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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사랑보다 중요한

by 소란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서울에는 상담원 시절 동기였던 수애 언니가 있었다. 나는 회사를 나와 복학하고도 수애 언니하고는 꾸준하게 연락을 주고받았다. 언니는 윤석과 같이 있던 태평시의 그 방에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한번 놀러 온 적도 있었고, 윤석과 끝내 헤어지고 유진과 새로 연애하게 된 과정 모두를 알고 있었다.

직장은 옮겼지만, 여전히 상담사로 일하는 수애 언니는 내가 없는 사이에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셋방을 옮겼고, 남자친구와 동거 중이었다. 언니의 첫사랑이자 십년지기 남자친구 역시 상담원이었다. 남자 상담원들은 조금 더 강도 높은 채권 수심 분야에서 인기가 있었다. 수애 언니의 셋방은 방 두 개에 부엌 겸 작은 거실 하나가 있는 반지하였는데, 큰 방은 언니와 남자친구가 쓰고 옷방으로 쓰는 작은방을 내가 쓰게 됐다.

다행히 우리 셋은 큰 부딪힘 없이 잘 지냈다. 아침이면 부리나케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가 저녁에 다시 뭉쳐서 우리는 예전처럼 맥주를 마셨다. 상담원 동기들도 다시 만났다. 그들은 거의 모두가 같은 일을 하고 있었고, 여전히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다. 달라진 거라곤 나에게 대학 졸업장이 생겼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먼저 유진을 정리했다. 나 없이 학교에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하는 유진은 내게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이미 충분히 내게 가스라이팅을 당해놓고도, 유진은 막상 내가 진짜 떠난다고 하자 집착하기 시작했고, 나는 유진이 그럴수록 매몰차게 굴었다.

‘네가 없는 세상은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너를 사랑하는 일 말고는 이 세상에서 할 게 없어…….’

이별하고 얼마 후 유진은 내게 긴 메일을 보내놓고 강원도로 출발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가느라 나는 유진이 보낸 메일을 읽을 겨를이 없었다. 내가 메일을 읽지 않자, 유진은 전화를 걸어왔다.

“메일을 안 읽는구나. 그냥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들어야 할 것 같아서.”

유진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무슨 말이야, 마지막이라니, 너 어디야?”

“그동안 고마웠어, 누나, 잘 지내, 나 같은 거 생각 말고, 멋지게 살아. 누나는 그럴 자격 있어.”

연애할 때는 서로 이름을 불렀는데, 유진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내게 누나라고 부르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스산한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바다야?”

“응, 누나 여기 강릉이야……. 잘 있어, 진짜, 내 사랑, 안녕.”

그게 끝이었다. 유진은 이후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전화기만 부여잡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경찰에 알릴까를 고민만 하다가 나는 밤을 지새웠다.

여러 가지를 상상했다. 무섭다기보다는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척스럽지도 고집스럽지도 않은 유진이 죽을 각오로 나를 사랑했었다는 생각과 나 같은 사람 때문에 죽을 정도로 유진이 외로웠다는 생각, 그러다가 어느 순간 유진은 절대로 자살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고, 내 멋대로 결론을 내렸다. 유진은 사랑 때문에 죽을, 그럴 깜냥이 못된다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튿날 나는 인터넷뉴스를 뒤지기 시작했다. 강릉 바닷가에서 정말로 이십 대 남성의 사체가 발견된 건 아닌지, 하루를 몽땅 전화기와 컴퓨터 앞에서 보냈지만, 연락도 뉴스도 없었다. 나는 다시 내 일상을 살았고, 그로부터 일주일 후쯤에 유진의 두 번째 메일을 받았다.

‘경숙이 누나, 죽는 게 무섭더라. 막상 검은 바다 앞에 서 있으려니까 춥고 무서웠어. 죽을 만큼 누나를 사랑했다고 생각했는데, 두렵더라. 미안해. 나는 정말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봐. 잘 떠났어. 나 같은 놈 잊고 잘 살아. 미안해. 끝까지 이런 사람으로 남아서. 이제 정말 안녕.’

그렇게 나는 시시하게 유진을 보냈다.

