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앞에 남자가 서 있다. 한참 동안 그러고 있었는지 남자의 귀와 손이 새빨갛다. 내가 책방 문을 밀자, 훅하고 바람이 먼저 들어간다. 바람이 들자 책장에 빼곡히 붙여둔 손 글씨 메모들이 한 여름 미루나무 이파리 흔들리듯 파르르 떨린다. 나는 남자에게 따뜻한 커피를 내려주고, 남자는 자연스럽게 전날과 같은 자리에 앉아 이미란의 책을 읽기 시작한다. 한 공간에 남자와 단둘이 있는데도 나는 불편하지 않다.
“사장님 안 바쁘시면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청소를 마치고 내 몫의 커피를 내려 자리에 앉았을 때 남자가 말했다. 나는 커피잔을 챙겨 남자 앞에 앉는다. 남자는 책방 안을 공들여 둘러본다. 마치 그곳에 처음 들어온 사람처럼.
“사장님도 글을 쓰실 것 같은데요?”
“아, 네. 저도 쓰고는 있죠. 제대로 쓴 지는 얼마 안 됐어요.”
“역시 그렇군요. 어떤 걸 쓰세요? 시? 에세이? 소설?”
남자는 적극적이다.
“다요. 이것저것 다 써요. 그때그때 필 받는 대로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그게 가능하군요. 대단하십니다. 혹시 볼 수 있어요? 사장님이 쓰신 글?”
“너무 부끄러운데요. 하긴 부끄러울 거면 쓰지도 말아야죠. 아직 끼적거리는 수준이지만 제가 특별히 보여드릴게요.”
한때는 그냥 버릴까도 생각했던 졸작들이었지만, 어쨌든 그것들은 나의 한 시절 고민이었고, 버리기 아까운 기억이었다. 나는 기우와 열을 내며 썼던 그것들을 지역 문인단체에 보냈고, 고맙게도 단체에서는 분기마다 내 소설을 실어주었다. 간혹 남자처럼 나의 글을 궁금해하는 고객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의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해 책방 구석 눈에 잘 띄지 않는 책장에 그것들을 보관했다.
나는 일어나 구석으로 간다. 책장 맨 밑에는 딱 봐도 어디 후원금으로 만들었을 촌스러운 색감의 잡지가 나란히 각 잡고 있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최근에 묶인 잡지 두 권과 시집 한 권을 챙겨 온다. 시집은 내가 만든 시 동아리에서 2주년 기념으로 묶은 것이다.
“진짜 별거 아니에요. 써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이십 년을 살다가 책방 열면서 쓰기 시작한 거예요.”
나는 말하며 얼굴을 붉힌다. 여전히 나는 내 글에 자신이 없다.
“대단하시네요. 제목만 봐도 이거 범상치가 않습니다.”
남자는 목차를 훑으면서 웃는다. 남자가 웃는 모습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된다.
“제대로 읽으면 아마 실망하실 거예요.”
“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 책들은 정말 빌려 가서 읽어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나는 살짝 머뭇대다 대답한다. 남자는 검은 백 팩에 내 책들을 넣고 남은 커피를 마저 다 마신다. 남자는 곧 나와 눈을 마주한다. 남자의 눈동자가 살짝 일렁이는 것 같다.
“신기하네요. 저는 책은 특별한 사람이 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 사장님이 특별하지 않다는 건 아니에요.”
남자가 말한다.
“아이고, 괜찮아요. 요새는 다 이렇게들 책 내더라고요.”
나는 과장되게 손사래를 치며 대꾸한다.
“특별하시죠. 이런 곳에 책방도 내시고, 진짜 자기 글도 쓰시고요. 저는 뭐 하고 싶은 거 없이 나이만 먹었어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한 건 아니었는데.”
남자는 말을 끊고 생각에 잠긴다.
“남들 다 가는 대학에 들어가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기사 자격증도 따고, 발전소에 들어가서 십오 년을 근무했어요. 그땐 꿈의 직장이라고들 했는데, 저에게는 잘 맞지 않더라고요.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십오 년이나 하다니…….”
나는 가만히 남자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는 그런 생각도 사치였죠. 늘 일에 치이고 돈에 쪼들리고, 이거 제 이야기를 너무 하는 거 같네요.”
남자는 멋쩍은지 비어있는 커피잔을 만지작거린다.
“괜찮아요. 다 그렇죠. 저도 그랬어요. 저도 아이가 둘 있거든요. 아이들 키우면서 제 꿈까지 찾아다니기는 쉽지 않더라고요.”
남자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창밖엔 여전히 사이프러스 두 그루가 바람을 타고 있다. 마치 두 명의 무용수가 같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 같다.
