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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저도 아닌

by 소란

내가 신나게 소설에게서 멀어지고 있을 때 경서에게 연락이 왔다. 경서는 서울에서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언젠가 서른쯤에는 자기도 글을 써보겠다던 경서는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경서가 아직도 공부하고 있다는 건 대단한 자극이었다.

우리는 인사동에서 만났다. 내가 휴학한 이후로 처음 만난 경서는 짧은 단발머리에 단정한 원피스 차림이었다. 오동통하던 젖살이 빠져서인지 무척 성숙해 보였다. 서로에게 쌓인 감정을 감추느라 우리는 호들갑스럽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급하게 맥주를 마셨다. 우리의 추억은 대학 2학년 때로 멈춰있었다.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고 기댔던 시절, 주순탁 교수를 발견하고 기뻐하던 시절, 청춘 드라마 같은 자잘한 연애의 기억들, 어느 순간 나는 경서와의 대화에 지쳐갔고 술자리가 지루해졌다. 앞에 있는 경서는 여전히 한 얘기를 또 하고 또 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곧 지하철이 끊길 시간이었다. 자리를 정리하려는 내 마음을 읽은 경서는 갑자기 화를 냈다.

“언니는 꼭 이런 식이더라? 나한테 최선을 다하질 않아. 학교 다닐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내가 얼마나 오늘을 기다렸는데, 이렇게 또 혼자 도망치려고 해?”

경서가 내게 직접대고 그토록 화를 낸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도망? 도망을 친다고? 기가 막힌다. 정말. 너는 내가 왜 휴학을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니? 네가 가난을 알아? 너는 부모 잘 만나서 공부만 해도 됐잖아. 방도 있고 심지어 차도 몰지 않았어? 나는 당장 주머니에 밥값이 없어서…….”

나는 순간 울컥했다.

“진짜, 돈이 없어서 휴학했다고!”

내가 소리쳤다.

“거짓말, 진짜 이유가 그거 하나야? 나하고도, 승준 오빠랑도 헤어지려고 그런 거잖아. 언니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만나더라. 필요할 때만 옆에 두고 필요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리고.”

경서가 말했다.

“진짜 황당하다. 그래, 네 맘대로 생각해라. 너야말로 이기적이지 않니? 너는 내일 학교로 돌아가지만, 나는 일을 나가야 해. 학교는 빠지면 그만이지만, 일은? 지금까지 잘 놀았으면 다음에 또 만나자. 이렇게 쿨하게 헤어질 수는 없는 거니? 어떻게 밤새워 놀자고 보채? 네가 아직도 애야?”

“애? 나는 언니가 애 같은데? 자존심 세고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 언니는 솔직히 누구를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도 없지?”

경서는 정곡을 찔렀다.

“나는 언니한테 내 얘기를 막 하고 싶고 언니의 아픈 이야기도 듣고 싶은데, 언니는 솔직히 그럴 마음이 없잖아. 내가 만나자고 하니까 오늘도 그냥 나온 거고, 대충 시간만 때우다가 가는 거잖아?”

경서는 울기 시작했다. 웬일인지 나는 따라 울지 않았다. 마음이 차가워진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술집을 나왔다. 지긋지긋하게 지겨운 경서로부터, 아니 경서가 품은 태평시의 기억으로부터, 아니 더 이상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가슴 속 순결한 한 가지’로부터 최대한 빨리,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강남의 학원에서도 나는 만 일 년을 일했다. 고향에 내려가서 비슷한 학원을 차린다면 인기가 있을 것 같았다. 서울 생활이 빠듯하기도 했지만 내가 고향에 내려가려는 진짜 이유는 중혁이 때문이었다. 미숙이 사건 이후로 여자 친구와 헤어진 중혁은 꾸준히 연락을 해왔고, 나를 만나기 위해 자주 서울에 올라와 주었다. 우리의 연애가 일 년쯤 됐을 때, 중혁은 9급 공무원 시험에 붙었다. 중혁이 고향 근처 지방 면서기로 발령이 나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결혼을 전제로 만나기 시작했다.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서 결혼은 아주 훌륭한 도피처였다.

“네 친구 중에 그래도 내가 제일 자리를 잘 잡은 거 맞지?”