일을 해야 했다. 명함을 내밀기 쉬운 곳은 여전히 학원가였다. 나는 대치동의 유명 논술 학원부터 가까운 프랜차이즈 독서학원까지 보이는 대로 지원했다. 글을 쓸 수는 없더라도 책 언저리에 있으면서 뭐라도 되고 싶었다. 대학 졸업장은 나의 문학적 소양과 지식을 대변하는 증서가 결코 될 수 없었고, 주제 파악은 정확했던 나는 언제고 다시 제대로 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다. 시작했으니까 끝을 봐야 한다는 오기 같은 거였다.

대형 학원들은 월급을 많이 주는 대신 시간 조건이 까다로웠다. 나는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아니었다. 일과 공부가 모두 가능하려면 우선 시간이 자유로워야 했다. 타협점을 찾은 건 집과 가까운 속셈학원이었다. 유행에 맞춰 속셈학원에서도 논술 브랜드를 접목해 추가 수입을 올리는, 그 학원에서는 처음 도입한 프로그램이었다. 잘나지도, 그렇다고 자격 미달이라고 볼 수도 없는 지방대 국문과 출신으로는 적격인 곳이었다.

속셈학원에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 여선생 두 명이 일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그들은 그곳에서 파트너로 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듯했다. 서로의 한계와 처지를 잘 이해하는 우리 셋은 금세 어울려 다녔다.

“한번 발을 들이면 다른 일은 못 한다니까. 이만한 직장이 없지. 시간도 자유롭고 시급도 세고.”

첫 회식 자리에서 나와 나이가 같은 선생이 말했다. 그들은 학원 강사라는 직업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상대하며 선생님 소리를 듣는 직업, 점심 먹고 출근해서 저녁 무렵 퇴근할 수 있는 일. 언젠가 옷 가게 사장의 말처럼 나는 결국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 강사가 된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조금 더 특별한 선생이 되고 싶었다. 나는 논술 수업에 열정을 가졌다. 미술책을 읽으면 아이들을 미술관에 데려갔고, 역사책을 읽으면 주변의 박물관이나 역사 유적지 탐방을 갈 정도였다. 그래서였는지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호응이 좋았고, 원장도 본인의 아이 두 명을 논술 수업에 끼워 넣으며 만족도를 표시해 주었다.

