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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박 Dec 03. 2019

태어난 김에 사는 사람

불효녀는 웁니다


나는 부정적이야


사는 게 재미없다 라고 느낀 건 언제부터였는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열심히 일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별 다른 성과도 없고 나이만 먹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든 건가 싶기도 하다.


나는 예전부터 일을 열심히 해왔다. 처음에는 스스로 돈을 벌기도 하고 주체적으로? 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무엇을 위해 사는지.

내가 목표하는 것이 무엇인지 불분명해지면서.

자꾸만 한 가지 일을 끝까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고.

 잘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는 것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의 감기가 왔는지도 모른다.



불안 및 우울에 의한 수면장애 판정은 학교를 그만둔 21살 때 처음 받았다.

불면증이 너무 심해 병원을 혼자 찾았을 때였다.


그렇다고 별게 있는 건 아니고.

꾸준히 정신과를 다니면서 상담을 받고 약을 챙겨 먹다 보니 일상생활에는 전혀 지장 없게 되었다.

약을 먹으면 처음엔 힘들지만 잠도 곧 잘 온다.

그러다 잠에서 깨면 다시 열심히 살아가는 일상의 반복. 차츰 익숙해졌다.

그리고

부모님에게는 이 사실을 비밀로 했다.


알아봤자 좋을 것 없고 해결되는 것 없이 걱정만 하겠지?


뜻하지 않은 효심이 발동되었다.



여전히 나는 일을 열심히 한다.

일을 하는 순간에는 잡생각을 잊을 수 있다.

몸이 편한 일보다 정신없이 체력이 소진되는 일을 찾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일도 하고, 돈도 벌고, 우울함도 잊고! 무려 일석삼조네!


하지만 혼자 있는 밤에는 여전히 잠들지 못하고 감기와 싸우고 있는 나 자신.


태어난 김에 사는 거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내 선택이 아니기에 태어났으니 하루하루 사는 거야 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살았던 어느 날.


손을 많이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오른손에 문제가 생겼고 엄마 손에 이끌려 한의원에 간 그날이었다.


마주 보고 있는 침대에 각각

엄마는 어깨를 나는 오른손을 치료받기 위해 사이좋게 누워있었다.

선생님은 나의 손부터 봐주셨는데, 손뿐만 아니고 연결된 어깨와 목까지 차분히 짚어주셨다.

일하느라 어찌나 뭉쳐있었는지

누르는 족족 억누르려 노력했던 비명이 나왔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엄마가 커튼으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아 나 도저히 못 보겠다


뜻하지 않게 엄마의 눈물이 터져버린 것.


너무 갑작스러워서 내 심장도 터지는 것 같았다.

사실 별게 아니지 않은가.

그냥 뭉쳐있던 근육 때문에 아픈 건데?

무엇이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은 거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면서도 나 또한 울컥했다.


엄마는 내가 힘들고 아프다는 그 자체가 견디기 힘들었던 걸까?

나는 단순히 태어난 김에 살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엄마의 세상은 모조리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날을 계기로 조금씩 생각을 바꿔보려 노력하고 있다. 사는 게 아직도 재미없지만 태어난 김에 살지는 말자.

태어났으니 선택받은 거라고.

엄마에게 나란 존재는 어쩌면 간절히 원했던 선물 같은 존재라고 스스로 다독인다.


행복하자. 이제라도.

그것만이 엄마에게는 전부일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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