중혁은 싱거운 농담을 던지며 비로소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다정한 성격의 중혁은 그동안 내가 상상해 오던 결혼이라는 관념에 잘 어울리는, 이상형에 가까웠다. 중혁과 함께 있으면 뜨겁게 불타오르지는 않더라도 오래도록 따뜻하고 편안할 것 같았다. 나는 외로움을 잘 견디는 사람이 아니었고 중혁이 주는 온기로부터 한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다.

중혁의 도움으로 일은 척척 진행됐다. 나는 우선 아버지 집으로 들어갔고, 시내에서 가장 큰 초등학교 앞으로 상가를 얻었다. 떡볶이집과 문구점 사이의 열 평짜리 오래된 상가였다. 최대한 돈을 아껴야 했으므로 우리는 그 공간을 손수 꾸몄다. 고향에 있는 중혁의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제법 그럴 듯한 공간이 탄생했고 나는 소수 정예로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공부방을 열었다. 강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결혼 때문에 고향에 내려왔다는 나의 개인사는 훌륭한 홍보 멘트가 되어주었고 그래서인지 공부방 정원은 금세 찼다.

내가 고향에 내려가서도 경서는 정기적으로 연락을 해왔다. 미지근한 내 반응에도 아랑곳없이 경서는 느닷없이 전화도 걸었다가 책 선물도 보냈다가 하며 일방적인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었다. 경서가 왜 그토록 내게 집착하는 건지 몰랐지만 경서의 정성은 끈질겼고, 나는 그게 싫지만은 않았다. 이미 고향행을 결정했을 때는 많은 것을 내려놓은 상태였고, 이제 고향에서 중혁과의 새로운 출발 만이 내 앞길에서 중요한 일인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경서가 보내오는 소설책이나 시집을 읽으며 알 수 없는 조바심에 끙끙 앓았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내 속을 후벼 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내용의 것들이었다. 마치 경서는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기만의 세계를 열어가고 있을 경서를, 경서의 내면을 질투했다.

어느 날, 경서는 교수님을 만나러 한번 학교에 가보자고 했다. 온종일 공부방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시달리다가 저녁이면 중혁과 부대끼며 연애하기도 벅차던 시간들이 막 지나갔던 시점이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태평대학은 거의 그대로였다.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낯선 행성에 입성한 것 같던 때부터, 거리낌 없이 아무 데나 들쑤시고 다니던 시절, 최대한 그 누구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아서 한껏 위축되었던 시간까지 한꺼번에 떠올랐고, 그래서인지 자꾸만 코 끝이 찡했다.

예상 밖으로 주 교수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교수와 꾸준히 연락해 왔을 경서가 미리 분위기를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드디어 주 교수와 독대해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 저녁에는 맥주도 마실 수 있었다.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졸업생이 찾아오는 경우는 흔치 않았기에 교수도 퍽 즐거운 표정이었다.

“저희는 늘 어디서든 교수님을 떠올렸어요.”

술김에 용기를 내어 내가 말했다. 경서는 옆에서 ‘맞아요, 맞아요!’ 하며 맞장구를 쳤다.

“지나간 시간에 기댄다는 건 지금 너희가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일 거야.”

교수는 맥주를 홀짝이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는 우리의 증상을 정확히 알아봤다. 그때의 우리는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뭔가 더 근사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글을 읽고 쓰고 비평하고, 우리도 맞은 편에 앉아 있는 그처럼 되고 싶었다. 태평시에 와서야 만나게 된 닮고 싶은 어른, 나는 즉흥적으로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 대학원에 들어와서 공부를 계속해 볼 수 있지.”

교수도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꼬리를 놓치지 않았다.

“정말이죠? 제가 들어오면 다시 제자로 받아주실 거죠?”

앞뒤 재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나는 나를 마지막으로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러자.”

교수도 쿨하게 대답했다.

“진짜? 부럽다.”

경서는 진심으로 내가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교수는 의리를 지켜주었다. 나는 다음 학기에 따로 입학시험을 치르지 않고 대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학부 때부터 알던 국어학 교수가 지나가며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주 교수님이 선뜻 지도교수가 되어주던가요?”

