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절대적으로 약자다. 아이에게 짜증과 화를 내는 것은 대부분 훈육의 효과가 없다. 당장은 아이가 수긍을 한 것처럼 사그라들어 보여도, 정말 수긍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에게 내 감정을 못참고 퍼부은 것 뿐이다. 아이는 무조건 약자이고, 내가 아무리 화를 내도 나에게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직장 상사가 물을 쏟았다고 그 앞에서 짜증을 내는 사람은 없다. 자기 아이 앞에서는 충분히 그러는데도 말이다. "아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지금 힘들어하고 있다고 생각하라" ("They're not giving you a hard time, they are having a hard time")는 미국 엄마들의 말이 있다. 아이가 탠트럼을 부릴 때, 시각을 바꾸어 보라는 말이다.
오늘은 내가 엄마로서 부끄럽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아이 앞에서, 내 몸이 너무 힘들어서, 일관되지 못한 육아를 했다. 아이가 잠들지 않으려 해서, “엄마랑 같이 자는게 싫어? 엄마 나간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아이는 처음엔 뻐팅기듯 “응 엄마 나가”라더니 금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했다.
“네가 늦게 자니까 책도 한 권 밖에 못 읽어준다”고 치졸한 말도 했다. 아이는 책 한 권을 더 손에
들고서는 그래도 읽어달라 했다. 하는 수 없이 정말 빠르게 대충 건성으로 읽어줬다. 세 살 아이도 알았을 것이다. 제대로 읽으나 건성으로 읽으나 마지막엔 오분 차이도 안났을 텐데. 언젠가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아이가 잠들기 전 책을 읽어주는 날이 올텐데. 곧 혼자서 읽다 잠이 들텐데.
그래선지 기분 탓인지 아이가 좀 시무룩하게 잠든 것 같다. 사랑한다는 말에도 별 대답이 없다. 오늘 뭐가 제일 재밌었냐는 말에도 무반응이었다. 이런 아이가 아닌데. 엄마가 미안하고 부끄러워. 이렇게 기록하는건, 기억했다가 다음 힘든 순간엔 덜 부끄럽게 널 대하기 위해서야. 엄마도 매일 배우지만 매일 부족해. 또 노력할게, 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