아이들은 무슨 이야기든, 어떤 책이든 힘껏 쭉쭉 빨아들이는 능력이 있었다. 그렇게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며 사는 것도 꽤 재미있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일은 적성에 잘 맞았다. 말이 논술이지 책 읽기가 반이었고, 책에 관한 생각을 쓰는 글쓰기 수업이 병행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어린이책에 눈을 떴다. 그토록 깊고 환상적인 상상의 세계라니, 그쪽으로 독서 경험이 턱없이 부족했던 나는 어린이책에 완전히 몰입했고, 수업은 거꾸로 내가 교양을 쌓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때쯤 아버지는 다시 고향에 자리를 잡았다. 은행에 고향 집과 땅을 모두 빼앗긴 상태였지만, 친척들의 도움으로 시내의 낡은 아파트를 싸게 얻었다고 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환경미화원 일을 시작하며 억척스럽게 다시 생활을 이어갔다. 뿔뿔이 흩어졌던 우리 오 남매의 근거지도 자연스럽게 다시 고향이 되었다. 주말이나 명절 같은 때, 우리는 다시 아버지의 아파트에서 만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아파트에는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썼던 책상이며 책장, 그릇, 시계 같은 것들이 그대로 옮겨와 있었다. 고향 집이 경매에 넘어갈 때 아버지가 챙겨 온 것들이었다. 하나하나가 다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그것들이 좁은 공간에 두서없이 놓여 있는 모습은 기이해 보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마치 처음부터 우리에게는 엄마가 없었던 것처럼, 의식적으로 엄마의 흔적을 지워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때 나는 아버지를 위해 엄마가 나온 사진을 모조리 수거해 왔고, 엄마가 아끼던 찻잔 세트, 꽃무늬 식탁보 같은 것들을 내다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우리 오 남매를 낳고 살았던 이십오 년의 시간은 완전히 벗겨지지 않았고 어디선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아버지는 거의 언제나 만취 상태였고, 가끔 고향에 내려오는 딸들에게 당당히 엄마의 역할을 요구했다. 마치 엄마의 죄악을 딸들에게 보상받으려는 듯했다. 아버지는 집안이 기운 탓을 모두 엄마에게 돌렸다. 벌게진 얼굴로 툭하면 ‘그때 네 엄마가 그러지만 않았다면, 네 엄마가 그렇게 꼬드기지만 않았으면’하고 말하며 동정심에 자기를 찾아온 딸들을 눈을 부라리며 쳐다봤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담은 그 눈은 ‘너도 네 엄마랑 똑같지?’하고 되묻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혼자가 된 아버지를 외면하지 못했고, 번갈아가며 아버지를 찾아가 청소와 설거지, 김치 담그기 같은 온갖 집안일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온전한 말동무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해 추석에 나는 아버지 집에 내려갔다가 중혁을 만났다. 중혁은 재수할 때 몰려다니던 친구 중 한 명이었고, 동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서로 호감을 가졌던 친구였다. 동호와 내가 사귀면서 우리 사이는 멀어졌지만, 재수하던 친구 중에 유일하게 꾸준히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지내고 있었다. 우리 중에 제일 공부를 잘했던 중혁은 서울 소재 대학에 합격했었고, 어느 순간 자퇴를 선택했다. 자세한 내막은 몰랐지만 언젠가 술자리에서 그는 비싼 등록금에 비해 공부가 시시했다고 말했었다. 그때 중혁은 집 근처의 전문대학에 다니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중혁을 만났던 날은, 그를 만나려고 작정했던 게 아니었다. 그해 중혁과의 만남은 극적이었다. 명절 연휴의 첫날이었고, 나는 버스 터미널에서 중학교 동창이었던 미숙을 먼저 만났다. 미숙을 만난 건 중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이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뽀얀 피부, 동그란 코와 서글서글한 눈매, 성향이 순해서 누구 하고도 각을 세우지 않던 아이. 그런 미숙과 나는 한때 연애편지 비슷한 쪽지를 주고받으며 어울렸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용사가 됐다는 미숙은 꽤 예뻤다. 몸매가 다 드러나는 옷과 짙은 화장이 낯설었지만, 그녀와 잘 어울려 보였다.

우리는 우연한 마주침이 반가워 선 채로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미숙이 상업계 고등학교에, 내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지만 대화가 이어질수록 표정이며 말투며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짧은 만남이 아쉬웠던 우리는 그날 저녁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며 헤어졌다. 고향에는 내가 다단계를 할 때 연락이 끊어졌거나, 싸웠거나, 오해를 산 친구들이 태반이었다. 딱히 만날 사람이 없었던 나는 그때 무척 심심했으므로, 우연하게라도 길거리에서 중혁과 같은 옛 남자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미숙과의 술자리를 약속했던 거였다.

초저녁부터 호프집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다시 만난 미숙에게는 향수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낮보다 더 화려해진 느낌이었다. 우리는 급하게 맥주를 들이켜며 각자 건너온 시간에 관해 물었고, 서로가 얼마나 달라졌고 어떤 게 여전한지에 대해 열심히 떠들었다. 미숙은 어느 시점에선가부터 소주로 갈아탔다. 혀도 꼬이고 정신도 오락가락할 때쯤 미숙은 이상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T시에서 일할 때 말이야. 나 뉴스에 나왔잖아.”

“뉴스?”

“너 못 봤어? 그 유명한 J상가 미용실 성폭행 사건!”

“응? 못 봤는데?”

나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침을 삼켰다. 미숙은 소주를 한 잔 들이켜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게 나야. 그 새끼가 계속 나를 따라온 거더라고. 그날 일이 열 시쯤 끝났는데 내가 지갑을 안 가지고 나와서 다시 숍에 들어갔거든, 근데 그 새끼가 문이 닫히기 직전에 손을 넣어서 따라 들어온 거야. 그 새끼 목소리랑 눈빛이랑 다 기억나.”

미숙은 몸을 떨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검은 모자에 검은 마스크에 장갑까지 꼈더라고. 아주 작정을 한 거지. 그 새끼가 칼을 들고 소리 지르지 말라고 해서, 흑흑, 장갑 낀 손으로 거기를 쑤셨는데, 얼마나 깊이 쑤셨는지, 흑흑, 장갑을 입에도 쑤셔 넣고, 흑흑, 병원 갔더니 난 이제 아이도 못 가진대.”