나는 당당하게 네, 라고 대답했지만, 묻는 사람의 저의가 불순하다는 것쯤은 알아들었다. 워낙에 대학원생이 몇 안 되었고, 제대로 공부를 해보겠다는 학생들이 들어가도 시원찮은 미래라는 건 안 봐도 뻔했다. 그의 눈에는 단순히 교수를 선망하는 마음으로 지방대 국문과 석사 과정을 지원한 내가 한참 모자라 보였을 것이다. 문학제를 심사했던 임 교수 역시 뒤늦게 나를 알아보고 한마디 보탰다.

“경숙이었지? 그래, 경숙이가 사회에 나가보니까 더 학위가 필요해졌겠지? 어디 명함이라도 내밀려면 필요했을 거야.”

그의 말대로 태평대를 나왔다는 건 사 년제 대학을 졸업했다는 의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졸업 후 누구에게도 당당히 내 출신 대학을 밝히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 대학을 졸업했다는 건 그 사람의 능력과 한계를 보여주는 낙인과 같았다. 나는 이제 석사 학위를 내밀며 단순한 지방대 졸업생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임 교수는 내 안의 그런 욕망을 제대로 알아본 거였다.

대학원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이었다. 나는 고속도로로 한 시간 거리를 오가기 위해 소형차를 몰기 시작했고, 공부방에 직원도 새로 뽑았다. 내가 없는 빈자리에 아이들이 들쑥날쑥하며 공부방의 인기는 예전만 못했지만, 이미 공부방은 내게 관심 밖이었다. 단순히 지잡대가 아니라 대학원까지 나온 사람이 될 거라는 희망, 국문학도로서의 공부를 완성해 보리라는 야망을 품은 채 나는 다시 태평시를 드나들었다.

석사 과정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난코스였고, 엉덩이를 책걸상에 붙이고 공들여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생들의 수준은 학부 때와 아주 다르지 않았다. 인문학을 배워서 교회 설교를 더 잘하고 싶다는 목사, 평생교육원 시 창작 강사, 한 시절 예술 대학까지 나왔지만 대기업에 취직하며 꿈을 접었던 어르신 등 학부가 미달이었던 것만큼 대학원에는 정말 아무나 들어온 것 같았다. 그나마 그들은 수업에 잘 나오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들 사이에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보미 언니가 있었다.

나보다 다섯 살이 많았던 보미 언니는 이미 학부 때부터 평론을 꽤 잘 쓰기로 유명한 선배였다. 가끔 수업 시간에 보미 언니의 글이 본보기로 소개된 적이 있을 정도로 그녀는 교수들에게 총애를 받고 있었다. 언니는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석사, 박사 코스를 연달아 밟으며 문학비평가가 되고 싶어 했다. 은연중에 주순탁 교수는 보미 언니와 나를 학인으로 묶어주려고 했다. 내가 보고 배울 게 많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 같았다. 교수의 바람을 읽은 나는 그러잖아도 대학원에서 마음 붙일 곳이 필요했으므로 보미 언니와의 관계에 공을 들였다.

기혼자인 보미 언니는 태평시에 이미 집도 아이도 있는, 많은 면에서 안정적으로 보이는 어른이었다. 일찍 결혼해서 살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느라 늦어졌다고 했지만, 공부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교수들 못지않았다. 그녀는 하루 중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읽는 데 썼고 독서 영역도 방대했다.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와 문학 이론이 적절히 결부된 글, 그녀의 글에서는 뭔가 뜨거운 온도가 느껴졌다. 언니는 글로써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열망이 대단했다. 나는 그런 보미 언니를 본보기로 삼고 대학원 공부에 정을 붙이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뿐인 만남이었지만 우리는 금세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보미 언니와 부딪힌 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이어준 주순탁 교수 때문이었다. 그날은 학교에서 문학기행을 가는 날이었다. 새벽에 움직이는 일정 탓에 나는 보미 언니의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언니는 나를 재워주기 위해 남편과 아이들을 가까운 시댁에 보내는 성의를 보였다. 언니의 작은 아파트는 절간처럼 깨끗했다. 아이들 방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들은 최소한의 가구만이 들어차 있었고, 거실에는 앉은뱅이책상과 책, 그리고 책상 위에는 언니의 재떨이와 마른 멸치가 담긴 나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 책상에는 앉기만 해도 저절로 글이 써질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평소 언니의 모습과도 무척 잘 어울리는 깨끗하고 소박한 공간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언니에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내가 태평대에 오게 된 이유와 대학원 공부를 하게 된 계기, 그리고 주순탁 교수를 향한 마음까지도 말이다.

