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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옥수수 Aug 17. 2023

고소하고, 바삭하고, 달콤하고,

벚꽃 팝콘 / 백유연 / 웅진주니어 / 

어느 작은도서관에 그림책 수업을 하러 간 날이었다. 

어린이집이 끝나고 엄마 손을 잡고 작은도서관으로 온 아이들이 저마다 뭔가 하나씩 들고 왔다. 아마도 어린이집에서 무언가 만들어 온 것 같았다.


접시에 팝콘과 막대과자를 올리고 그 위에 분홍색 초콜렛을 올려 굳힌 것이었다. 

막대 과자는 벚나무의 줄기와 넓게 뻗어 나간 가지가 되고, 팝콘은 흐드러진 벚꽃을 대신했다. 




그림책 <벚꽃 팝콘>은 귀여운 동물들이 꽃과 함께 하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다.


겨우내 굶어서 너무 배가 고팠던 동물들은 팝콘을 만들어 먹기로 한다. 


성냥으로 불을 붙여 돌판을 달구고,

유채기름을 붓고,

옥수수알을 넣고,

마지막으로 허브 가루를 뿌려서...


펑-!


고소하고 바삭한 팝콘이 완성된다.


다람쥐, 곰, 토끼, 고라니, 멧돼지, 그리고 고소한 냄새를 맡고 날아온 새들과 함께 

팝콘을 나누어 먹자 금새 팝콘은 거덜나고, 

아직 배가 차지 못한 동물들은 시무룩해진다.


"이번에는 우리가 구해올게!"


이번에는 옥수수 대신 새가 씨앗들을 물어와 다시 돌판 위에 올렸다.

아까보다 더 맛있게 먹기 위해 아껴 놓았던 꿀도 꺼냈다. 


다시 한 번

펑-!


이번에는 씨앗이 부풀더니 향긋한 벚꽃이 되어 날아가,

다시 동물들을 행복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나는 아이들이 저마다 자기의 접시에 피워낸 벚나무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다음 달 다른 작은도서관에서 수업을 할 기회가 생기자 책정된 재료비를 박박 긁어모았다.

'벚꽃 팝콘 만들기' 활동을 위해서였다.

그 때는 이미 벚꽃이 져서, 벚꽃과 관계된 활동을 하기에는 계절감이 좀 어긋난다는 것은

그다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조금 신경쓰였지만 무시했다.


나는 재료비를 많이 쓰는 그림책 강사다. 

나는 수업 때마다 무엇이든 좋으니, 

무언가 그럴듯해 보이는 것, 

멋져 보이는 것, 

아이들이 뿌듯해하며 집에 가서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을 만들게 해주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서 중요한 건 역시 재료비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이다. 

재료비는 한정되어 있으니까. 


사실 '벚꽃 팝콘'을 꾸미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일회용 접시와, 비닐 봉지, 그리고 과자들과 초콜릿 펜이다. 


그런데도 재료를 구하러 다니며 나는 충격을 받았다. 

과자가 이렇게 비싼 음식이었나? 

고작 막대 과자에 팝콘, 그리고 초콜릿 펜을 한 사람당 하나씩 나누어 주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나는 예산은 조금 무리해서 사용하고, 조금 발품을 팔아 가까운 슈퍼가 아닌 조금 먼 마트까지 가고, 맛있는 캐러멜 팝콘 대신 대용량의 뻥튀기 과자를 샀다. 한 사람당 초콜릿 펜 하나씩 돌아가는 것까지는 양보할 수 없었다. 



그래. 그 때는 내가 그 아이들을 처음으로 만난 날이었다. 

지금은 나만 보면 방긋 방긋 웃으면서 장난을 걸 만큼 친해졌지만, 그 때는 서로가 어색하던 날. 

오늘 수업이 재미있게 끝나지 않으면 어쩌나, 너무 많은 걱정을 하던 날. 


달콤한 초콜릿으로 팝콘과 막대과자를 접시에 고정시키라고 나누어줬더니 

입에 가져가 쪽쪽 빨아먹는 아이들을 말리면서도,


한 페이지씩 넘겨주는 그림책에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들의 표정에,

나는 참 행복했다. 



꼭 눈 앞에서 벚꽃이, 팝콘이 툭툭 터져나가는 것을 눈 앞에서 본 작은 동물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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