“아내가 떠났어요. 아이를 데리고. 아니 아이만 데리고 가버렸어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남자는 탁자로 눈을 내리고 천천히 말한다. 남자의 눈가에 물기가 서린다. 오랜만에 우는 남자를 보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중혁은 살면서 한 번도 내게 눈물을 보인 적이 없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서 휴지를 가져온다. 언젠가 주 교수가 내게 해준 것처럼.
남자가 눈물을 닦는 동안 나는 춤추는 사이프러스로 시선을 돌린 채 커피를 음미했다. 쌉쌀하다. 언제부터 나는 이 쌉쌀한 맛을 풍미라 여기고 매일 한 잔, 두 잔씩 마시게 됐을까?
“죄송합니다.”
한참 만에야 남자가 말한다.
“괜찮아요. 편하게 하세요.”
나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사장님께 어쩌자고 제가 이런 얘길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이미란 작품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아내가 떠나고 그녀의 책들을 읽었습니다. 아내의 서재에는 이미란 책이 많았어요. 저는 솔직히 이미란이 누군지도 잘 몰랐는데, 방송에 자주 나오긴 했어도 작품은 읽어보지 않았거든요. 그냥 아내의 자취를 느껴보려고 읽기 시작한 거죠. 근데, 그 글들이 다 아내의 이야기 같았어요. 그 말투며 호흡이며, 아내의 모든 것과 닮았더라고요. 그래서 몰입해서 읽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남자의 눈빛이 잔잔해진다.
“부인을 많이 사랑하셨나 봐요.”
“네, 그랬던 것 같아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왜 떠났는지, 떠나고 나서 뭘 원했는지 알고 싶었어요.”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부인이 왜 떠났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용기를 내 묻는다.
“답답했을 것 같아요. 아무것에도 흥미를 못 느끼는 제가. 뭐든 포기한 듯 대하는 제 태도가. 저는 삶이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지는 줄 알았어요. 결혼하고 아이 낳고 돈 벌고 살림하고, 그대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가 가끔 여기가 아닌 저기에 관해 이야기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무지개를 좇는 사람처럼, 그래서 되레 저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실은 아내가 진짜 날아가 버릴까봐, 겁이 났던가 봐요. 솔직히 두려웠어요. 버림받을까 봐 무서웠습니다.”
남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소리 없이 운다. 나는 남자의 말을 알아듣는다. 나와 중혁,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여전히 서로를 채워주지 못했다. 서로를 향하던 뜨거운 마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의식주처럼 꼭 필요한 삶의 요소들과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이 남았다. 남들처럼 복작거리며 행복한 듯 지냈지만 어쩐지 늘 공허했다. 아니, 이건 오롯이 내 생각이다.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속닥거리는 연인을 볼 때마다 질투 비슷한 슬픔을 느끼는 건 나니까.
언젠가 중혁에게 그런 내 마음을 고백한 적이 있었지만, 중혁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정말로 헤어질 결심을 한다면 중혁은 어떻게 할까? 지금 이 남자처럼 나를 이해하기 위해 나의 서재를 뒤져볼 수 있을까?
나는 커피잔에 따뜻한 물을 담아서 그의 앞에 가져간다. 어느새 그는 말끔해진 얼굴이다.
“부인을 붙잡고 싶으세요?”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그냥 알고 싶었어요. 아내의 마음 상태와 남겨진 저의 역할 같은 것들이요. 아이가 보고 싶지만……. 시간이 지나면 친구로는 지내고 싶어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남자가 힘없이 웃는다.
“이미란 책 읽고 아내의 어떤 면이 이해되었어요?”
“음……. 설명하기가 좀 힘든데요. 그냥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가능하구나. 어떤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그런 것들이 그렇게 중요하겠구나, 그게 이해됐어요. 그런 사람이 또 있다고 하니까 위로가 됐다고 할까요?”
안경 너머 남자의 눈이 맑다.
“위로, 저도 이미란 책 읽으면서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 내가 왜 이렇게 아픈지, 왜 이렇게 슬픈지, 왜 이렇게 외로운지 콕콕 짚어주는 것 같았어요. 명의를 만난 것처럼 신기했어요. 아마 그래서 부인이나 저 같은 독자들이 그렇게 이미란 작가한테 열광했나 봐요.”
“그런 거군요. 아, 저 여기 자주 올 것 같아요.”
남자가 어린아이처럼 말한다.
“그럼, 제 작품평부터 들고 오세요.”
내가 말하자 남자가 처음으로 환하게 웃는다.
남자가 가고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춤추는 사이프러스를 구경한다. 나는 두 손을 펴고 손끝 박수를 친다. 하나, 둘, 셋.
오랜만에 이미란 작가의 책을 정주행 하고 싶다. 나의 첫. 그 겨울, 내게 처음으로 손 내밀고, 엄청난 괴력으로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책들. 하지만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잘 계시나요?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게으른 제자를 용서하세요.
저는 여전히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우물쭈물, 소란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제 나이쯤이면 삶이 좀 고요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또한 심한 착각이었네요.
