이가 없기를 바라며 나는 다시 3학년으로 복학했다.

처음 태평시를 찾았을 때보다 나는 더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본다면, 이제 와서 내 휴학에 관해 묻는다면, 나는 그 사람을 저수지에라도 빠뜨릴 각오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학교에는 나를 아는 이들이 여전히 많았다. 내가 학회장 신분으로 맞았던 신입생들, 군대에 갔다가 복학한 남자 동기들, 나처럼 개인 사정으로 휴학했던 몇몇의 동기들, 그리고 언제까지나 태평대학에만 있을 것만 같은 전공 교수들이었다.

여고괴담처럼 다시 나타난 나를 발견한 그들은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나는 유일한 방어막인 윤석의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며, 최대한 뻔뻔해지려고 노력했다. 원룸을 구해 윤석과 함께 살았던 건 물론이다. 우리는 그동안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었던 것처럼 다시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했다.

가장 놀라운 재회는 승준 오빠였다. 그날 나는 윤석과 함께 도서관에 있었다. 3학년을 다시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공부를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에 내가 앉았던 자리에 캔 커피와 쪽지가 놓여 있었다.

‘오랜만이다, 이제 제자리를 찾은 것 같네. 열심히 해.’

나는 그 글씨체를 바로 알아보았다. 도서관 제일 안쪽 자리에서 익숙한 얼굴이 손을 흔들었다. 마르고 추레해진 오빠를 보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마침 자리를 비운 윤석에게 또다시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바로 정신을 차렸다. 나중에야 나는 오빠가 졸업 후에도 학교에 남아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오빠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점 더 쪼그라들었다. 전공 공부는 더는 혼자 할 수 없는 형식이 되었다. 비운의 왕년 스타를 대하듯, 나를 쳐다보는 후배 아이들과 함께 조를 이뤄서 연구하고 조사하고 발표해야 할 일이 많았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다가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그나마 의지할 곳은 복학생 남자아이들이었다. 그들 역시도 복학생 특유의 아웃사이더였고, 여자들이 많은 과에서 살아남으려면 후배 여자아이들과의 징검다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윤석은 나와 반대로 뭐든지 거리낌이 없었다. 그는 제때 군대에 갔다가 때맞춰 복학한 공대 남학생이었고, 주머니 사정은 언제나 나보다 넉넉했다. 윤석과 함께 복학한 윤석의 친구들은 윤석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잘 알면서도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나를 대했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런 고민이 없어 보이는 그들 사이에서 홀로 외로웠다. 더군다나 어스름이 내릴 무렵 자연스럽게 호프집으로 향하는 그들과 달리, 나는 또다시 일을 하러 나갔다. 2년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나는 그때부터 학원가를 돌았다. 전공 3학년이 되고 보니 입시학원 국어 과목이나 논술 따위를 가르칠 수 있었다. 물론 나에게 그럴 능력은 없었다. 해답지를 달달 외워서 아이들 앞에 설 수 있었다는 말이다. 학생들은 나를 교생 선생 대하듯 따르고 좋아했다. 몇 명 되바라진 아이들이 대놓고 젊은 선생의 얕은 지식을 시험하고 놀리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딱 정해진 시간 안에 해맑은 아이들의 에너지를 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학원 일은 생각보다 쉽고 편했다. 더는 앞치마나 행주 없이도 그 이상의 돈을 벌 수 있었다.

윤석이 여행 삼아, 경험 삼아 중국에 간다고 했을 때 나는 거의 히스테리에 가깝게 화를 냈다. 윤석의 과에서 진행하는 엠티 비슷한 견학이라고 했다. 윤석이 아무렇지 않게 꺼낸 이야기에, 3주라는 짧은 일정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토록 화가 나고 절망한 이유는 윤석에게 기댄 나의 처지 때문이었다. 윤석이 없는 3주 동안 나 혼자 학교에 가고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일. 별것 아닌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지냈지만, 나는 모멸감을 잘 견디는 성격이 아니었다. 당시 내 수중에 남은 돈이 얼마 없다는 것도 나를 더 쪼그라들게 했다. 그런데 윤석은 가족의 도움으로 방값에, 등록금에 생활비는 물론이고 여행까지 가는 거였다. 윤석은 끝까지 내가 화난 이유를, 나의 열등감을 알은체 하지 않았다.

