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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옥수수 Jun 28. 2023

이렇게 더운 여름에

구름 공항 / 데이비드 위즈너 / 시공주니어 / 2017

자연과 아주 먼 도시에서 살고 있다. 

공원이라도 가고 싶으면 제법 멀리까지 걸어가야 한다.


그나마 자연이라고 할 만한 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아스팔트 길 틈새에 핀 민들레, 

이름을 알 수 없는 들풀, 

벽돌 사이에 낀 이끼 같은 것들.


혹은 고개를 위로 올려야 한다. 


바람에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 너머 하늘을 보기 위해서.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동네작은도서관에서 자리를 지킨다. 


이 날에 소피는 어린이집 하원 버스를 타고 도서관 근처로 온다.

나는 소피와 동네 슈퍼로 가서 과자와 음료수를 사 주고 같이 도서관에 온다. 




"소피. 엄마는 도서관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 부엌에서 과자 먹고 있어."

"네. 엄마, 그런데 할 말이 있어요."


내가 사랑하는 소피는 언제나 말을 돌려서 한다. 

남편의 말버릇이다. 


사실 내 말버릇이기도 하다.


나는 한숨을 꾹 참고 물어보았다.


"할 말이 뭔데?"

"뭔가 보면서 과자 먹어도 돼요?"

"뭔가가 뭔데?"


그 '뭔가'가 뭔지 나는 잘 알고 있지만 못 알아듣는 척했다.

그리고 소피는 나의 못 알아듣는 척에 넘어가지 않고 다시 말했다. 


"영상이요. 영상 보면서 과자 먹어도 돼요?"


노트북이나 태블릿, 스마트폰에서 볼 수 있는 영상을 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나는 약간 엄격한 말투로 대답했다.


"안 돼. 여긴 도서관이잖아. 차라리 책을 읽어."

"그러면 그림책 읽어주세요."


"읽어주지 않아도 되는 그림책을 찾아다 줄게."


그렇게 나는 글이 없는 그림책 [구름 공항]을 아이에게 가져다주었다.




데이비드 위즈너의 [구름 공항]은 2000년에 칼데콧 아너상을 받은 작품이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풍경이 상상력의 힘으로 생기 있고 특별한 공간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현실을 변형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그림책이라는 장르가 가진 에너지를 근사하게 보여준다. 


소년은 86층 전망대에서 자신의 빨간 모자와 머플러로 짓궂은 장난을 거는 꼬마구름을 만난다.


초고층 전망대, 

눈앞이 안 보이는 뿌연 안개, 

그리고 생기 넘치는 꼬마구름. 


무언가 설렘과 긴장감이 가득한 그 현장에서 소년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꼬마구름과 한바탕 논다. 


꼬마구름은 온갖 구름들이 날아가기를 기다리는 구름 공항으로 소년을 데려간다.

구름 공항에서 소년은 구름들과 친구가 된다.





소년은 구름들의 불만을 듣게 된다.


너무 평범한 모양이라는 것이다.


구름들을 위해 소년은 온갖 물고기 그림을 그려준다. 


소년의 그림을 본 구름들은 그림과 똑같이 생긴 물고기 모양으로 변신한다. 





"제목을 뭐라고 읽는 거예요?"

"[구름 공항]."


나는 또박또박 제목을 읽어주었다. 


소피는 제목을 읽을 때만 내 도움을 받고, 그 안에 있는 내용을 스스로 읽었다. 


한 페이지씩 넘겨가며 소년과 꼬마 구름의 모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나는 소피의 목소리로 소년이 어떻게 구름과 만났는지,


구름 공항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마지막에 소년과 꼬마 구름의 모험이 어떻게 끝났는지 들을 수 있었다.


소피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별말 없이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갔다.




일곱 시. 도서관 문을 닫고 소피와 집으로 갔다.


아직 여름 하늘에는 해가 떠 있었다. 노을이 구름을 분홍색으로 물들였다. 


"엄마. 저것 좀 봐요."


소피가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나도 소피를 따라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았다. 


"물고기 모양이에요!"


정말로 커다란 물고기 모양 구름이 있었다. 


우리는 우리 둘만의 비밀을 공유한 사람답게 서로를 보고 킬킬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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