미숙은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는 미숙의 옆자리로 가 미숙의 등을 토닥였다.

“세상에 웬일이니? 그래서 그 새끼는 잡혔어?”

술에 취한 데다 너무 당황했던 탓에 나는 그렇게밖에 물을 수 없었다.

“잡혔어, 흑흑. 그 일이 있고도 몇 번을 더 그 복장으로 나타나서 여자들 강간했나 봐. 완전 상습범, 개새끼……흑흑”

“세상에…….”

“그래서 다시 여기로 돌아온 거야. 한참 병원 신세 지고 정신과도 다니고 그랬어. 흑흑”

“진짜? 고생 많았어……. 어쩜 좋니? 얼마나 힘들었니?”

나는 연신 미숙의 등을 쓸어내리며 대꾸했다. 어느새 나도 같이 울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누군가가 울면 따라 우는 버릇이 있었다.

“경숙아, 근데 그게 끝이 아니야.”

“응?”

미숙은 한참 요란하게 코를 풀고 나서 다시 맥주를 들이켰다. 내가 마시던 맥주잔이었다.

“내가 여기 돌아와서 한 일이 옷 가게 아르바이트였거든. 너도 알지? 지브랜드.”

“응, 알지.”

“근데 거기 매장 화장실이 지하에 있잖아.”

“어.”

나는 또다시 긴장했다.

“대낮에 화장실에 어떤 미친놈이 따라 들어왔어. 흑흑.”

미숙은 다시 울기 시작했다.

“거기서 당하는데, 정말, 엉엉. 경숙아 나한테 뭐가 있나 봐. 왜 자꾸 그런 일이 반복되는지 모르겠어. 엉엉”

“네가 무슨 잘못이 있어. 미친놈들, 그 새끼들이 문제인 거지. 정말 세상에 어쩜 그런 일을 두 번이나 겪니?”

“두 번이 아니야. 나 택시 기사한테도 당했어…….”

“어?”

“……그때도 T시에서 미용사 할 때였는데, 친구들하고 놀다가 새벽에 택시를 탔거든……. 근데 그 새끼가 차 문을 잠그더니 지갑을 내놓으라는 거야.”

“그, 그래서?”

나는 본능적으로 미숙과 몸을 좀 떨어뜨리며 물었다.

“지갑에 돈이 별로 없었어……. 그랬더니 몸으로 때우라는 거야. 그 새끼가 칼을 들이대면서, 나 그날 목에 이거 자국 보여? 그 새끼가 이런 거야.”

미숙이 목에 두른 두툼한 금목걸이를 들치자 가느다란 송충이 모양의 상처가 드러났다.

“나, 그날 택시에서 당하고, 알몸으로 밭두렁에 버려졌어. 흑흑”

이 정도면 정신과 상담이 문제가 아니라 미숙이 이렇게 맨 정신으로 돌아다니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충격으로 취기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갑자기 미숙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이 복잡해진 내가 화장실에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어쩐지 미숙을 지켜줘야 할 것 같았다.

미숙은 일을 보고 나와서 화장실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다. 마스카라가 흘러내려서 흉해졌던 얼굴은 금세 말끔해졌다. 미숙은 파우치에서 향수를 꺼내더니 머리 위에 뿌렸다. 화장실 냄새와 향수가 뒤섞여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너도 뿌려줄까?”

“아니, 난 됐어.”

마침내 단장을 마친 미숙은 긴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올렸다 내렸다가 하며 거울에 비친 자기 외모를 점검했다. 잘록한 허리에 적당히 나온 힙선, 가냘픈 팔과 다리, 흠잡을 데 없이 멋진 몸이었다. 금방 처절하게 운 사람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젊은 육체. 나는 속으로 미숙이 그 사건 이후로 살짝 돌아버린 게 아닌가를 의심했다.