나는 윤석을 중국에 보내놓고 돌발했다. 나는 윤석이 없는 틈에 과 동기 남자아이들과 어울렸다. 핑곗거리는 전공 숙제였다. 우리는 처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어려운 비평 서적을 뒤적거렸다. 그들은 대체로 학과 공부에 흥미가 없었고, 평탄한 학점과 사 년제 대학 졸업장만이 필요한 아이들이었다. 형식적으로 스터디에 참여한 아이들 사이에서 나 혼자 떠들다가 술이나 먹으러 나가는 식이었다. 그중에는 유난히 나를 따르는 아이가 있었다. 세상을 다 아는 척 떠드는 나를 우러르듯 쳐다보던 그 아이는 유진이었다.

키가 크고 말랐던, 남자라기보다는 소년에 가까운 외형. 그래서였는지 유진은 오히려 여자 후배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유진은 간혹 용기를 내어 싱거운 농담도 던질 줄 아는 꽤 재미있는 아이였지만, 뭔가 자신 없는 말투와 표정으로 어디서든 희미한 존재였다. 군대를 갔다 왔어도 그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유진은 장난스럽게 내가 앉는 곳마다 손수건을 깔아주고, 물이 마시고 싶다고 하면 냉큼 편의점으로 달려가 생수를 사다 바치는 식으로, 마치 큰 보물을 관리하는 사람처럼 나를 신경 써주었다. 무엇보다 유진은 잘 웃는 아이였다. 유진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얼굴 전체가 빨개지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런 유진과는 온종일 붙어 있어도 심심하지가 않았다. 끊임없이 나만을 바라보고 나의 아주 작은 빈틈조차도 따뜻하게 채워주려던 아이. 그 온도가 어찌나 따뜻했는지 나는 금세 녹아내렸다. 이쯤 되면 윤석과는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수없이 반복될 거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윤석에게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미안해. 다시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나도 생각 못 했어.”

“누군데? 혹시 기성이?”

윤석은 오해하고 있었다. 기성이라면 유진과 가장 친한 친구였고, 외모부터 성격까지 윤석과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던 과 동기였다. 활발한 성격의 기성이가 ‘누나, 누나’ 부르며 나를 쫓아다니는 걸 윤석도 평소에 알고 있었고, 누가 봐도 유진보다는 기성에게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아니야, 유진이야.”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쇼킹하다. 유진이? 유진이라고?”

윤석은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왜 하필 유진이야? 유진은 좀 아니지 않냐?”

“미안해.”

기분이 나빴지만, 윤석에게 다 설명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라도 상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같이 어울리며 친하게 지내던 기성이마저도 내가 유진을 좋아한다고 말하자 감당하지 못할 말을 들은 것처럼 허망하게 웃어젖혔었다. 너무 어이가 없었거나 내가 자기가 아닌 유진에게 끌렸다는 게 그에게 상처가 된 것 같았다. 그 후로 기성과는 완전히 멀어졌으니까.

아무 말도 못 하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윤석이 말했다.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나는 꼭 승준 오빠를 만났을 때처럼, 유진을 얻는 대신 태평시에서 의지할 곳을 모두 잃었다.

당장에 혼자 지낼 방부터 구해야 했다. 새로운 남자를 만날 때마다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는 풍경. 진저리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슴속 ‘순결한 한 가지’를 찾기 전에 먼저 나 스스로 일어서는 방법부터 배워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학교 카페를 뒤져 급하게 합숙 아파트를 구했다. 네 명의 학생이 아파트 한 채를 빌려 쓰는 곳이었다. 방 두 개에 각각 한 명씩, 거실을 두 명이 차지했는데, 마침 방 하나를 차지하던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나는 볼 것도 없이 이사를 결정했다.

아파트의 첫인상은 가관이었다. 최신식 아파트였지만 목욕탕 수챗구멍에는 시커먼 머리카락이 괴기스럽게 뭉쳐있었고, 거실 바닥에는 그들끼리 밤새 먹고 마셨을 과자 봉지와 맥주 캔이 널브러져 있었다. 걸을 때마다 양말에 진득하게 뭔가 더러운 게 달라붙었다. 서로 잘 보일 필요가 없는 여자아이들끼리는 위생 관념마저 필요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학점만 잘 받으면 졸업까지는 딱 일 년이 남아 있었다.

