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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옥수수 Jul 26. 2023

교사가 죽었다.

[지각대장 샘] / 이루리 글, 주앙 바즈 드 카르발류 그림 / 북극곰

교사가 죽었다.


1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를 계기로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애쓰고 있던 교사들은 지금까지 홀로 감추고 있던 이야기를,

자신들의 개인적인 아픔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충격적인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그저 자신을 때리려 하는 학생의 팔을 막았을 뿐인데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교사.


"우리 애 아빠가 많이 화가 났어요."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협박을 듣는 교사.


학교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 학생의 학부모 모두에게 원색적인 모욕을 듣는 교사.


"공부를 못해서 고작 그런 일이나 하는 주제에"라는 말을 듣는 교행 공무원.


그리고...


교사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서 몰려온 교사들에게조차 다시 외면당한 어느 자살한 기간제 교사.




존은 아침마다 뜻하지 않은 일 때문에 지각을 한다.


그때마다 존은 차분하게 지각한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하수구에서 나온 악어가 가방을 물고 놔주지 않아서,

덤불에서 사자가 나와 바지를 물어뜯어서,

산더미 같은 파도에 휩쓸려서,


하지만 선생님은 존의 말을 전혀 믿지 않고 그저 윽박지르기만 하고 혼내고 벌을 준다.


<지각대장 존>에 나오는 선생님은 주인공 존보다 훨씬 덩치도 크고 이빨도 무시무시하다.

그에 반해 존은 언제나 작고 기죽어 있다.


아이들과 이 그림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떤 아이들은 그림책 속 선생님이 너무 무섭다고 했다.

확실히 <지각대장 존>의 선생님은 당장이라도 존을 한 입에 잡아먹을 것처럼 생겼다.



존 버닝햄의 <지각대장 존>을 우리나라 작가가 다시 해석해 그린 그림책이 있다.


<지각대장 샘>에 나오는 지각대장 샘 이기픈 마르지 안나니는 학교 선생님이다.

날마다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서지만, 원작의 존과 마찬가지로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매일 지각한다.


샘은 자초지종을 설명하지만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을 믿지 않는다.

믿지도 않을 뿐 아니라, 샘의 말을 듣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존을 무시하는 교사와,

샘을 무시하는 학생들.

둘 중 어느 쪽이 더 폭력적일까?




당연히 선생님 쪽이지!


라고 많이 생각할 것 같다.

존은 아직 작고 어린아이에 불과한 반면, 샘은 어쨌든 다 큰  선생님이니까.


하지만 존을 괴롭혔던 것은 단 한 명이었던 반면,

샘을 괴롭혔던 아이들은 반 아이들 전부였다.


나는 적어도 지각대장 샘 선생님이 존만큼이나 괴롭지 않았을까 상상했다.



상상해 보자.

그날따라 아침에 힘든 일이 많아 지각할 수밖에 없었던 하루.


교실에 스무 개는 넘는 눈이 질책하고 무시하는 눈빛으로

앞에 선 당신을 노려보고 있다면 말이다.


머쓱하기도 하고 창피한 기분을 애써 감추고

어째서 늦을 수밖에 없었는지 솔직하게 설명했지만,

여전히 그 수많은 눈들이 경멸을 담아 당신을 보고 있다면


그들이 모두 아직 어린아이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비참한 기분을 당신은 전혀 느끼지 않을 것 같은지.




교사도 인간이다.


어린아이들에게 인권이 있는 동시에


아이를 기르는 엄마에게도,

가르치는 교사에게도,

모두 똑같은 인권을 가지고 있다.




<지각대장 존>은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그림책이다.

아이의 순수함과 엉뚱함이 돋보이는 동시에 어느 세대에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지각대장 샘>의 이야기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도,

실은 순수하고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부디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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