누군가가 고요는 늘 소란과 함께 있다더군요.
소란이 없으면 고요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 말에 조금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저는 지금 태평시에서 차로 두 시간쯤 떨어진 도시에서 책방을 하고 있어요.
언젠가 선생님의 바람대로 책 곁에서 독자로서의 기능은 제대로 하는 셈입니다.
어제는 이미란 작가의 책을 찾는 손님이 왔어요.
이미란을 찾는 고객은 오랜만이었습니다.
여전히 제 책장에 보물처럼 꽂혀있는 책들.
그동안 그녀를 까맣게 잊고 살았거든요.
꼭 그 사건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여느 사랑처럼 그녀에 대한 저의 애정도 어느 순간 시들해졌겠지요.
어쩌면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이름인데도 말이에요.
그 손님 덕분에 저는 이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때 태평시에서의 일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여기저기 쭈뼛거리며 후비고 다니던 시절, 그 무엇도 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던 시간을요.
그러다가 선생님과 그동안 주고받았던 메일을 차근차근히 꺼내 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부끄럽게도 굴곡진 삶의 마디마디마다 선생님께 신세를 많이 졌어요.
한 번도 주변에서 동경하고픈 어른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터라 선생님께 기대는 마음이 컸습니다.
시차를 두고 도착한 선생님의 답장에서는 언제나 최선이 느껴졌어요.
제가 포기하지 않도록, 제가 좀 더 현재형의 삶을 옹호하기를 바라는 마음.
언젠가 제가 그랬지요?
선생님께 의지만 하는 제자가 아니라 선생님과 동등한 입장에서, 때로는 선생님을 위로해 드릴 수도 있는 깜냥을 만들어 보겠다고요.
불행히도 영원히 그날은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언젠가 선생님이 저희에게 그래 주신 것처럼, 제 주변 사람들을 돌보며 다정해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또 선생님을 추억하고 사는 저처럼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는 사람도 되겠지, 욕심도 내 보고요.
어쩌면 지금 제 삶을 궁극적으로 결정지었을 그때부터, 그 후로도 아주 늦게까지 선생님께 의지하고, 선생님께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던 시간이 저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겠지요.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
회한과 절망의 순간마다 저는 진짜 책을 붙잡고 버틴 것 같아요.
책 속에는 정말이지 제가 숨 쉴 수 있는 ‘푸르른 틈새’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찾을 때면 꼭 선생님을 떠올렸지요.
그때마다 “저 이거 찾았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유일한 사람.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의기소침했던 시간들.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자의식에 홀로 외로웠던 시간들.
여전히 태평시를 떠올리면 무엇에 얹힌 것처럼, 아직 덜 끝낸 숙제가 있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지지만, 또 그 시절을 지나왔기에 지금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저는 요즘도 글을 쓰고 있어요.
어떤 때는 야심 차게 소설도 썼다가, 감정이 북받치면 시도 썼다가, 감흥 받은 작품이 생기면 소소한 인증숏을 남기기도 합니다.
여전히 글에 마침표를 찍기란 쉽지 않지만, 신기한 건 여전히 제가 글을 쓰고 있다는 거예요.
적어도 지금은 ‘왜 쓰는가?’라는 질문은 하지 않는답니다. 장족의 발전이죠?
누군가에게 내가 얼마나 딱한지 알아봐 달라고, 나를 이해해 달라고 사정하지 않고, 진짜를 써보자는 마음이에요. 정확히 써보자. 그거면 충분하다.
“불안해하거나 조급할 것 없이 터벅터벅 걷는 것, 그것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누군가를 보살피는 것은 어떤 일보다도 잘 걷는 것이지 않나 싶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값진 일이니까.”
제가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힘들어할 때 선생님이 보내주신 메일입니다.
그때 저에게 꼭 필요했던 말이었어요. 그때 배 속에 있던 아이는 벌써 사 학년이에요.
이제는 쓰고 싶을 때 쓰고, 읽고 싶을 때 읽고, 그런 시간이 제게도 생겼어요.
언젠가 이미란 작가의 글을 읽고 제가 변한 것처럼 제 글도 누군가에게 스미기를 기대하며 끝까지 써보는 것, 처음으로 집념이라는 것을 가져보는 것, 요즘 저의 작은 목표입니다.
언젠가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글을 쓰려면 뻔뻔해져야 한다고.
뻔뻔해진다는 건 용감해진다는 거였죠?
자신을 믿고 끝까지 쓰는 용기.
문득 연락하고 싶을 때 연락할 수 있는 용기.
오늘도 터벅터벅 잘 걸어가 볼게요.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몸에 좋은 거 조금씩 드시고, 따스한 햇볕도 쐬시고, 가끔 하늘도 올려다보시고, 많이 걸으시고.
그래서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오래오래 쓰는 사람으로 저희들 곁에 남아주시기를 바랄게요.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