우리는 자리에 돌아와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미숙이 몰래 시계를 봤다. 다른 아이들을 불러내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미숙이를 적당히 만나다가 정말 보고 싶었던 친구들을, 그것도 남자친구들을 보고 싶었던 계획이 틀어지고 있었다. 유진과 헤어진 지 벌써 반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오랜만에 남자친구 없이 지내는 철저하게 외로운 시기였다. 황금 같은 명절 첫날을 미숙이의 이야기만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쾅, 갑자기 미숙이 맥주잔을 바닥으로 던졌다.

“죽어버릴 거야.”

유리잔은 산산조각이 났고 호프집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 쪽으로 쏠렸다. 미숙의 손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미숙은 자기 피를 보더니 진짜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주방에서 사장이 나왔고 종업원들이 몰려와서 테이블을 치우기 시작했다. 나는 또다시 유체를 이탈한 것처럼 눈앞에 펼쳐진 일들이 나와 무관한 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술을 많이 마신 거였다. 멍해진 상태에서 나는 때마침 중혁을 생각해 냈다. 중혁이만이 그 상황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중혁은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대충 상황을 설명하자 중혁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중혁은 그때 당시 여자 친구를 포함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내 쪽 사정이 급하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마음속으로 오래 사귄 여자 친구에 대한 권태로운 마음과 나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건 나중에야 들었다.

중혁은 호프집에 오자마자 척척 일을 해결해 냈다. 택시 앞자리에 중혁이 앉고 나와 미숙은 나란히 뒷좌석에 탔다.

“나 오늘 죽을 거야”

손에 두루마리 휴지를 친친 감은 미숙이 꼬부라진 혀로 반복해서 말했다. 택시 기사는 룸미러를 통해 우리를 노골적으로 힐끔거렸다.

“경숙아, 우리 집에 청산가리 있다! 어렵게 구해뒀지. 오늘 그거 먹고 죽을 거야. 실은 나 오늘 너한테 작별 인사하려고 불렀어. 중학교 때부터 나 너 좋아했거든. 정말 반가웠어…….”

미숙이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바로 이별이네. 미안하다. 흑흑.”

미숙이 울기 시작하자 나는 다시 겁이 났다. 룸미러로 보이는 중혁은 봉변을 당한 얼굴이었다.

중학교 바로 앞에 있던 미숙의 집은 예전 그대로였다. 아담한 이층 양옥집의 초인종을 누르자 미숙의 엄마와 남동생이 나란히 나왔다. 그들은 미숙의 손에 감은 피 묻은 휴지를 보고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어리둥절해진 건 나였다. 나는 미숙과 제 엄마를 따라 들어가려는 미숙의 남동생을 잡아끌었다.

“얘, 잠깐만, 미숙이가 그러는데 집에 청산가리 숨겨놨대. 오늘 죽으려고 한다는데. 어떡하니?”

“또요?”

남동생은 소리를 질렀다.

“또? 미숙이가 자주 저래?”

“네, 술만 처먹으면 저래요.”

“뭐? 그러면 걱정 안 해도 되는 거야?”

“제가 찾아볼게요.”

미숙의 말이 허풍은 아니었는지 남동생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래, 미안하다. 저렇게 술을 먹을 줄은 몰랐어.”

“네.”

집에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중혁과 나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중혁은 얌전히 나를 집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일을 계기로 중혁은 여자 친구와 헤어지게 됐다.

이후로 미숙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록 미숙에게서 나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소도시에서 미숙의 존재를 제대로 알게 된 중혁의 말로는, 미숙은 그 이후로도 여전히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시내를 휘젓고 다녔고, 지브랜드에서 옷을 팔고 있다고 했다. 나는 차츰 미숙을 잊어갔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문득 미숙이 궁금해져서 전화를 걸었을 때, 미숙은 쾌활하게 전화를 받았다. 마치 우리는 늘 연락을 해왔던 것처럼, 그날 일은 까맣게 잊은 것처럼. 미숙은 아무렇지 않게 자기의 즐거운 일상을 말했다. 결혼하고 고향과 가까운 도시에 살고 있으며 나에게 한번 놀러 오라고도 말했다. 전화기 너머로 아이가 옹알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날 그녀가 했던 말들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분명치 않았다. 그런 건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미숙이 찾은 명랑함을 믿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중혁을 만났던 이듬해 봄에 나는 강남의 논술 학원으로 직장을 옮겼다. 생각보다 일이 적성에 잘 맞았고, 그렇다면 이왕에 경력이 인정되는 큰 학원에서 일하고 싶었다. 어린이책 전집을 만드는 출판사가 직접 운영하는 제법 큰 학원이었다. 면접도 꽤 까다로웠다. 세 명의 면접관 중 정중앙에 앉은 여자가 물었다.

