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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옥수수 Sep 24. 2023

엄마 아빠 사이 끼인 날

끼인 날 / 김고은 / 천개의바람

아이들은 언제나 엄마와 아빠 사이에 끼인 존재다.


특히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부부 사이에 끼인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주인공은 오늘따라 끼여 있는 동물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구름 사이에 끼어 있는 강아지를, 

할머니의 주름살 사이에 낀 모기를,

맨홀 구멍에 낀 펭귄을,

쓰레기통에 낀 곰을.


주인공은 사이에 끼어서 꼼짝도 못해 괴로워하는 동물들을 하나씩 구해준다.

동물들은 모두 어쩔 수 없이 끼고 만 상태에 괴로워하고,

자신들을 구해준 주인공에게 고마워한다.


그런데 엄마와 아빠 사이에 끼어서 도통 나갈 생각이 없는 요정이 등장한다.

그것은 두 사람을 계속 싸우도록 부추기는 싸움 요정이었다. 

주인공은 싸움 요정을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빼려고 하지만,

요정들은 오히려 요지부동이다.


"싫어! 싫어! 여기서 천년만년 있을 거야!"





나도 내 남편과 크게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서로가 생각을 굽히지 않았고,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목소리를 높이고 그 크기를 키웠다.


그 날 우리의 부부싸움을 멈추게 만든 것은 소피였다.

나와 남편 사이를 오가며 싸움이 어째서 나쁜지 진지하게 설교했다.


소피의 잔소리 혹은 설교가 듣기 싫었던 우리는 서로 다른 자리에 누워버렸다.

소피는 우리가 모두 입을 닫고 누웠는데도 (체감상) 한 시간 이상 계속 잔소리를 했다.


소피의 태도는 실로 진지했다. 그 진지함에 우리는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엄마와 아빠가 싸울 때, 나는 항상 피아노를 쳤다.

싸우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피아노를 열심히 치다 보면 어느새 엄마 기분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것 봐. 우리 딸 피아노 소리 참 좋네."


그런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면 그 날 부모님의 부부 싸움은 끝났다고 봐도 좋았다.

아주 어린 나이였는데도, 그림책 [끼인 날]의 주인공처럼 나도 

부모님이 싸우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끼인 날]의 주인공은 나와 소피보다 훨씬 유쾌한 방법을 썼다.

싸움 요정들이 도망갈 때까지 간질간질 간지럼을 태운 것이었다.

싸움 요정들은 주인공의 엄마 아빠 사이에서 나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깔깔 웃어버린 요정들은 힘을 잃고 날아갔다.


아마도 싸움 요정들은 웃거나 기분이 좋아지면 힘을 쓰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면 나와 남편도 그랬다. 

사이에 낀 소피가 우리 둘을 화해시키려는 진지함에 오히려 웃음이 터지고

계속 싸울 필요를 더 느끼지 않게 되었다. 


웃음에는 사이에 낀 싸움 요정을 도망가게 하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끼인 날]의 주인공은 작은 소파에 끼인

엄마와 아빠 사이에 끼어 있는 게 좋다고 했다.


남편과 꼭 껴안고 누워 있으면 꼭 그 사이에 끼어드는 소피도 마찬가지일까?


오늘만큼은 남편과 싸우고 싶어도, 

나와 남편 사이에 끼어 있을 소피를 생각해 참아야겠다.

한 번 더 웃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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