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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루토 Aug 23. 2020

[매일 크는 엄마] 미국 엄마들의 수면 교육

계속 울리라고요?

수면 교육을 믿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수면 교육의 “효과”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 보면, 실제로 수면 교육을 받고 토들러가 될 때까지 잘 잠드는 아기들이 있다. 다만, 수면 교육이 성장하는 신생아의 정서 발달 및 뇌발달에 아무런 (부정적) 영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수면 교육, 특히 CIO (cry it out method)라고 불리는 방법을 믿지 않는다. 말그대로 한국 엄마들 사이에서 퍼버식 울리기 수면 교육이라고 알려져 있다. 수면 교육이 수면만 해결해 주고 부모와 아이의 첫 관계 형성에 아무런 영향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특히나 신생아의 뇌가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방법에 아무런 영향도 없을 수가 없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첫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FTM: First Time Mom) 수면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들은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남편과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아기를 처음부터 길들여 독립적으로 자신의 침대에서 잠들 줄 아는 아이로 키우리라 결심했었다. 아기를 낳는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송두리째 바뀔 순 없다. 기필코 처음부터 아기를 길들이도록 하겠다. 이미 이 문장에서 보여지듯, 아기는 "길들여야하는" 대상으로 생각되었다. 아기의 수면은 우리에게 처음부터 정복 대상이었다. 제대로 된 수면 교육을 시행하기 위해서 유명한 육아서 <베이비 위스퍼러>를 정독했다.


꾸스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남편과 나는 드디어 마음을 먹고 수면 교육을 실행에 옮겼다. 나는 아이폰에서 노트앱을 켰다. 매일 매일 아기가 잠들 때까지 몇 분이 걸리는지를 기록할 예정이었다. 반드시 우는 시간이 줄어드리라 확신했다. 노트앱을 켜고 일층 부엌 식탁에 앉아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는 일은 고문이었다. 비명과도 같은 그 울음소리는 결코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매일 밤 그 고역같은 일을 견디며 나는 회의가 들었다. 남편에게 이건 정말 못해먹겠다며 이쯤에서 그냥 들어가봐야겠다고 말을 하면 남편이 팽팽하게 맞서며 나를 말렸다. 이래서 수면 교육을 제대로 진행하려면 둘 중 하나라도 심지가 굳어야 하는거라며. 신혼 부부에서 아기를 낳은 부부가 되어가는 과정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부딪칠 일 조차 없던 영역에서 새로운 난관에 부닥쳤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아기를 키우는 것이 옳은가 라는 큰 물음은 하루 하루 순간 속에서 구체적인 질문으로 매번 들이닥쳤다. 가령, 아기에게 어떻게 훈육을 할까, 아기가 사탕을 하나 더 달라고 하면 뭐라고 답을 할까, 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모두가 각자 다른 가정 환경 속에서 자랐고 알게 모르게 각자 부모님의 육아 방식을 고수하게 되는 면들이 있다. 혹은 자기 부모님의 육아 방식을 부정하게 되는 면들이 있다. 이 영역만큼은 개인의 가치와 신념이 첨예하게 대립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났다. 꾸스의 울음 시간표는 전혀 숫자가 줄어들지 않았다. 심지어 두 시간을 내리 운 적도 있었다. 목청이 나가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그건 포유류가 낼 수 있는 가장 절박한 비명이었다. 엄마와의 끈을 본능적으로 갈구하는 울음. 그럴때마다 아기의 울음소리로 인해 뇌세포 손상이 올 정도로 트라우마가 오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정말 찾아보니 그것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들이 많았다. 사실, 연구 결과를 다 떠나서라도, 이 수면법의 폭력성을 엄마로서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밖에 없었다. 적어도 나는 나의 아이를 이렇게 기르고 싶지 않다는 결단.




인간은 포유류 중에서 유일하게 제 새끼를 (인공적으로) 떼어놓는 동물이라고 한다. 남편은 강경했고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우리의 골이 깊어져 갔다. 밤이 오는게 두려울 정도로 큰 스트레스였다. 아기에게는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낮에는 아이의 모든 요구에 즉각 즉각 반응하며 애착을 쌓으면서 밤에는 그리하지 못했단 것은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전혀 일관된 교육법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저절로 수면 교육을 내려놓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포기한 것이었다. 적어도, 우리 아기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라는 결론을 내렸고 더 이상 이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부부간의 싸움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아기를 재운다는 것이 40분간 아기띠를 하고 아기를 안은 채로 서성여야하는 것이라 할지언정, 그 노동을 차라리 감내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몸은 피곤할지언정 이 결정으로 인해 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본능적으로 옳은 선택을 내린 것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아기가 잠을 자지 않는 상황은 영원할 것이 아니었기에.


