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적 상관
착각적 상관 : 두 사건에서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데 상관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
오늘은 뭔가 고약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각오하고 들어주세요.
남편을 만나기 전의 저는 생리적 현상에 대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장이 안 좋아서 일까요? 아니면 타고난 걸까요? 제 방귀는 냄새가 참으로 고약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참 고~~~약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방귀가 나올까 봐 한껏 엉덩이에 힘을 주고 참기도 참았고, 가끔 저도 모르게 트림이 나와버릴 때면 귀까지 빨개지고는 했습니다.
얼마나 창피했던지 방귀를 참고 또 참다가 나중에는 뱃속이 땡땡해짐을 느낀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를 옭아매던 ‘생리현상의 쪽팔림’이라는 족쇄는 남편을 만나고 서서히 풀려갔습니다.
독한 방귀 아우라가 스멀스멀 피어날 때면 그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껄껄 웃으며 제게 얘기했어요. 몸에서 일어나는 생리현상은 전혀 더러운 것이 아니라고, 사랑하는 사람의 몸에서 느껴지는 모든 일들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니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한결같이 편안하게 대해주는 그를 보며 저도 서서히 바뀌어갔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니면 아이 둘 낳은 아줌마가 되어서 뻔뻔이라는 기능이 업그레이드가 된 걸까요? 저는 그를 만나서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생리적인 현상을 제외한 나머지 뻔뻔함은 이미 학교라는 곳에 발을 디디는 시점부터 장착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생리현상 중에서도 특히 방귀는 참 부끄러웠습니다. 아마도 독하디 독한 냄새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방귀로 인한 쪽팔림의 족쇄로부터 자유로워진 저는 마구 껴대지는 않지만 이제 대놓고 ‘방귀껴서 미안하다.’ ‘내가 꼈다’등 자진신고를 하고 사과도 할 줄 아는 넉넉함을 장착한 영혼이 되었습니다. 제대로 성숙한 영혼이 된 것이지요.
허나 코가 얼얼해질 정도로 독한 방귀는 저만으로 끝날 줄 알았던 것은 착각 중의 착각이었나 봅니다.
아니나 다를까, 피는 못 속인다지요. 우리 집 1호의 방귀 냄새는 참으로 저와 똑! 같습니다. 심지어 결도 같아서 종종 헷갈리기까지 했어요. 아이 방귀 냄새를 맡고 슬쩍 제 엉덩이를 확인해본 적도 있다니까요. 방귀 냄새까지 이토록 닮을 수도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했습니다. 아이를 낳고 알아가는 신세계였다니까요.
엄마와 똑같은 아이의 방귀 냄새를 맡을 때면 남편과 저는 종종 웃으며 눈이 마주칩니다.
‘여보?’
‘나 아닌데요? 훗, 그럼?’
신기한 것도 잠시 요즘은 이런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혹여라도 아이가 크면서 제가 차고 있던 족쇄가 아이에게도 채워질까, 그것 때문에 너무 창피해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말입니다. 이런 제 마음을 남편도 눈치를 챈 걸까요? 얼마 전부터 마치 둘이서 약속이나 한 듯이 시작된 행동이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코에 매우 익숙한 방귀 냄새가 솔~솔~ 느껴질 때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쳤습니다.
“사랑해요!!”
엥? 뜬금없이 사랑고백?
물론 리액션 충만한 우리 집에서는 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특히나 독한 방귀를 감내해주려면 아주 깊고도 진한 사랑이 필요하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보여고자 했습니다. 때로는 방귀를 뀐사람이 뀜과 동시에 자진해서 사랑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내 방귀를 기꺼이 감당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실어 외쳤습니다.
“사랑해요” “알러뷰” “대빵 많이 사랑해요” “엄청, 엄청, 엄~~~~~청 많이 사랑해요”
눈치채셨죠? 냄새의 강도를.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 저도 사랑합니다!! 를 외치고 있는데 혹시 느끼셨나요? 푸핫!
아시다시피 방귀와 사랑은 사실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관관계가 매우 확실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사람의 방귀 냄새는 내 코가 썩어 들어갈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순간적으로 구수하다고 착각에 빠질 수도 있을 정도라면 말이지요.
가끔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닦아내다가 내 손에 아주 티끌만큼이라도 묻기라도 한다면 우웩 하고 난리였던 제가 아이를 낳고 나니, 제 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아이의 응가를 가지고 저글링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상관이 있는 그런 착각.
혹시라도 하나 갖고 있지 않으신가요? 30년이 지난 당신은 또 다른 어떤 착각적 상관으로 인한 추억을 가지고 계실까요?
1호는 우리의 바램대로 단단하게 잘 장착하는 중입니다. 이 글을 적는 오늘도 ‘뿡~~’ 소리와 함께 ‘사랑해요!!’를 목청껏 외쳤거든요.
착각적 상관이었던 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착각을 뺀 상관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고서야 알았습니다. 언제까지 이 착각이 현실이라는 색깔로 보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뭐 어떻습니까? 생리적인 현상은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당신이 살고 계신 그 시간에도 여전히 자유로운 영혼이길, 그리고 또 다른 아름다운 착각적 상관이 떠올라 저에게 이야기해주시길 바래봅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