유진은 나에게 헌신하는 걸 인생 최대의 목표로 삼은 것처럼 나를 좋아해 주었다. 반면에 나는 졸업과 동시에 그곳을 떠날 사람이었기에 유진을 가벼운 마음으로 만났다. 내가 곁을 모두 내주지 않는 것에 유진은 더 애가 타는 것 같았다. 나는 즐기고 있었다. 누군가의 인생 목표가 된다는 건 생각보다 신명 나는 일이었다. 특히 같은 학과에 남자친구가 있다는 건 대단한 쓸모였다.

강의실에서 나는 더 이상 쭈뼛거리지 않아도 되었다. 같은 공부를 하는 내 편이 있으니까. 그때부터 비로소 책도, 과 아이들도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유진과의 연애는 과에서 대단한 이슈가 됐다. 이래저래 입방아에 오르는 나이 많은 선배가 또 한 번 남자친구를 갈아치운 사건이었다. 그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나와 유진을 힐끔거렸다.

헤어지고 딱 한 번 윤석과 제대로 마주친 적이 있다. 내가 휴학하는 동안 새로 지어진 언덕 위의 도서관으로 백 미터쯤 곧장 뻗어 올라간 계단에서, 윤석은 내려오는 중이었고 나는 올라가는 중이었다. 우리는 멀리서도 서로를 알아봤지만 뒤돌아 가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잔뜩 의식하면서 모르는 척 지나쳤다. 우리의 보금자리로 자주 놀러 오던 윤석의 동기와 내 곁의 유진만이 어쩔 줄 몰라했다.

그들과 스치면서 나는 처음으로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나를 붙잡지 않은, 다시는 보지 말자고

호언장담을 하던 윤석과, 그런 윤석을 상대로 쭈뼛거리기만 하는 유진을 동시에 증오했다. 그들의 변변치 않음을 다시 확인한 나는 곧바로 도서관의 방대한 책 사이로 도망쳐 들어갔다.

내게는 허깨비 같은 남자친구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언덕 위의 그 도서관을 만든 장본인이자, 당시 권위 있는 문학잡지의 편집위원이기도 했던, 자칭 타칭 인문대학 최고 스타인 주순탁 교수였다.

나는 복학하고 무슨 의례처럼 주 교수를 찾아갔다. 물론 그를 찾아가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강의가 끝나고 교수는 무언가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특유의 터덜대는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갔고, 나는 그 뒤를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조용히 따라갔다.

교수실은 주인을 한 번에 찾지 못하도록 책으로 쌓은 성벽이 미로처럼 자리했다.

“교수님, 잘 계셨어요?”

심호흡을 하며 미로를 통과한 내가 말했다. 이미 충분히 수업 시간에 눈을 마주치고, 반가움을 나눴는데도 나는 어떤 매듭 같은 걸 풀고 싶었다.

그는 내가 휴학한다고 했을 때 가장 놀라고 안타까워하던 사람이었다. 그 당시 그의 다정한 위로와 동정에 하마터면 ‘그렇게 안타까우시면 당신이 등록금을 좀 빌려 달라’라고 말할 뻔했던 사람. 내가 그때 그렇게 말했다면, 그런 용기를 냈다면 과연 그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를 내내 생각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잘 왔어.”

그가 무심히 말했고, 나는 그의 한마디에 울음을 터트렸다. 어쩌자고 우는 것인가. 창피해서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별말 없이 휴지를 건네주었을 뿐 섣부른 비난이나 위로를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내가 울음을 그치기를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한참 만에야 나는 내 울음의 이유를 완전히 이해받은 기분이 되어 그 방을 나올 수 있었다.

나는 남은 학교생활을 주 교수에게 기댔다. 그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강의 시간이 유일했지만, 그를 동경하는 마음은 윤석과 유진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아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나눠주기 위해, 문학을 공부하는 즐거움과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툭하면 지잡대를 강조하며 주눅 들게 하는 다른 교수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우리가 게으름을 피우면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고, 의기소침해하면 적당히 두둔해 주기도 했다. 우리를 무시하며 깔아뭉개지도 포기하지도 않는 사람. 제대로 공부하면 우리 중에 누군가 한 명쯤은 적어도 훌륭한 독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던 사람이었다.