실제로 자주 가는 포틀랜드 엄마들의 커뮤니티들 중 수면 교육에 반대하며 좀 더 젠틀한 방식으로 (gentle approach) 수면을 유도하고 함께 잠드는 (co-sleeping 혹은 contact nap) 것을 장려하는 모임이 있다. 대부분의 미국 엄마들이 아기를 키울 때 아주 어린 나이부터 독립적으로 키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엄마들이 최근 들어 수면 교육의 당위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신생아 시절 아기가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울음인데, 그 울음에 부모가 답을 하지 않는 경우 부모에 대한 제대로 된 애착과 신뢰를 쌓을 수가 없다. 신생아의 울음 소리가 공기를 가르고 귀를 찢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스스로가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래야만 부모가 아기의 필요를 눈치채고 달려올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잘 알듯 아기는 세살이 되기까지 무섭게 빠른 속도로 뇌가 발전한다. 이 때 뇌세포들이 새로운 회로를 지으며 신경과 뉴런이 연결되고 각종 언어 능력, 감각, 신체 능력등이 발달하는데, 세 살이 되기까지 제대로 된 자극을 받지 못하는 기관은 발달할 기회를 잃은 채 퇴화하게 된다고 한다. 이 시기에 부모가 아기의 울음에 답하지 않았을 경우 아기들은 그 부분에 있어 부모와 신뢰를 쌓으며 자랄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아무리 울어도 부모가 달려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들의 작고 말랑 말랑한 뇌 속 회로 하나가 끊어지는 것이다.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방식으로서 '포기'를 일찌감치 배워버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주변에는 수면 교육에 성공을 했다는 지인들도 꽤 있었다. 남편이 친한 친구의 집에 놀러갔을 때의 일이었다. 그 친구와 게임을 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6개월 정도였던 그 집 딸아이가 울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남편이 오히려 안절부절하기 시작한 순간 남편의 친구가 괜찮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게임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삼십분 사십분, 아기의 처절한 비명이 지나가는 동안 우리 남편은 그 시간이 무척 괴로웠다고 했다. 이 때는 이미 우리가 수면 교육을 하지 않기로 동의한 후였다. 이제 두 살이 다 되어가는 그 집 딸아이는 수면 교육 탓인진 몰라도 밤에 침대에 뉘이면 혼자 알아서 잘 잠드는 아이가 되었다. 사실 옆에서 지켜보면 정말이지 부러운 노릇이었다. 때가 되면 알아서 침대에 가 누워 잠드는 아이라니! 아이의 부모는 그 사실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집 엄마는 딸아이가 자꾸 자신을 때리고 할머니도 때리고 폭력적이라며 걱정했다. 실제로 옆에서 보면, 다른 또래 아이들을 많이 때리는 아이였다. (덩치가 훨씬 큰 우리 아이도 맞았다.) 물론 많은 아이들이 힘 조절도 할 줄 모르고 주변 사람들을 때리는 시기가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정상적인 경우는 아니다. 옆에 있는 아이에게 계속 다가가 때리는 건 모든 아이가 지나가는 성장 과정이 아니다. 관심의 표현, 혹은 관심을 받고자 하는 표현을 폭력적 방식으로 하는 것이다. 그냥 타고난 성격이 괄괄한 아이일 수도 있지만 내 눈에는 분명한 연결 고리가 보였다. 극단적인 수면 교육의 영향으로 과격해진 면모가 분명 있어 보였다.


수많은 수면 교육의 기조는 그렇다. 아기가 더 어릴 때 미리 교육을 해두면 제대로 된 수면 습관이 잡혀서 유아기를 지나는 동안 수월하게 밤잠을 들 것이라는 거다. 아기가 밤에 일찍 평화롭게 잠들수록 가정도 평화로울 것이며 엄마의 피로도 덜할 것이란 거다. 결국 엄마는 규칙적인 생활 속에서 에너지를 모아 낮에 아이를 돌보는데 더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상으로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 이론은 수면 교육이 잠재적으로 아이의 인생에 남길 수 있는 정서적인 "자국"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는다. 나는 몇 주를 고생해서 몇 년을 편하게 사느니 몇 년을 고생해서 아이의 인생 전체를 생각하기로 결심했다. 그정도의 짐은 지고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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