나는 그때쯤 주순탁 교수에게서 남자의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스승에서 인생의 멘토로, 인생의 멘토에서 남자로. 주순탁 교수를 사랑하는 마음은 권위 있는 어른에게, 어른다운 어른에게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선이라고 여겼다. 어쩌면 나는 주순탁 교수가 실제 나의 애인이기를, 그가 나만의 남자이기를 바랐다. 그런 이야기라면 경서와는 늘 농담 삼아 하던 이야기였다.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우리는 바라고 있었다. 주순탁 교수가 한 번만이라도 망가지기를, 망가져서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어 우리를 여자로 봐주기를. 그래 주기만 한다면 나는 세상에 없는 황홀한 여인이 되어 그를 품을 것이었다.

나는 보미 언니에게 나의 그런 마음까지도 몽땅 고백했다. 내심 그 고백으로서 언제나 주순탁 교수의 촉망을 받는 보미 언니를 이기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럴 가망을 꿈꿀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젊고 예쁘다고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솔직해진다는 게 언제나 옳은 건 아니다. 아니, 솔직함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었다. 대학원 입학 이후로 나는 매주 수업 전에 교수실을 들렀었고, 수업 시간 후에도 교수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오곤 했었다. 내가 붙임성 있게 다가가자 다른 교수들도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그랬던 그들이 어느 순간 돌변했다. 그들은 내가 교수실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주순탁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바쁘다고 둘러대다가 나중에는 대놓고 거북하다는 표시를 했다. 갑자기 버려진 기분이 되어 나는 수업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내가 고민스러워하자, 보미 언니는 공부에만 집중하라며 별일 아닐 거라고 말해주었다.

분위기를 완전히 파악한 내가 다시 가시를 품기 시작했을 때쯤, 주 교수가 교수실로 나를 불렀다. 단둘의 대화는 거의 한 달 만이었다.

“보미 집에서 잤다며?”

갑작스러운 호출에 망설이며 교수실에 들어섰을 때, 주 교수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의 표정은 싸늘했다. 여전히 말귀를 못 알아듣는 내게 그는 이어서 말했다.

“보미 집에서 경숙이가 내 얘기를 했다는데?”

“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경숙이를 좋아한다고 얘기하고 다닌다며?”

“그게…….”

나는 순간 무릎이 풀린다는 말을 실감하며 주저앉았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내렸다. 주 교수는 예전처럼 휴지를 건네주었다. 금세 그는 다정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보미가 과 사무실에 와서 항의하고 갔어. 다른 교수님들도 다 들었다.”

그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그게 아니라……. 교수님이 저를 좋아하신다는 게 아니라 제가 좋아한다고 말했는데요? 예전부터 교수님 좋아했고 존경하고……. 그러면 안 되는 건가요?”

나는 눈물 콧물을 흘려가며 간신히 말했다.

“그러니까, 왜 좋아하는 마음을 함부로 얘기해.”

“함부로 가 아니고……언니와 그만큼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왜?”

그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나를 경멸스럽게 쳐다보던 교수들의 시선과 보미 언니의 표정과 말투. 보미 언니를 믿고 의지하던 마음이 한순간에 분노로 바뀌는 걸 느꼈다.

“교수님을 정말 좋아하는 건 제가 아니라 보미 언니 같은데요?”

눈물이 잦아들었을 때쯤, 내가 말했다.

“그래.”

교수는 내 말에 대꾸하며 한숨 비슷한 미소를 지었다.

“교수님이 오해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교수님을 좋아하는 마음은 순수해요. 동경에 가까운…….”

“알아요.”

나는 거짓을 말했고, 교수는 내 말꼬리를 잘랐다. 정확하게 선을 긋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꿈꾸어서는 안 될 꿈을 꾸다가 들킨 기분이었다.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경서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의 일들을 털어놓았다.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 같았다.