“좋아하는 책은 어떤 건가요?”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미란 작가의 책들과 작품 평을 읊었다. 그들에게 책과 독서에 대한 나의 뜨거운 열정과 태도를 보여줘야만 했다.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흐뭇한 얼굴의 면접관은 내게 이것저것을 더 물었다. 아무래도 내가 지방대학 출신이라는 게 걸리는 것 같았다. 나는 불리해질 때마다 주순탁 교수의 이름을 대는 버릇이 있었다.

“우리 학교 교수님이 주순탁 평론가예요. 주 교수님 밑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문학평론가 주순탁의 직속 제자라는 게 출신 대학을 무마해 주길 바라며 나는 덧붙였다. 그 말을 들은 이들은 늘 똑같은 대답을 했다.

“아, 주순탁 평론가가 태평대에 있군요.”

그들은 나를 뽑아놓고도 미심쩍은 얼굴이었다. 나는 그들의 의심에 보란 듯이 복수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학원도 사업체였고 학원생 유치가 가장 큰 성과였다. 나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입맛에 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미 일 년 동안의 경험치가 있었고 나는 여전히 서비스의 귀재였다. 덕분에 나는 금세 학원 인기 강사로 발돋움했고 그들 사이에 무리 없이 받아들여졌다.

때마침 학원에서는 직원 복리후생으로 자기 능력 개발비를 지원해 준다고 했다. 나는 학원 근처 예술재단에서 진행하는 소설 창작 강의를 신청했다. 강사는 벌써 소설집을 세 권이나 낸 나이가 지긋한 소설가였다. 덕분에 나는 드디어 일주일에 한 번 정식으로 내 글에 대해 고민하고, 내 글을 쓰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곳에는 나까지 열두 명의 학인이 있었고 우리는 각자 가슴에 ‘소중한 한 가지’를 품은 채 서로를 환대했다. 언젠가 신춘문예로 등단했던 작가부터 대필 작가, 출판사 직원, 문예창작과 재학생 등 다들 짧지 않은 시간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 글을 써온 이들이었다. 그중에 아마추어는 나 하나뿐인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의 글을 읽어주고 감상평을 나누며 힘을 얻어갔다. 비로소 나는 내 인생의 나침반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느꼈다. 비록 일주일에 한 번뿐인 수업이었지만, 지하철 2호선의 가장 가난한 동네에서 가장 부자 동네까지를 매일 오가며 나는 오랜만에 기쁘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한 가지라도 하고 있다는 건 대단한 에너지원이었다.

우리를 가르치던 소설가는 습작생들의 고통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학인들이 아무리 어설픈 글을 써와도 그는 결코 무시하거나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공들여 작품을 읽어주었다. 조곤조곤 글의 장단점을 짚어주던 소설가가 언제나 격하게 반응하고 강조하는 부분은 글쟁이가 글을 대하는 마음이었다. 학인들이 얼마나 진솔하게, 얼마나 뜨겁게 글을 쓰고 있는지. 날 것 그대로의 자기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지. 특히나 그는 사랑 이야기가 나오면 민감하게 반응했다.

“인생 선배로서 얘기해 주자면 사랑이라는 감정은 쉽게 오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꼭 알아야 해요. 제 경험상으로는 한 사람에게 진짜 기억할 만한 사랑이라는 건 딱 두 번쯤 오는 것 같습니다. 그게 다예요. 평생 그리워하며 추억할 사람, 생각보다 쉽게 오는 인연이 아닙니다. 지금 누가 옆에 있든 쉽게 버리지 마세요. 그냥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환갑이 다 된 소설가는 수업 중이건, 술자리에서건 눈시울까지 붉혀가며 반복해 말했다. 아마도 그는 인생 전체를 걸고 누군가를 정확히 사랑해 본, 사랑 때문에 처절하게 아파 본 진정한 사랑꾼인 듯했다. 나는 그가 사랑에 대해 말할 때마다 중혁이 아닌 다른 남자들을 떠올렸다. 윤석과 승준 오빠, 그리고 유진, 동호, 나의 한 시절을 견디게 해 줬던 남자들을. 그리고 나는 그들과 한창 연애 중일 때도 늘 다른 사람, 그곳이 아닌 다른 곳을 탐하며 두리번거리기만 했었다는 생각. 앞으로도 나는 누군가에게 정착해서 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예감. 그게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다가 끝내 이혼한 부모 탓인지, 자존감이 낮아서 그때그때 만만한 상대에게만 마음을 준 탓인지, 아니면 나라는 인간은 원래 만족을 모르는 족속인 건지는 헷갈렸다.