무언가 나도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 학교 문학제가 열렸다. 나도 처음으로 소설이라는 걸 써보았다. 내 인생의 찢어진 페이지와도 같은, 다단계 회사에 다녔던 일을 A4용지 오십 매가 넘도록 쓴 거였다. 글을 쓴다는 건 확실히 자기 정리가 맞는 것 같았다. 그 일을 써내고 나서야 나는 나의 어리석음과 나를 이용한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했다고, 조금은 용서했다고 느꼈다. 기구한 사연은 물론이고 이토록 정확하고 솔직한 글이라니. 나는 내가 써낸 이야기에 대한 보람과 자부심이 넘쳐서 한동안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닐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내 글은 학교 신문 한 귀퉁이에도 실리지 않았지만. 심사평에는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를 읽고 심사하느라 수고가 많았다는 담당 교수의 하소연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도대체 이런 대작을 읽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니. 나는 용감무쌍하게 문학제 심사위원인 임 교수를 찾아갔다.

지방대 출신인 데다가 아이들에게 별 인기가 없었던 임 교수는 여러모로 잘 나가는 주 교수에게 약간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직접 하지 않았지만, 우리들은 그의 표정과 말투, 강의 태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콤플렉스 보균자들은 귀신같이 자신과 비슷한 종을 알아보았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공부를 진짜 하고 싶으면 주 교수에게, 좋은 학점을 받고 싶으면 임 교수에게 지도교수를 청탁하는 관례가 있었다.

지도교수가 아닌 자신을 찾아온 제자를 그는 당황스럽게 맞았다. 내 소설을 대충이라도 읽었을 테니, 그는 나의 치부를 어느 정도 들여다봤을 터였다.

“경숙이는 소설이 뭐라고 생각하나?”

내가 찾아온 이유를 밝히자 그가 진지하게 물었다.

“이야기요.”

“그렇지, 이야기지. 아주 특별한 이야기지. 경숙이는 어떤 소설을 좋아하나?”

“음, 저는 한 사람의 일대기, 성장담,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었다. 탄생부터 소멸까지의 내용을 담은, 있는 그대로의 인생 이야기,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볼 수 있는 이야기에 감동하는 것 같아요.”

나는 장황하게 대답했다.

“그래 성장담, 모든 이야기는 인물의 성장담이라고 할 수 있지. 근데 경숙이 소설은 소설이라고 보기가 어려운 거야. 열심히는 썼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길게 잘 못 써요. 그런 면에서는 정말 대단해. 근데 이건 소설이라기보다는 체험담에 가까워요. 수기라고 하지, 왜. 대화 같은 것들도 내용 그대로 다 들어가 있고,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다 쓰는 건 소설이라고 보기가 어려워요. 이 이야기를 잘 다듬고 압축해 봐요. 소설에 대해 좀 더 공부도 하고.”

그게 끝이었다. 내 얼굴이 홧홧하게 타오르는 걸 느꼈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거의 울먹이다시피 대답했다.

“그래요, 원래 소설가들도 이렇게 초고를 써놓고 계속 고치는 거야. 그래야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작품, 그래, 작품이 될 수 있어요.”

나는 휘청거리며 교수실을 나왔다. 정말이지 첫 경험이었다. 내가 쓴 글에 대한 첫 피드백. 안타깝게도 나는 임 교수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고, 나를 알아봐 주지 않은 그에게 서운한 마음만 있었다. 나는 이후로 그 소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작가는 탄생부터 범상치 않아야 했다.

나는 마지막 학기에 아르바이트를 멈추고 무리하게 수강 신청을 했다. 한 학기라도 등록금을 아껴야 했다. 일단 졸업이 목표였다. 나는 일찍이 이미란 작가의 작가론을 졸업 논문으로 쓸 예정이었으므로 모든 것은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분명히 이미란 작가를 향한 애정에서 출발한 논문이었는데, 자꾸만 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녀의 작품은 그녀의 결핍과 심약한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억측이었다. 정신분석 이론에 짜깁기된 애매한 입장의 내 논문에는 이미란 작가의 소설이 거의 대부분 거론되었고, 내가 쓴 소설처럼 두서없이 양만 방대했다.

주 교수는 내가 가져간 논문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지도교수란에 자신의 이름을 무성의하게 적는 그의 반응에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재능 없는 제자가 졸업만을 위해 써낸 쓰레기 논문 하나가 추가됐을 뿐이었다. 차라리 그가 그때 뭔가 쓴소리라도 한마디 해주었더라면, 나는 지금과 다르게 살고 있을까? 책과 소설과는 아주 먼 삶을 살 수 있었을까?

한여름, 나만 아는 역학기 졸업이었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학점도 꽤 높은 편이었다. 그토록 기다려 온 졸업인데 막상 누구도, 그 어디에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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