“뭐야? 우리 경쟁자가 한 명 더 생긴 거야?”

경서의 말에 그제야 웃음이 났다. 보미 언니에 대한 배신감은 둘째 치고 제자와의 스캔들이 겁이 나서 갑자기 선을 그은 그들에 대한, 아니 정확히 주순탁 교수에 대한 실망이 더 컸다. 그토록 선망하던 세계 하나가 부서진 것 같았다. 교수를 흠모하는 음흉한 제자의 사연은 거기서 완전히 끝맺음해야 했다.

나는 중혁과의 결혼을 서둘렀다. 끝까지 보미 언니에게는 그 일에 관해서 묻지 않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수업을 받고 과제를 하고 보미 언니에게도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대했다. 내가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자, 그 모든 이들과의 관계는 다시 원만해졌다. 내가 청첩장을 돌렸을 때 그들은 진심 어린 축복을 해주었다. 보미 언니와는 차츰 멀어졌다. 그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는, 천천히 표시 나지 않게 그녀와 담을 쌓는 것이었다.

결혼 후에는 더 바빠졌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곧바로 아이가 생겼다. 내 생에 찾아온 두 번째 아이였다. 충분히 계획한 임신이었지만, 임신이라는 사건은 내 삶의 패턴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먹고 싸고 자는 일상 밖의 모든 것들이 다 무의미해지는, 내가 나로서, 온전한 개인으로서 뭘 어찌할 수 없는 상태가 바로 임신이었다. 남들도 다 그러고 사니까, 결혼하면 임신하고, 아이 낳고 또 임신하고 사니까. 너무 큰일을 너무도 쉽게 생각했다. 몸이 불편해지자 나는 먼저 공부방을 접었다. 장거리 운전도, 교실에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지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나는 내가 공부에 취미도 재능도 없다고 결론지었다.

강의 수강은 마무리가 되어갔지만, 논문 쓰기라는 거대한 산이 남아 있었다. 주 교수는 조금씩 불러오는 내 배를 직관하며 실망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진지하게 공부에만 매진할 줄 알았던 제자가 또 그렇게 주저앉다니. 나는 뭘 제대로 해볼 틈도 없이 다시 생활인으로 돌아가려는 내 정신 상태가 부끄러웠다.

나는 교수에게 긴 메일을 썼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저는 더는 공부를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살면서 앞으로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되겠지요. 그동안 재능 없는 제자를 받아주시고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 선생님.’

정말이지 다시는 태평시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나는 바깥 활동을 완전히 차단한 채 집안에 틀어박혀 뜨개질과 십자수 따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태교라는 확실한 명분이 있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아무것에도 열중하지 않고 오로지 내 몸만을 들여다보는 시간. 성인이 된 이후로 처음으로 내가 나를 닦달하지 않아도 되는 최초의 시간이었다.

내 인생을 완전히 방관하고 있을 것만 같았던 주 교수는 곧장 답장을 보내왔다.

‘뭐라도 써와라. 그렇게 그만두는 건 아니다.’

교수는 짧은 메시지와 함께 논문의 가이드라인을 짜주었다. 딱 내가 포기하지 않을 만큼의 수준이었다.

나는 순전히 교수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논문을 써 내려갔다. 누구를 위한 공부인가,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교수의 말처럼 어떻게든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그게 교수와의 관계이건, 태평시와의 인연이건, 학위에 대한 미련이건 간에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모았다.

나는 지금도 가끔 내 왼쪽 엉덩이에 훈장처럼 각인된, 숟가락 크기만 한 판판한 살을 만져보곤 한다. 처음에는 검은 굳은살이 박히더니 다시는 원래의 모습으로 회생하지 못했다. 육중해진 몸으로 앉은뱅이책상에 오래 앉아 있던 결과였다.

뭐라도 써보겠다고 마지막 인내력을 발휘했던 아득한 시간. 최선을 다했지만, 마음에는 들지 않는 졸업 논문을 끝내고 나는 더는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태평시를 떠났다. 훌훌 털어버린 느낌이었다.

아이는 역아였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아이는 돌지 않았다. 의사는 엄마가 운동도 하지 않고 너무 앉아 있기만 한 것 아니냐며 농담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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