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란옥수수 Aug 07. 2023

덥다.

달 샤베트 / 백희나 / 책읽는곰 / 2014


덥다.

검색창에 날씨를 검색하니, 내가 사는 지역은 폭염경보인 상태이다. 

다른 지역도 대부분 폭염경보이거나 주의보가 울려져 있다. 

밤새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방에서 나와 문밖에 나가는 것만으로 숨이 막힌다.

이런 날씨에는 항상 생각이 나는 그림책이 있다.




달이 녹아서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무더운 어느 여름밤,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모두 문을 꼭 닫고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고 저마다 텔레비전에 눈을 고정했다. 


부지런한 반장 할머니만 달 물이 똑똑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재빨리 밖에 나갔다.

그리고  말갛게 빛나는 달 물을 받았다.

반장 할머니는 노오란 달 물을 틀에 나누어 담아 냉동실에 넣어 얼렸다. 



너무 더워서 그런 걸까, 모두가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서 그런 것일까.

앗. 전기가 나가고 말았다. 

불이 꺼져 집은 어두워지고,

텔레비전이 꺼져 심심해지고,

에어컨과 선풍기가 꺼져 더워졌다. 딱 바깥만큼.


그런데 녹은 달 물을 가지고 있는 반장 할머니의 집에서 밝고 노란 빛이 새어나왔다. 

할머니는 더위에 녹을 지경인 주민들에게 하나씩 얼린 달 샤베트를 나누어준다.


어른에게도, 노인과 아이에게도 공평하게 하나씩.

달 샤베트를 나누어 먹은 주민들은 어느새 더위가 싹 달아나 버렸다. 




마치 지금 우리 집 이야기 같다. 반장 할머니네 말고, 그 옆에 에어컨을 실컷 틀고 누워 있는 집 말이다. 

주말 내내 나는 에어컨 바람을 세게 틀어놓은 방에서 절대 나가지 않고

선풍기를 얼굴 가까이에 틀어 놓고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남편은 나보다도 더위를 힘들어하면서 옥상에 올라가 젖은 수건을 널었다. 

소피는 내 옆에서 태블릿 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흥이 나면 침대 위를 콩콩 뛰며 나름대로 운동을 했다. 


나는 도무지 두 사람만큼도 움직일 수 없었다. 

열기 그 자체가 내 몸을 얽어 매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달에서 살고 있던 옥토끼가 반장 할머니를 찾아 왔다.

달이 녹아버려서 살 곳을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말하면서.

참으로 난감한 하소연이다. 


달이 녹은 것이 반장 할머니의 잘못은 아니지만,

옥토끼가 살던 달의 녹은 물을 얼려 아파트 주민들과 나눠 먹은 것은 사실이라서.

반장 할머니는 옥토끼가 살던 집을 많은 사람들의 뱃속에 집어 넣은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을까...


반장 할머니는 아이스바를 만들고 남은 달 물을 화분에 부었다. 

달처럼 환한 달맞이꽃이 화분에서 피어났고, 어느새 하늘에는 보름달이 피어났다.




아아. 우리 옆집에는 왜 이런 기가 막힌 달 물을 가진 할머니가 살지 않으시는 것일까.

달고 시원한 달 샤베트로 모두의 더위를 식혀준 데다가

새로운 달까지 피어나게 해 주는 기가 막힌 반장 할머니가 없어서

내가 지금 이렇게 더운 거라고 혼자 한탄해 본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따위는 조금도 하지 않은 채로.

이전 12화 교사가 죽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