소설 창작 수업에는 늘 뒤풀이 시간이 있었다.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음주 가무는 신나는 일이었다. 소설가는 한 번도 뒤풀이 자리에 빠진 적이 없었고 선뜻 술값을 내주기도 여러 번이었다. 나는 그곳에서도 딱 한 편의 소설을 썼다. 나의 치부와 같은 가족에 관한 이야기였다. 학인들은 나의 소설을 보고 전형적인 첫 소설답다며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나는 그들 앞에서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을 다짐했다. 대학이라는 곳이 이런 분위기였다면, 다 같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동아리라도 하나 있었다면, 그런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수업은 알차게 운영됐다.

한 학기쯤 수업이 진행됐을 때 재단은 운영상의 문제로 문을 닫는다고 했다. 이제 막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는데 이대로 끝이라니, 우리는 마지막 만남에서 밤새 술을 마셨다. 그날 만취한 소설가는 더욱 쓸쓸해 보였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술에 취한 그는 처음으로 글로 먹고사는 일의 비루함, 작가들의 가난한 현실에 관해 이야기했다.

“지금 삶이 행복하다면 글을 쓰지 않는 게 좋아. 아니 행복하면 글이 써지질 않지. 그냥 행복하기만 해도 바쁜 나날일 테니까. 하지만 인생이 그렇지 않잖아.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들 정도로 불행한 시간이 찾아오지. 그럴 때 겨우겨우 써지는 거야.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글을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는 사람이 작가가 되는 거지. 근데 그렇게 말하니까 너무 쓸쓸하잖아. 사람은 궁극적으로 다들 행복해지고 싶은 건데, 슬픈 글을 쓰면서 행복을 찾다니, 뭔가 아이러니하지 않아? 그렇게 따지면 인생은 다 아이러니다. 아이러니야.”

급기야 그는 우리에게 이제라도 글을 쓰지 않고 사는 삶을 살아보라고 말했다. 내가 좇는 꿈이 그토록 허망한 길이라니,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술을 받아 마셨다. 우리는 맥주에서 소주로, 다시 라면으로 해장을 하고 맥주로 갈아타며 술집을 돌았다. 우리가 갈지자걸음으로 마지막 술집을 나왔을 때는 거리가 온통 새파랬다. 새벽이 그토록 새파랗고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라는 걸 나는 그때 처음 느꼈다.

“새, 벽, 새로운 벽이구나.”

나만 느끼는 게 아니었는지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고 그 말에 몇몇이 낄낄거렸다. 어렴풋이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추웠고 너무 외로웠다. 당장 누군가에게 미치도록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혁은 너무 멀리 있었다. 그때 나를 부축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술자리에서 내내 나의 비위를 맞춰주던 나이가 지긋한 대필 작가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근처 모텔에 들어갔다. 그가 누구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그의 품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절정을 느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그는 곁에 없었고, 휴대전화로 장문의 문자가 와 있었다. 그는 앞으로 우리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날 밤 그는 나를 제대로 돌봐주었지만, 나는 답문을 하지 않았다. 그는 메일로 한 편의 시와 긴 글을 보내왔다. ‘나 오늘 그대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는다니’, 그는 어른이었다.

나는 금세 지하철로 출근, 학원, 퇴근, 맥주 마시기의 생활패턴으로 돌아갔다. 궁극에는 글 쓰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에까지 이르며 나는 소설을 잊어갔다. 무언가를 해보자고 마음먹기는 어려웠지만 그만하자는 마음은 따로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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