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시작하는 결심만큼 무언가를 내려놓는 결심도 중요하다.
최근 몇 개의 책 모임을 정리했다. 거창한 모임은 아니고 소소하고 줌이나 카톡으로 만나 책을 함께 읽는 모임이었지만 말이다. 가장 큰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였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신청했더니 결국 몸에 무리가 생긴 모양이었다.
5년 전 나는 허리 디스크 수술을 했다. 원인은 아마도 육아였을 터. 허리는 학생 때부터 좋지 않았지만 아프면 꼬박꼬박 병원에도 가고 치료를 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선 병원이 웬 말인가. 껌딱지 아이를 아기띠에 안고서 집안일을 했다. 허리가 아프면 진통제를 먹고 버티고 버텼다. 그러다가 결국 나는 119에 실려갔고 그렇게 원하지 않은 디스크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 후 재활을 1년여 동안 하다 보니 몸이 무척이나 근질근질했다. 이미 잉여로운 삶을 살고 있었지만 자발적 잉여인간이 아닌 비자발적 잉여인간이 되니 마음이 달라졌다. 일을 하라고 할 땐 하기 싫어 펑펑 놀았는데 이젠 자꾸 뭔가가 하고 싶은 거다. 어느 정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졌을 때 하나씩 모임에 나가보기 시작했고 뒤늦게 빠져든 공부는 왜 그리도 재밌던지. 미스터리였다.
그렇게 한 3년을 넘게 살았나 보다. 처음엔 눈도 안 떠졌던 새벽 6시에 저절로 눈이 떠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깨기 전이나 집에 없는 시간을 알뜰살뜰 이용해서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이런저런 자격증도 따보고 언젠가 다가올지도 모를 나의 제2인생을 기대하며 그렇게 하나씩 차곡차곡 나의 실력을 키워나갈 생각이었다.
지난주 토요일 거의 반나절을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극심한 통증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순간 일어날 수 없다는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허리에 좋다는 자세를 이리저리 취해보고 진통제를 먹으며 누워있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 때 옛날 생각이 나며 정신이 차려지는 느낌이었다.
아, 이제 무리하면 정말 안 되는 시기가 되었구나.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안 된다. 수술밖에 답이 없었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것저것 시작할 때 의욕에 앞서 의지만 있으면 못 할 것이 없다 외쳤지만 안 되는 건 안 된다. 주부에서 벗어나고 싶은 조급함에 스스로를 챙길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시작하는 마음만큼 필요할 땐 과감하게 하던 것을 내려놓는 용기도 필요하다.
이것저것 일을 벌이기만 하는 주부에게 가장 시급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