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루토 Oct 31. 2020

[매일 크는 엄마] 왜 부모도 자라야한다는 것을 잊지?

"아이를 한국에 잠시 보낼까요?"


"도무지 부부가 함께 박사 공부를 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가 없어요. 오히려 조부모가 더 사랑을 주지 않을까요?"


무수히 자주 보는 질문이다. 유학생 및 이민자 커뮤니티에서 말이다. 부부가 맞벌이이거나 유학생 부부이고, 미국의 어마어마한 데이케어 비용 (1500-2000여불)을 감당하기도 어렵고, 아이가 또 너무 어려서 맘에 걸리는, 그런 이들의 하소연이다. 


대개 팽팽하게 댓글이 엇갈린다. 어린 시절 조부모에게 보내져 키워진 이들의 '트라우마' 이론이 우선 있다. 아무리 어려도 부모로부터 떨어지는 기억은 강력한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커서도 부모와 대면대면한 부분이 있다거나 인간 관계에 있어서 언제 버려질지 모른단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아이는 두면 어차피 잘만 큰다는 쪽도 있다. 오히려 살뜰하게 조부모의 사랑을 받고 이 기회에 한국도 경험하는게 좋다. 차라리 부모가 굳은 마음을 먹고 공부에 커리어에 정진하시라, 아이는 훗날 돈 잘 버는 부모를 더 좋아할 것이다. 방학에 한국으로 찾아가면 되지 않는가? 


남의 사정이라 내가 뭐라할 수 없다. 뭐라한들 입찬 소리나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모든 찬반 의견 속에서 한가지 언급되지 않는 것이 있다. 왜 아이만 자란다고 생각할까? 부모도 자라야 하지 않는가?




누구든,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완성형 부모인 경우는 절대 없다. 한 인간이 만들어져가는 과정도 성인이 되면 끝이 아니듯,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도 매한가지다. 끝도 없이 기저귀를 갈아주고 새벽에 내 잠을 잃어가며 이를 악물어보고, 희생의 의미를 되새겨 보며, 탠트럼 부리는 아이를 어떻게 훈육할까 고민하며, 낮에 잘못해서 아이에게 내 짜증을 부린 것을 밤이 되어 후회해 보며, 다른 아이가 치고 갔을 때 내 아이를 어떻게 더 잘 보호할지 고민해 보며, 다른 아이를 내 아이가 칠 때 어떻게 내 아이를 더 잘 교육시킬 것인지 따끔하게 상기해 보며, 그렇게 부모가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나의 잠을 잃고 나의 꿈이 때로 바래가는 모습을 보며, 다른 꿈을 꾸는 방향으로. 그렇게 너와 나는 서로를 매일 매일 알아가야만 한다. 매일 밤, 꾸스는 오늘 뭐가 제일 행복했어? 뭐가 제일 속상하거나 힘들었어? 라고 내가 묻는 이유 중 하나다. 아이의 감정을 읽고 인정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내 배 속에서 나온 너를 처음부터 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계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어져 있던 생물학적인 부분도 있지만, 모든 관계와 매한가지로, 지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으나 아이와 "있어줄 수" 없는 사람은, 사실은 애초에 출산을 심각하게 고려해야만 한다. 이런 사전 교육이 우리 모두에게 참 부족하다. 나 역시 잘 모르는 채로 너무나도 생각없이 아이를 낳지 않았나. 하다못해 물건 하나만 사려고 해도 온갖 네이버 후기를 뒤져보고 고민하고, 강아지 하나를 입양하려 해도 따라올 책임을 심각하게 저울질하며, 그까짓 박사 논문, 몇 되지도 않는 이들이 읽을 그 논문 하나를 쓰기 위해 책을 수십권 수백권 읽어가며 쓰는데, 아이에 관해서는 대부분 그만큼의 연구도 고민도 오히려 하지 않는 것이 참 의아하다. 모두가 낳으니까, 갖고 싶어서, 아이가 예뻐서, 그렇게 모두가 아이를 가진다. 


비슷한 의미로, 정말 중요한 질문이 있다. 많은 이들이, "아이를 낳을까요 말까요?" 묻는다. 정말 중요한 질문은, "내가 아이라면 우리 부부의 자녀로 태어나고 싶을까?" "내가 아이라면 우리 가정에 태어나고 싶을까?"를 물어보는 것이다. 아이는 낳아달라고 한 적도, 나의 자녀로 태어나겠다고 선택한 적도 없다. 나는 준비되어있는가. 부모가 될. 그런데 실제 아이들은 절대 저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실제 아이들은 ,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무한 사랑하는, 그야말로 절대적 사랑의 표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가정에서 가장 약자다. 내가 소리를 질러도 나에게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존재. 아이에게 내 감정을 쏟아낼 때, 우리는 모두 암묵적으로 부모라는 권력을 그렇게 아이에게 휘두르고 있다. 


그래서 육아가 어렵다. 더 기가 막힌 건,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무시무시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란 것을. 이토록 무책임한 발언이 있을까? 한 인간의 인격과 정서를 결정짓는 그 모든 초기 작업을 떠맡게 된다는 것, 그게 바로 아이를 낳는 순간 시작되는 일생 프로젝트이다. 

이전 08화 [매일 크는 엄마] 엄마도 빛이 났던 사람이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