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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옥수수 Jul 19. 2023

머리가 똑똑해서 키우기 어려운 거예요

안 돼, 데이비드! / 데이빗 섀논 / 주니어김영사 / 2020


우리 동네작은도서관 관장님한테 진지하게 여쭤보았다.     


"관장님. 우리 애는 절 사랑한대요."

"응. 그런데."


옆에 마침 소피도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사랑한다면서, 왜 제 말은 안 들을까요?"


관장님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져 갔다.

아니, 얼굴이 썩어 갔다.




[안 돼 데이비드!]는 아이를 포함해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그림책이다. 


말썽쟁이 데이비드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장난을 친다. 


욕조에 물이 흘러넘치도록 가득 틀어 놓고 해적 놀이를 하고, 


침대에서 신발을 신은 채로 방방 뛰고,


심지어 집안에서 야구 놀이를 하다 끝내 사고를 치고 만다. 



“그건 당연한 거지!”     


대답은 관장님이 아닌 소피가 대신했다. 

    

“그게 왜 당연한데?”     


“그러니까 아이들은 원래 당연히 그런 거야!”     


소피의 당당한 외침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관장님은 잠시 말을 멈추고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다가 이내 내 눈을 보고 말씀하셨다.      


“너는 네 엄마 안 사랑해서 말 안 들었니?”     

“어...”     


나는 할 말을 잃고 자리를 떠났다. 완패였다.      




개통령 강형욱님은 보더콜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게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걸 똑똑한 거로 생각하시더라고요.

똑똑함이라는 것을 '키우기 쉽겠네'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근데 얘네들은 머리가 똑똑해서 키우기가 어려운 거예요.

하고 싶은 욕구가 진짜 많은 거예요.

그 장면을 몇 번이나 다시 보았는지 모른다.      


그림책 속 데이비드나, 강아지 보더콜리나, 우리 애나 다 똑같았다.


똑똑하기 때문에,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에 


말을 안 듣는 것이었다니!




"사랑한다면서, 왜 제 말은 안 들을까요?"


관장님께 던진 나의 질문을 다시 곱씹었다. 사실 그 질문 속에 감춘 나의 진짜 마음은 이것이었다.


아이가 나를 불편하지 않게 했으면 좋겠어.


아침에 깨우면 바로 일어났으면 좋겠어. 


아니, 사실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스스로 세수했으면 좋겠어. 


사실은 아침이 되면 혼자 일어나서 혼자 세수하고, 알아서 밥 차려먹고, 옷 갈아입고, 


어린이집에 혼자 갔으면 좋겠어.


나를 편하게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




말도 안 되는 소망이었다. 이뤄질 수 없는 꿈이었다. 


그것을 아이가 이뤄주기를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데이빗에게 끊임없이 "안 돼!"라고 말하면 그만둘 줄 알았을 데이빗의 엄마는 끝내 어항을 깨뜨리고 풀 죽은 데이빗을 보고 어떤 기분이었을지 너무 알 것 같다.


내가 매일같이 느끼는 그 기분이었겠지.


왜 우리 애는 말을 안 들을까? 


왜 우리 애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까?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아이를 바꿀 수 있을까?


그렇지만 그런 방법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데이빗의 엄마는 가장 하고 싶은 한 마디만 한다.


사랑해.


나도 사랑스럽지만, 그만큼 나를 불편하게 하는 소피에게 말한다.


사랑해. 그리고 그건 안 돼. 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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