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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박 Dec 02. 2019

저 이제 '수신거부'하려고요

점점 더 좋아지는 세상 속에서


혼자 있을래


하루에 수십 번도 아니, 수백 번도 더 카톡을 확인한다. 혹시 와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메시지를 기다리며.


카카오톡이라는 메신저가 언제부터 생겼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의 절반은 카톡 때문이다.

 속한 단톡 방부터, 시시콜콜한 개인 톡까지 나에게 말 거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기분은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기대가 크면 실망하듯이 어떤 날은 단 한통의 메시지도 오지 않고,

이제 신경 안 써야지. 다짐하지만 막상 또 메시지가 도착하면 드는 희열감. 순된 감정의 반복.



초등학교 때는 핸드폰이 없어서 항상 전화카드를 들고 다녔다. 학교 입구에는 공중전화가 한대 있었는데 학교 끝나고 친구 집에 놀러 갈 일이 생기면 항상 전화카드를 꽂아 넣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ㅇㅇ이 집에 놀러 갈게!


전화카드가 없는 날은 콜렉트콜로 걸었다.

그만큼 누군가에게 연락을 한다는 건 큰 마음을 먹고 하는 것이었다. 받는 사람도, 거는 사람도 모두가 긴장되는 연락하는 그 순간.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드디어 핸드폰이 생겼다. 문자 1통을 보내기 위해 감수하는 비용과 '통화 100분 무료'라는 제한 속에서, 누군가에게 연락을 한다는 건 역시나 상대를 생각하며 꼭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세상이 점점 좋아지면서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는 건 이제 일도 아니다. 심지어 번호를 알지 못해도 카카오톡 친구를 할 수 있고 그걸 통해 통화도 할 수 있는 세상이다.

내가 보낸 메시지는 상대방이 읽었는지도 확인이 가능하며, 다수랑 함께하는 채팅방에서는 몇 명이 읽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언제나 쉽게 연락할 수 있게 된 이 세상 속에서 히려 더 허무함에 빠진다.

내가 보낸 메시지를 상대방은 쉽게 생각하고 미리 보고 말아 버리는 이 굴레 속에서. (나 또한 그러니)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마저 느낀다.


연락이란 게 이제 정말 소중하긴 한 걸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는 쯔음.

 '버디버디'라는 메신저가 유행이었다. 컴퓨터로 접속하면 내가 어떤 상태인지 설정할 수가 있고, 접속 한 사람들에게 쪽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중 '수신거부'를 설정하면 자발적으로 모든 쪽지를 받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요즘은 이 수신거부 기능이 너무 그립다.

내가 자의적으로 모든 연락을 거부하는 상태면 상대방이 보낸 메시지로 일희일비하지 않지는 않을까.

오늘도 카톡창을 계속 열어보는 아침을 맞으며.



좋아진 이 세상 속에서
이제 저 모든 것에 수신 거부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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