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축하해, 꾸스!
3년 전,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에 양수가 터졌다. 그렇게, 예정일보다 3주 빨리 엄마가 되었다. 37주 차에 태어났던 너는 2.9kg으로 무척 작았다. 네가 일찍 태어난 것이 내 탓 같았다. 나는 왜 너를 더 품지 못했나. 태교는커녕, 만삭 때 늘 새벽 세시까지 논문 마무리를 한다고 잠도 제대로 못 잤기 때문이다. 산후 호르몬 때문에 그 생각만 하면 아기에게 미안해서 더더욱 미칠 지경이었다. 그랬던 너는 오늘 세 살이 되었다. 작았던 신생아는 이제 오히려 또래보다 키가 큰 어린아이로 자랐다.
내 이름만 알고 살던 나에게 너는 "엄마"라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안겨주었다.
"엄마가 있어서 너무 행복해. 엄마를 사랑하니까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을 거야."
심지어 이런 말도 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랐다.
사실 너는 토를 한 적도 거의 없고 열이 난 적도 거의 없다. 그런 면에선 너는 "수월한" 아기였다. 태어나자마자 분유를 4온스 (120ml)씩 먹을 때부터 네가 대식가로 성장할 것임을 알아봤어야 했다. 그렇게 꿀떡꿀떡 먹어도 너는 토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양이 큰 아기를 붙들고 나는 미련하게 9개월간 모유 수유를 고집했다. 3주 더 품지 못한 미안함이었을까? 3주 일찍 태어난 것은 조기분만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의사가 속골반이 좁아서 자연 분만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네가 더 컸다면 아마 그 날 세 시간씩이나 힘을 주고도 오히려 제왕절개를 하러 갔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살이 포동포동 하게 오르지 않는 것이 내 탓 같아, 이를 악물고 버텨가며 수유를 했다. 3박 4일 콘퍼런스를 갔을 때는, 유축기를 들고 가서 세 시간마다 유축을 했다. 모유의 양이 줄어들까 봐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살이 접힐 정도로 포동포동 해지지 않는 것은 그저 네 체형임을 알게 되었다. 대신 너는 단단하고 기다란 아이로 크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울수록 겸허해진다. 모두에겐 타고난 체형과 타고난 먹성이 있기 때문이다. 모유를 먹고도 부족해해서 분유를 주는 날들이 늘었었다. 너는 4온스를 원샷하던 아기에서 우유 8온스 (240ml)를 원샷하는 돌쟁이가 되더니, 여전히 살이 포동포동 하진 않지만, 먹성은 좋은, 단단하고 기다란 세 살 아이가 되었다.
아침부터 미역국을 끓이면서 생일날 미역국 먹는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아이를 낳은 후부터, 왜 생일날 본인에게 축하를 할까? 정말 축하받아야 할 것은 엄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산후조리하며 먹는 그 미역국 말이다. 한창 우리 엄마가 나의 산후조리를 해주시던 때. 몸도 여전히 아프고 잠이 부족해서 모든 것이 꿈결처럼 몽롱하던 시절이다. 낮잠에서 깬 어느 날, 방 귀퉁이에 놓인 구운 고구마 하나를 보고 그렇게 울었다. 엄마는 그렇게 부지런히 내 삼시 세 끼를 챙기고 모유가 마르지 않도록 간식을 챙겼다. 나의 아들이 나의 수고를 결코 알 수 없듯, 나는 우리 엄마가 나에게 부은 수고를 절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내가 엄마의 청춘을 담보로 인생을 얻었다는 것을.
그래서 생일은 그런 날이 되었다. 우선 내가 엄마가 되었던 순간까지 기억이 거슬러 올라간다. 분만실엔 남편과 우리 엄마가 함께 있었다. 사실 꾸스가 세상에 나와서 가장 처음 만난 것이 우리 엄마였다. 아무런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던 나에게 "눈 떠서 아기 봐야지, "라고 말했던 것도 우리 엄마였다. 35년 전, 미국에서 말 그대로 독박 육아로 나를 키웠을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 그게 지금 내 모습 같기도 하다.
생일을 축하해, 꾸스. 열여덟 살이 되면 이 글을 보여주리라. 그때도 너의 한국말이 유창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